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20대에 창업을 했단다. 내친 김에 '이 주의 조합원 코너' 인터뷰 대상으로 당첨된 주인공은 청년 기업 '안녕서울' 대표인 윤인주(27)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이다.
'안녕서울'은 '걷다 보니 서울 여행'이라는 서울역 도보 투어를 담당한다. 제주 올레길에서 시작된 '걷기 여행' 트렌드를 서울에서 구현한 기업이다. 20대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임직원은 달랑 3명이지만, 사업 영역을 '지역 활성화'와 '도시 재생' 사업까지 확장하겠다는 젊은 사장 윤인주 조합원의 꿈은 야무지다.
"100년 된 슈퍼마켓, 스토리가 있는 걷기 여행"
'걷다 보니 서울 여행'은 서울역 일대 도보 투어 코스다. 서울시에서 용역 사업을 맡아 유료-무료 투어를 하는데, 총 4개의 코스가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서울역에서 남대문교회를 지나 백범 광장, 서울 성곽을 지나 숭례문까지 걷는 코스가 있다. 서울 성곽길이 복원되면서 시민들이 좋아하는 코스라고 한다. 서울에서 거의 최초로 서양식으로 지어진 '약현 성당'이라는 곳도 있단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기자가 "그런 곳이 있었느냐"고 묻자, 도보 투어에 참여하는 시민 대부분이 비슷한 반응이란다.
주민들을 만나다 보니 뜻밖의 소득도 있었다. 한번은 지역 주민들을 인터뷰하다가 음료수를 사 마시려고 슈퍼마켓에 들렀는데, 그 슈퍼가 알고 보니 역사가 100년 된 곳이었다. "슈퍼 주인 아버지 연세가 아흔이신데, 한 번도 동네를 떠난 적이 없대요. 한국전쟁 때도 피난을 못 가고 잠깐 떠났다가 집에 돌아갔대요." 서울 지역 평범한 주민들의 스토리를 말해주는 '이야기가 있는 투어'를 만들어가는 셈이다.
책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코스도 있다. "서울역 주변에서 활동한 '만수필'이라는 외국인이 있어요. 맨스필드가 원래 이름인데, 일만 만(萬)에 목숨 수(壽)에 도울 필(弼)을 썼어요. 만인의 목숨을 도우는 자래요. 이 사람의 직업은 의사였는데, 만수필 씨의 퇴근길을 함께 걷는 코스를 개발했어요. 1920년대, 1930년대 남은 건물을 찾으면서 만수필 씨의 눈에 비친 경성의 모습을 되찾는 코스예요."
"젊은 디자이너에게 남대문 숙련 노동자 연결해주고 파"
윤인주 조합원은 건축학도 출신이다. 건축 관련 일도 많이 했는데, 실망이 컸다고 한다. "학교에서 건축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거대한 움직임이라고 배웠는데, 실제로 건축 사무실에서 하는 건 '부자들의 돈으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부자들의 집을 지어주는' 역할이어서"란다. 건축학에 대한 관심은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고민, 도시에 대한 고민"으로 옮겨졌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지난 3월 '일을 저지른' 결과, 생겨난 성과가 바로 '안녕서울'이다.
"동대문이 젊은 사람들이 옷 사는 곳이라면, 남대문은 50대 여성들이 옷을 사는 곳이에요. 동대문 시장은 유행을 따라 대량으로 옷을 만드는 곳이라면, 남대문 시장은 꼼꼼하게 품질을 검사하는 편이라서 소량 생산하는 경향이 있대요. (남대문 시장의 주요 고객인) 엄마들은 실밥 나오는 거 용납하지 않잖아요. 실제로 청담동 같은 곳의 부띠끄 매장, 개인 디자이너가 만든 난해한 옷, 핸드 메이드 옷은 남대문 시장 근처 서계동에서 납품받는 경우가 많대요.
그런데 남대문 공장 아저씨들이 '일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고 걱정해요. 사실 서계동 봉제 공장의 노동자들이 돈을 적게 벌지 않거든요. 400만~500만 원 정도 버는데, 숙련 노동자가 사라진대요. 그래서 젊은 디자이너나 학부생들, 동대문에서 일하려는 의류 종사자들에게 서계동 봉제 공장에서 옷 만드는 과정을 알려주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윤인주 조합원이 남대문 상권과 젊은 디자이너를 잇는 이 가교 프로젝트로 노리는 효과는 두 가지다. 하나는 동대문 근처뿐 아니라, 남대문 근처 서계동에도 봉제 공장이 있다고 알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젊은 디자이너들이 발주자가 되도록 유도해, 서계동의 숙련 노동자와 연결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서울역에도 동대문처럼 특성 있는 지역성을 살리는 코스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도시 계획을 하는 것이다.
윤인주 조합원은 "도보 투어는 단기적으로 회사가 굴러가는 수익 구조라면, 2단계, 3단계 수익성을 내기 위해 도시 활성화, 도시 재생 사업까지 하려고 한다"며 도시 재생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도시 재생 사업을 제안하며 수익 구조를 내는 것은 윤인주 조합원의 최종 꿈이다.
"올 겨울부터 서울역 지역이 어떻게 변하는 게 맞을지 제안하기 위한 연구를 할 거예요. 공무원이 결정하는 '탑다운 방식'에서 벗어난, 도시 재생 연구예요. 난개발이 아닌, 지역과 지역 간의 유기적인 개발을 제안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시민단체나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 인문학계가 많더라고요. 저는 건축학을 전공했으니까, 도시 계획에서 생기는 틈을 메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기업이 되고 싶은 건 아니고요. (웃음) 돈은 벌고 싶어요.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좋은 일 하니까 도와달라'는 식이잖아요. 라면이 '개'맛없는데 좋은 거니까 먹으라고 하는 식인데, 그런 건 싫어요.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련되고 괜찮은 것을 팔고 싶어요."
"가치 있어서 사고 싶은 것을 팔고 싶다"는 윤인주 조합원이 마지막으로 프레시안에 주문하는 내용은 이랬다. 왠지 뜨끔했다. "진보 성향을 띠니까, 좋은 기사니까 사람들이 당연히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매력적인 기사를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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