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 홍대, 성수동, 경리단길, 연남동 등 동네가 시쳇말로 뜨면서 기존에 그곳에 있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말한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기에는 미약한 법에 불과하다. '핫플레이스'에서 건물주와 세입자 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 보니 도심 한복판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강제 집행이 일어난다.
이런 가운데 <프레시안>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얼마만큼 심각한 수준인지, 해외에서는 어떤지, 지금의 문제를 보완할 방법은 없는지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첫 회로 이태원 경리단길, 강남 가로수길 등 '핫플레이스' 지역을 연구한 허자연 도시공학 박사(지방공기업평가원 전문연구원)와의 인터뷰 내용을 싣는다.
"서울의 '핫플레이스' 살펴보니…"
프레시안 : 소위 뜨는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조사했다. 그 결과, '서울시 상업가로의 변천 과정에 관한 연구'(2015년)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냈다.
허자연 :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논문에서도 사용하지 않았다. 같은 현상을 두고도 누구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또 다른 누구는 '도시 재생'이라고 이야기한다.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논문에도 '변천 과정'이라고 명명했다.
프레시안 : 알겠다. 그렇다면 '변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2014년 기준으로 강남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의 주요 건물과 가로 및 이면도로를 분석하면서 골목 상권의 형성, 활성화 등의 전반적 변천사를 살펴보았다. 결과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허자연 : 조사한 바로는 가로수길에 자리잡은 전용 66제곱미터(㎡) 기준 점포의 월 임대료는 2008년 기준으로 300만 원에서 350만 원이었다. 하지만 2013년에는 1000만 원으로 세 배가량 급등했다. 권리금도 마찬가지다. 2013년 거래되는 권리금은 4억 원을 웃돌았다.
2013년 가로수길 메인 입지 보증금이 3억~11억 원이며, 월 임대료는 1400만~4700만 원이다. 지난 2009년 보증금이 8000만~2억5000만 원, 임대료가 310만~590만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년간 무려 6배 넘게 뛰었다. 또한, 2013년 가로수길 메인 입지 보증금은 3억~11억 원이며, 월 임대료는 1400만~4700만 원이었다. 2009년 보증금이 8000만~2억5000만 원, 임대료가 310만~590만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년간 무려 6배 넘게 뛰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2013년 11월 대기업의 의류 사업 계열사가 기존 임차인보다 3배 이상의 임대료를 내고 들어왔고 그 옆 5층짜리 건물 역시 대기업이 2012년 1월 160억 원에 매입했다.
경리단길에서는 1년 전에는 3.3제곱미터당 5000만 원에 거래되던 곳이 2015년에는 7000만 원까지 올랐다. 건물주의 입장에서는 소규모 세입자보다 거액의 권리금과 임대료를 안정적으로 줄 수 있는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며, 대기업 유입과 동시에 소자본 창업자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프레시안 : 결국, 핫플레이스 지역은 소자본 창업자들이 밀려나고 그 자리에 대기업 프렌차이즈가 차지하는 식인 듯하다.
허자연 : 포털 사이트 지도 서비스의 로드뷰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2011년과 비교해 2014년에는 가로수길 대로변 상점의 20% 이상이 대규모 프랜차이즈로 교체됐으며, 표준화된 점포로 인해 공간이 획일화됐다. 미디어에서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디자이너 전시실과 편집숍, 개성 넘치는 보세 가게로 한국의 소호 거리라 불렸던 신사동 가로수길이 대기업 브랜드와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채워지며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 결과, 홍보 매장 또는 체험 판매장 개념의 상점이 많고, 매출도 2013년 대비 2014년 초반에 30%가량 감소하는 등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어 압구정 로데오거리와 유사한 상권 정체의 위기가 도래할 우려를 사고 있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소자본이 밀려나고 대기업이 들어왔다는 수치나 통계가 있는가.
허자연 : 내가 조사한 기준에 따르면 가로수길의 프랜차이즈 업종 개수는 2007년에서 2014년 사이 30개에서 225개로 무려 8배 가까이 증가했다.
프레시안 : 이렇게 프렌차이즈가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허자연 : 건물주의 입장에서는 소규모 세입자보다 거액의 권리금과 임대료를 안정적으로 줄 수 있는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프레시안 : 상권이 변하면서 건물주도 변했을 듯싶다. 관련해서 조사한 내용이 있는가.
허자연 : 2015년 7월 기준으로 경리단길의 주 가로인 회나무로와 대로에 면한 녹사평대로의 110개 건축물대장을 통해 건물 소유주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6개 집합건축물을 제외하고 2009년 이후 최종 거래된 건축물이 45개다. 그리고 2012년 이후 이 중 36개 건물이 다시 거래가 됐다.
주목할 점은 2012년 이후 거래된 건축물 36개 중 소유주의 거주지가 동일 주소지인 경우, 즉 건물주가 해당 건물에 거주하는 경우는 한 건물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건축물 중 2개 이상을 소유한 소유자도 7명 이상이 되는 것으로 파악됐고 법인 소유도 7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투자 목적의 매입이 주를 이룬 것이다.
"뜨는 지역의 공통점, 부티킹(Boutiquing)"
프레시안 : 지역 상권이 커지면서 그에 따른 투자 목적의 자본도 유입되는 듯하다. 성수동 거리,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 소위 뜨는 지역의 공통 특징은 무엇인가.
허자연 : 부티킹(Boutiquing)이라는 게 공통으로 나타난다. 부티킹은 '개성적인 점포들을 돌아다니며 구매하는 행위'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소비자들은 '빽다방'처럼 값싼 커피를 원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고급스럽고, 자기만의 것을 원한다. 즉 소비를 통해 '구별 짓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있다. 작은 서점, 독특한 인테리어를 한 커피점 등을 찾으면서 다른 소비자와 구별 짓기를 한다. 이것이 최근 뜨는 지역의 첫 번째 특성이다.
프레시안 : 부티킹이라고 하면 고급 문화, 즉 샤넬 등 명품을 즐기는 것을 생각한다. 그런데 이를 '구별 짓기', 즉 자기만 알고 있는 서점, 커피점 등으로 표현하니 독특하다.
허자연 : 부티크라는 단어는 부티키피케이션(boutiquification)이라고 해서 미국 학자가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에서 사용한 전례가 있다.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과정 안에 부티키피케이션 과정이 있다고 보면 된다.
프레시안 : 통상 젠트리의 시작은 예술인이 들어와 동네에서 활동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후 상권이 활성화된 이후 대기업 프렌차이즈가 들어오는 식이다. 젠트리로 대형 프렌차이즈가 들어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나. '구별 짓기'를 좋아하는 소비자가 싫어할 수 있을 듯하다.
허자연 : 프렌차이즈 입성을 안 좋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특색있던 상업가로가 '대기업 광고판'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가진 고유성이 소멸하는 과정에서 프렌차이즈의 역할이 부각되는 식이다. 네거티브한 면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할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경리단길은 지역색이 강하게 있고 고립된 지역이었다. 자본 투자에서 오랫동안 소외받은 지역이었다. 내가 인터뷰할 당시인 2015년 초반만 해도 그곳에는 20년 이상 장사한 분들도 많았다. 쌀집, 철물점, 세탁소 등. 주목할 점은 이들 업종은 어떻게 보면 사양 산업이라 볼 수 있다.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트랜드에 맞는 상점이 생기면서 생활이 편해진다는 장점이 생긴다. 문제는 쫓겨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리한 게 된다. 계속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가속화되는 젠트리 현상? SNS 파워 때문"
프레시안 : 한국의 경우, 해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도시 변천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허자연 : 한국에서 현재 도시 변천 현상이 빠르게 되는 이유로 첫째로는 소셜 미디어(SNS) 파워가 강하기 때문이다. 요즘 스마트폰 사용으로 정보 공유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예쁜 가게, 맛집 등이 SNS를 통해 알려진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그에 따라 지가가 상승하고 세입자들이 밀려나는 도시 변천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또 하나는 지금의 우리나라 경기가 좋지 않다. 저금리 시대 아닌가. 그 저금리로 인한 자금들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청년 실업도 요인이다. 그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받을 수 있는 고용인으로 자리 잡기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무척 어렵다. 그러니 이들이 자영업으로 뛰어들면서 자영 업자들이 늘어난 것도 도시 변천 현상이 뜨거워진 이유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건물주의 욕망도 지금의 젠트리 현상을 가속화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상권이 뜨면 곧바로 월세를 터무니없이 많이 받으려고 하다 보니 자연히 기존 상권을 형성한 상인들은 밀려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허자연 :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지금의 도시 변천 현상을 두고 상당수 언론은 건물주가 잘못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도시 변천 현상은 그렇게 단순히 도식화해서 누군가를 비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에서의 문제는 건물주와 업주와의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가 제일 큰 주체라고 생각한다. 우리 소비자 성향 자체가 유행에 민감하고 정보를 빨리 습득한다. 그러면서 빠른 변화를 원한다. 그러한 성향이 지금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도시 변천이 10년~20년에 걸쳐 일어나는 일이면 문제라고 볼 수 없다. 임차인이 1년 만에 쫓겨나는 상황이 아니라 10년 정도 걸쳐서 임대료를 올리면 본인들도 준비를 한다. 하지만 짧은 기간 내에 임대료가 상상 못할 정도로 오르다보니 문제가 되고 있다. 소비자의 성향이 빠르게 변하면서 생겨나는 문제다.
"특정 구역 정하고 보호하면 '풍선 효과' 유발"
프레시안 : 젠트리가 진행되면 업주나 건물주나 다 망하는 식인 듯하다. '구별 짓기'가 사라지면서 점차 소비자가 그 동네를 찾지 않게 되고 지가도 내려가는 식이 된다.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때 건물주도 세입자도 서로 '윈윈'하지 못하는 구조인 듯하다.
허자연 : 냉정한 말이지만, 사람이 쓸 수 있는 돈은 한정돼 있고, 인구도 한정돼 있다. 다 잘 될 수 없다. 가게가 늘어나면 다 잘 될 수 없다. 새로 상권이 형성되고, 기존 상권의 고유성이 사라지면 새로운 상권에 소비자를 빼앗길 수밖에 없다. 제로섬이 계속 되는 식이다. 치킨 가게가 왜 망하겠나. 마찬가지다. 커피점 100개 생기면 다 잘되지 않는다. 같은 생활권 안에 또 다른 상권이 생기면 기존 상권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결국,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막을 수 없다는 건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상당한 파열음이 난다는 점이다. 갑을 논란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것을 풀 수 있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나?
허자연 : 특정 지역, 즉 젠트리 지역 등을 지정하고 여기에 이상한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면 안 된다. 연남동에 경계선을 그어 이 안에서 적용되는 규칙과 조례를 만든다고 해보자. 그러면 풍선 효과로 연남동 인근 지역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특정 구역을 정해놓고, 그 지역에 대한 정책을 내놓는다? 분명 주변 지역에 반작용이 생긴다. 오히려 어떤 지역이든 적용할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프레시안 : 그것이 무엇인가.
허자연 : 상가임대차 보호법이다. 이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아니, 명쾌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논란의 여지는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양가적이다. 서울시, 광역지자체를 제외하고 지방 중소도시는 젠트리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 이걸 전국법에 적용시켜서 젠트리를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도'의 문제가 있다. 어디까지 해야 할까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젠트리의 가장 좋은 해법은 모두가 주인 의식 갖는 것이다. 업주도 이 지역에 애정을 갖고 권리금 장사하고 빠질 게 아니라, 나와 운명 공동체라는 의식을 해야 한다. 건물주도 돈 놓고 투자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이 지역의 일부 구성원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소비자도 내가 아끼는 거리에 대한 애착이 필요하다. 원론적인 이야기이나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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