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잦은 인생이었다. 어려선 내 집 마련을 위한 부모님의 전셋집 옮겨 타기를 따라, 다 자라선 일자리 근처로 2년이나 4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쌌다. 이사할 집을 구할 때 중요하게 보는 건 볕이 잘 들고, 벽지에 곰팡이나 결로의 흔적이 없고, 너무 외지지 않으며, 걸어갈 만한 곳에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이 있고, 도서관이나 시장이 가까우면 좋은, 이 정도의 조건이면 충분했다. 집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 자신도 '집복'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대체로 이사한 집들은 꽤 만족스러웠고, 혹시나 예상치 못했던 결점들이 있다 한들 2년 후 다음 이사를 기약하면 그만이었다.
오랜 세월 자의 반, 타의 반, 이런저런 '이사'로 단련되어 삶의 터전은 물론 수단까지 바꾸는 '이주 또한 비교적 가볍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갈지, 누구와 함께할지, 가서는 또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이 깊어지면 한없이 무거워질 수도 있는 일. 무지해서 용감했고 용감해서 무모했던 6년 전 서른 초반의 나는 어디로 가버렸나. 6년이 지난 지금 나름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진 나를 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지난날의 시행착오는 정겹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다시 그렇게 고집스럽고 고생스럽게 농사짓고 싶진 않기도 하다. 몇 년의 시골생활로 내 나이 마흔도 채 되기 전에 얻은 것이 손가락, 팔꿈치, 무릎으로 저릿저릿 파고드는 관절염이라니…. 작아도 좋으니 오래오래 짓고 싶었던 농사, 이런 식으론 곤란하지 않겠나.
제주라는 이유로
나는 섬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 요 몇 년 사이 이주민들이 가장 많이 늘어나고 땅값이 가장 빠르게 치솟고 있는 섬 제주. 관광지, 여행지로서 제주의 역사야 길고도 길지만 '제주라도 시골은 시골이니까'라는 생각이 안일했던 거였다. 설마 제주 시내에서 가장 먼 시골쯤 되는 이곳 하도리의 풍경과 주변 곳곳이 이렇게 변해갈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
빛바래고 나지막한 지붕을 얹은 작고 오래된 돌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그런 마을과 마을 사이 까만 돌담으로 경계 지은 크고 작은 밭들이 퍼즐처럼 빼곡히 들어찬 우리 동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특성상 육지에 비해 비와 바람도 많고 습도도 높은 데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급변하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질 때면 역시 섬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건가 싶다가도, 탁 트인 푸른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마저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날이면 그간의 짜증과 우울함이 단번에 씻기는 곳. 바다는 말해 무엇하리…. 망고나 파인애플, 파파야 같은 열대과일만 없을 뿐, 맑고 깨끗한 푸른빛이 끝없이 펼쳐지고 무보정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가 지척에 있다는 건 부러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항상 마음 한쪽 위안과 휴식이 되었다.
언제까지나 일본 영화 <안경(めがね)>(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2007)에 나옴 직한 고요하고 한적한 바닷가 마을일 줄 알았던 동네에 최근 1~2년 사이 이주해오는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띄게 늘었다. 그와 동시에 하나 걸러 빈집이었던 동네가 금세 사람들로 들어찼다. 빈집이 채워진 다음은 밭에 집들이 들어서는 것. 읍내엔 공터가 하나둘 사라지고 그 자리엔 3, 4층짜리 신축 연립과 빌라가 들어섰다.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당근과 무가 심겼던 밭에도 야금야금 건물이 올라갔다. 전(田)이 대지(垈地)가 되는 건 순식간. 경관보전지역이나 절대농지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건가 보다.
이주와 함께 제주에 불어든 건설과 부동산 투기 붐은 무섭게 밭들을 잡아먹으며 땅값을 훌쩍 올려버렸다. 이 와중에 집에서 가까운 곳에 제주 제2공항 발표가 나면서 땅값은 또 한 번 크게 요동쳤다. 가진 돈에 맞는 작은 집이 나와 밭과 집을 두고 고민하다 집을 먼저 산 게 불과 3년 전, 나중에 돈이 모이면 차차 자그마한 밭도 마련하며 정착의 기반을 다지려던 계획은 더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정성 들여 열심히 농사만 지어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겠지만, 각종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농산물 수입정책에 이젠 유전자조작작물(GMO) 재배까지 도입하며, 정부가 먼저 농업을 포기하고 농민들을 막다른 길로 몰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자립하는 생태 소농으로 살아내긴 참 어려운 현실이다. '비닐멀칭'은 물론 하우스 농사도 지양하고 '3무(無)농법'(무경운, 무제초제, 무비료)으로 농사짓고 싶었지만, 텃밭 농사나 자급 농사면 모를까 밥벌이 농사는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제주로 이주하며 꿈꿨던 '반농반어'(半農半漁), 농사짓고 물질하는 삶은 그 지역 토박이가 아니라는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고, 지금은 3년 전 샀던 작은 시골집을 고쳐 '반농반숙(半農半宿)', 농사짓고 민박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도무지 농사로는 채워지지 않던 생활비도 벌고, 농사지은 것들을 팔 수 있는 거점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은 민박집 하나가 생계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줘 고마울 따름이긴 하나 민박이 잘되면 잘될수록 농사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이러다 농사는 일종의 '상징'으로만 남을까 봐 조바심이 난다. 도대체 나에겐 농사가 뭐기에 꽉 잡지도 훅 놓지도 못하는 걸까. 그리고 나보다 앞서, 또는 비슷한 시기에 '귀농', 또는 '이주'의 길을 걸은 사람들은 어떤 고민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제주는 지역이 가진 특성상 '반농반X' 보다 '반숙반X'가 대세다.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숙박업을 기본으로 하며 개인의 재능과 기호를 살리는 것. 제주와 관련된 디자인 작업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목수 일을 하거나, 자신만의 뜨개 공방을 열고, 작은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한다. 아무리 여행자들이 많다 해도 도시처럼 인구가 밀집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꿈꾸던 일만으로는 생활 유지가 힘든 부분을 비교적 수입이 안정적인 숙박으로 채우는 것. 그렇게 작지만 알차게 자기만의 작업과 공간을 가꿔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 한편엔 전에 없이 돈 냄새 풍기는 이들의 이주 또한 늘어나고 있어, 왠지 모를 위화감과 불편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시골에선 '더불어 사는 이웃이 누구냐?'가 각자의 생활이 개별화된 도시보다 훨씬 중요한데, 소박한 이웃보단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 아쉽다. 육지에서 소규모로 과일 농사를 지으며 그 지역 농산물 꾸러미 공동체 회원으로 활동하다 올해 초 제주로 내려와 함께 사는 짝꿍 또한 그가 살았던 농촌 분위기와 사뭇 다른 제주살이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품앗이로 어울려 일도 함께하고 뭐든 공동으로 하는 게 많았던 그곳이 많이 그리운 그와 투덜대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제주가 익숙하고 좋은 나.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둘이 함께 좋은 그곳에서
여행에서도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장소와 사람, 모두 다 중요하다. 그리고 각자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어 늘 선택은 어려운 것. 살다 보니 인생에서 하는 크고 작은 선택들은 지극히 주관적이었다. 어느새 정든 이웃들과 더 오래오래 다음을 기약하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곳에서 조금 들뜬 마음을 내려놓고 땅과 더 가까이하며 담백하게 살아가고 싶은 바람의 줄다리기가 오늘도 계속된다.
땅이고 집이고 내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가진 것 없는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삶의 주도권을 위해서라도 어떤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순간. 이제는 더불어 살되 단단하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 자립의 절반은 농사로, 남은 절반은 내가 오래오래 즐기며 쌓아갈 수 있는 것들로 채울 수 있다면…. 곧 마흔이 가까워진다. 도래할 40대에는 불혹(不惑)의 나이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도 나도 좋은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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