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의결 사안을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실상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김재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재신임, 정국은 격랑 속으로 빨려들어갈 전망이다.
역대 국회에서 국무위원 해임 건의안이 가결된 것은 이번이 6번째다. 앞서 5명의 장관은 모두 해임 건의안 가결 후 사표를 제출했다. 대통령이 직접 해임을 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대통령이 해임한 것과 다름 없는 것으로 정치적 해석이 이뤄져 왔다. 이런 역사에 비춰보면 박 대통령은 사실상 국회에서 가결된 국무위원 해임 건의안을 거부한 헌정 사상 첫 대통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 "국회가 좀 이상하게 끝났다"
박 대통령은 24일 국회에서 해임 건의안이 가결된 김 장관을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 참석시킨 후, 김 장관 앞에서 "나라가 위기에 놓여있는 이러한 비상시국에 굳이 해임건의의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농림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국회가 결의한 해임 건의를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심지어 국회의 의결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박 대통령은 이날 새벽에 있었던 본회의에 대해서도 "얼마 전부터 정기국회도 시작돼서 (이날 본회의가) 좀 이상하게 끝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형식적 요건"이라는 말의 의미는 새누리당이 주장해 왔던 "장관 해임 건의 요건에 맞지 않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장관이 수행한 직무에 문제가 있을 때 해임 건의를 할 수 있는 것이지, 이제 막 임명장을 받은 장관의 '도덕적 흠결'을 두고 해임을 건의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박 대통령은 "경제와 민생을 살리고 개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이 법안들은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20대 국회에 국민들이 바라는 상생의 국회는 요원해 보인다"고 오히려 국회를 비판했다. 현재 새누리당은 야당 주도의 김 장관 해임 건의안 처리에 항의하는 의미로, 국정감사 등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오늘 워크숍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신발끈을 동여매고,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모두 함께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국민을 위해 뛰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라는 말은 특히 김 장관에게 더 와 닿는 말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장·차관들 앞에서 국회로 상징되는 정치권을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가 아니라 삼추(三秋)가 여일각(如一刻)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조급한 마음이 드는데, 우리 정치는 시계가 멈춰선 듯하고, 또 민생의 문제보다는 정쟁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요즘 제가 즐겨 듣는 노래가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만 듣는 건 아니지만, 하나는 '달리기'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국가대표' 영화의 주제곡인 '버터플라이'다"라며 "달리기도 입술도 바짝바짝 마르고 힘들지만 이미 시작했는데 중간에 관둔다고 그럴 수도 없고 끝까지 하자 그런 내용이고, 또 '버터플라이'도 갖고 있는 감춰진 날개를 활짝, 역량을 펴서 날아오르도록 격려하는 그런 노래인데, 내용도 좋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장·차관들을 향해 "올림픽 같은 것을 앞두고서 결심을 다지기 위해서 더 달려야 되니까, 국가대표 선수단의 모임 같은 그런 느낌도 들고 그렇다"고 말했다.
野 "인사 참사에 대한 국민 경고 무시하나"
박 대통령이 해임 건의를 거부하면서 야당은 더욱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해임건의안의 수용 거부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정부에 대한 모든 비판을 정치공세, 대통령 흔들기로 호도하는 청와대의 인식이야말로 국정 실패와 인사 참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오만과 독선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회에서 가결된 농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대통령께서 거부하면 또 한 번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는 독선"이라며 "혼자 가시면 실패한다. 국회와 야당과 함께 가셔야 성공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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