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배추와 무는 이미 8월에 심었고 총각무, 그리고 시금치와 쪽파가 다음 차례를 기다린다. 주곡인 보리와 밀을 제외하고는 한 해 마지막 파종 시기를 기다리는데, 이때가 바로 9월이다. 마지막 심기와 함께 콩과 팥 등의 첫 수확 철인 9월에는 연장 챙기기가 필수다. 있는 연장을 벼리기도 하고 새로 만들기도 한다.
가마솥에서 익어 가는 것은?
그래야 11월 첫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계속되는 가을걷이를 별 탈 없이 할 수 있다. "서툰 목수 연장 탓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실 연장이 시원찮으면 농사일이 몇 배 힘든 법이다. 신체 조건에 맞지 않게 낫이 무거우면 일찍 지치고, 덩치에 비해 낫이 가벼우면 헛심만 쓰고 일의 능률은 낮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개인 자동차를 친구에게도 안 빌려주듯이 농사꾼은 연장을 빌려주지 않고 남의 일 갈 때도 자기 연장은 챙겨 간다. 이른바 '맞춤형 농기구'를 쓰는 셈이다. 한 식구라 해도 각자 연장이 따로 있다.
보통은 낫과 도리깨를 추수 농기구로 먼저 떠올리지만, 옛 농부들에게 수확하는 농기구인 그것은 기본이고 가을철 농기구 관심거리는 하나 더 있다. 싸리나무다.
쇠죽을 끓여 낸 가마솥에 다시 물을 붓고 싸리나무를 삶는데, 물이 끓으려 할 때 넣어서 허연 김이 풍풍 솟으면 재빨리 꺼내어 식기 전에 껍질을 벗긴다. 싸늘하게 식어 버리면 일이 곱으로 힘들다. 뜨거우니 손을 찬물에 적셔 가며 한다. 싸리나무가 너무 푹 익어 버리면 나무가 약해지고 껍질도 한 번에 벗겨지지 않고 중간에 끊긴다. 덜 삶으면 껍질이 자꾸 나무에 달라붙는다.
이 작업은 아무 싸리나무로는 안 된다. 봄에 잘라낸 곳에서 새순이 자란 1년생의 여린 싸리나무여야 하고 곁가지가 없이 매끈해야 한다. 누가 벗긴 껍질이 더 긴지 대보면서 껍질이 벗겨진 하얀 싸리나무로 칼싸움 놀이를 하다가 싸리나무 하나가 뚝 부러지기도 한다.
거름을 퍼 나르는 소쿠리나 바지게를 만드는 싸리나무야 굵기도 하려니와 좀 거칠어도 괜찮아서 구하기도 쉽다. 하지만 농작물을 말리거나 보관하는 채반 만드는 여린 싸리나무는 귀한 재료라서 잘 다루어야 한다. 싸리나무 부러뜨린 게 들키면 불호령이라 아버지가 눈치 못 채게 아궁이 불에 집어넣어 흔적을 없애고는 형제끼리 눈을 껌뻑거리면서 이르지 않기로 약속한다. 껍질을 잘 벗긴 싸리나무는 한 줌씩 여러 다발로 묶어서 도랑물에 한 이틀 담가 두면 속 물이 빠지면서 뽀얘진다.
저온 창고가 있나, 전기 건조기가 있나, 비닐하우스 건조장이 있나, 잘못하면 애써 지은 농작물을 갈무리 과정에서 폭삭 썩힐 수 있기 때문에 채반을 만들어 말리거나 삶고, 아니면 절여서 중·장기 보관 채비를 하는 것이다. 짚으로 만드는 멍석이나 도래방석도 이런 용도이고 갈대나 쑥대, 수수깡을 성글게 엮어 만드는 발도 마찬가지다.
도리깨는 타작용, 지게는 운반용
농기구는 갈이(경운)용, 거두기(수확)용, 옮기기(운반)용, 찧기와 갈무리(보관)용으로 나뉜다. 갈무리용인 채반이 준비되면 옮기기용인 지게와 거두기용인 도리깨가 9월 농가에 으뜸 농기구로 등장한다.
참깨나 적은 양의 들깨야 맑은 날 한낮에 막대기로 토닥토닥 두드리면, 솔솔 잘 빠지지만 콩이나 팥 타작엔 도리깨를 써야 한다. 초여름 보리 타작과 밀 타작 때 썼던 도리깨를 다시 꺼내는 계절이 된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매질을 함부로 하던 1960~70년대에는 이를 '도리깨 타작한다'고 했듯이, 도리깨는 2미터(m)가 넘는 기둥 끝에다 회전하는 1m 길이의 날개를 달아서 빙빙 휘둘러 가며 내리쳐서 곡식을 털어 내는 도구다. 도리깨 타작은 작대기로 초벌 털이를 끝낸 들깨나 콩 가리(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장작 따위를 차곡차곡 쌓은 더미)를 풀어 두벌 털이 할 때 주로 한다.
도리깨는 종일 작업을 하려면 가벼워야 하고, 계속해서 세게 때려 대는 것이라 질겨야 한다. 대나무와 물푸레나무를 날개 재료로 쓴다. 곧고 가볍고 질기기로는 대나무가 좋지만 대나무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 사람들이 물푸레나무를 쓴다. 그렇지만 도리깨 기둥으로는 대나무 아니면, 배게 자라서 키다리가 된 소나무를 잘라서 말려 썼다.
도리깨 기둥 끝에는 구멍을 뚫어서 도리깨 날개 축(도리깨꼭지)을 끼워 넣어 날개가 잘 돌게 만든다. 마찰열을 줄이기 위해 회전 부위에 수초를 집어넣기도 한다. 솜씨 좋은 상일꾼들은 도리깨 날개를 수직으로 뒤로 넘기는 '고개 넘기기'라는 고난도 기술로 타작하고, 초보 일꾼은 단순 타작을 한다. 고개 넘기기 타작은 타격 강도가 엄청 세서 일의 효율이 몇 배나 된다. 무리하게 고개 넘기기를 시도하다가 도리깨꼭지를 부러뜨리면 하루 일을 망치기도 한다.
타작마당에서는 도리깨끼리 허공에서 부딪히는 공중전을 치르기도 하는데 도리깨 날개 하나가 부러져 튕겨 나가면 얼른 일꾼들이 자리를 넓혀 피한다. 휙 소리를 내면서 허공을 가르다가 퍽 소리를 내며 도리깨가 타작마당에 내리꽂히면 포연처럼 먼지가 솟고 곡식알이 부채꼴로 튀어 오른다.
"어이야~" "저이야~" 하는 흥겨운 추임새도 넣고, "요기다~" "조기다~" "한 번 더!" 하면서 일꾼들끼리 타격 부위를 서로 공유하는 타작마당은 잔치판이 된다. 상쇠처럼 일을 주도하는 일꾼이 "밀어내고~"라든가 "재끼고~"라고 하는 것은, 다 털렸으니 도리깨를 휘감아 때려서 콩 단을 멀리 쳐 내라는 신호다. 처음에는 자근자근 두드려 알곡이 멀리 튀지 않도록 하다가 얼추 털어 냈다 싶으면 메치면서 밀어내는 것이다.
타작을 다 해도 들쥐가 들지 않고 비가 와도 젖지 않을 곳에 보관하려면 집으로 빨리 옮겨야 한다. 바퀴 달린 손수레는 편리하긴 해도 비싸기도 하거니와 산골 마을에서는 쓸모가 별로 없어 많이 쓰지 않았다. 산골 마을의 좁은 농로와 크고 작은 개울을 건너야 하는 환경에서는 지게를 따를 도구가 못 된다.
지겟가지에다 낫을 두어 자루 꽂고 지게 목발 옆으로는 톱을 가로지른 채 지게 뿔 위로 불쑥 솟아오른 산더미 같은 짐을 지고 동네로 들어서면 온 동네가 갑자기 그늘이 져서 저녁이 된 줄 알고 아낙들이 저녁 쌀 담근다는 전설적인 인물이 우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나무 한 짐이면 한 달 내내 정지간(부엌)과 쇠죽간 아궁이 불을 땠다고 한다. 이런 전설들은 어느 마을에나 있다. 나뭇짐을 마당에 부려 놓으면 꽈당하는 소리에 지진이 난 줄 알고 다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느니 하는….
욕심이 없어야 진정한 농부?
도리깨 타작만이 다는 아니었고 지게만이 운반 도구의 전부는 아니었다. 도리깨만큼이나 타작마당에 많이 쓰인 것이 '개상'이다. 단원 김홍도의 <타작(打作)>이라는 그림에 잘 나와 있다. 통나무를 여럿 나란히 묶어 만들기도 하고 큰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서도 만드는데, 무릎 높이로 다리를 박아서 설치한 다음 이곳에 나락 단이나 콩 단을 내리쳐서 알곡을 떨어뜨린다. 탯돌도 많이 썼다. 윗면이 넓적한 돌을 받침대 위에 비스듬히 놓고 곡식의 단을 내리치는 도구다.
소나 말을 이용해 대량으로 곡식을 옮기는 '걸채'라는 도구도 있었다. 서까래 굵기의 나무로 틀을 짜서 소나 말 위에 얹어 곡식을 한 번에 200~300킬로그램(kg)씩 나를 수 있었다.
중국 송나라 때의 <태평어람> 권764의 '품물부'에는 낫에 대한 기록이 있다. 한(漢)나라의 백과사전 격인 <석명>에도 낫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참고로 '그림으로 보는 농사연장'(<임원경제지> '본리지3')을 쓴 서유구는, 낫(鐮, 낫겸)은 "곡물을 조금씩 베는 것"이므로 그 뜻이 "욕심이 없다(廉, 청렴할 염)"와 같다고 한 <석명>의 내용을 인용해 놓았다. 농부의 품성을 2000여 년 전에 그렇게 규정했나 보다.
농가에서 없어서는 안 될 농기구가 낫인데 추수 때는 꼭 있어야 하고 가축 기를 때 풀을 베는 일에도 있어야 한다. 겨울철 나무를 할 때, 각종 농기구를 만들 때, 가축우리나 집을 지을 때, 나무껍질을 벗기거나 잔가지를 쳐낼 때도 어김없이 낫이다.
낫은 풀베기용, 나무하기용, 작물 베기용이 있다. 풀 낫을 '왜낫', 나무 낫을 '조선낫'이라고 한다. 또 있을까? 김남주 시인은 '낫'이라는 시에서 "낫 놓고 ㄱ 자도 모른다고 / 주인이 종을 깔보자 / 종이 주인의 목을 베어버리더라 / 바로 그 낫으로"라고 했다. 농민혁명기의 낫 용도가 잘 나타난 시라 풀이하면 너무 섬뜩할까?
'속견'이라는 농기구는 조나 수수를 자르는 칼날이다. 활 모양의 손잡이 양 끝에 쇠로 된 가는 칼을 걸고 나무 손잡이 위 구멍에 띠를 달아서 집게손가락을 여기에 끼우고 칼날을 손 안쪽으로 향하게 한 것이다. 요즘은 속견 대신 '부추낫'이라 하여 145도 정도로 꺾인 낫을 쓴다. 날이 톱날처럼 되어 있어서 풀보다 억센 수수나 조를 자를 때 아주 좋다.
1970년대 초에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미국에는 농사꾼도 집마다 차가 한 대씩이고 우리나라는 집마다 지게가 한 개씩이다"는 말이다. 이 말은 선진국의 발전을 부러워하며 못사는 농촌을 떠나는 이농(離農) 현실을 표현한 말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농가에 트럭뿐 아니라 자가용 없는 집이 없다. 지게 있는 집은 찾기가 힘들다.
지게나 소달구지가 리어카나 경운기, 트럭이나 트레일러로 바뀐 농촌은 많이 편리해진 게 사실이다. 일을 기계가 대신하니, 사람과 자연의 접촉면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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