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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운데 어쩌지요?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㉓포근한 이웃

포근한 이웃

9월 24일. 오늘도 혼잡한 국도를 피해 지방도를 선택했지만 불가피하게 지방도와 고속도로가 교행하는 인터체인지를 만났다.

인터체인지 입구에서 고가도로에 진입하려고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마침 밭일하러 오신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다가와 농로 우회 길을 알려 주셨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농로였지만 넓어서 좋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 큰 자물쇠가 채워진 철문이 길을 막았고, 그 가장자리는 멀리까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문은 열 수 없고, 철조망을 끊을 수도 없었다. 또 자전거를 철문 너머로 들어 올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철문 통과.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철문 통과.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그렇다면 정면 돌파! 우리는 밭두렁 끝자락까지 이동해 가시덤불을 제거하고 도랑을 건넜다. 휴우.

이어 콤버튼(Comberton) 부락을 만났다. 축구장 넓이의 잔디 공원을 한가운데로 집들이 빙 둘러싸여 있었고, 빨간색 마을 안길은 꼬불꼬불 서로 이어져 있었다.

오후 4시, 세인트 네오티스(St Neots)에 도착해 도서관에서 직원에게 캠핑장과 호텔 예약을 부탁했다. 호텔 리스트를 주면서 알아서 선택하라길래 시내 호텔 세 곳을 찾아갔으나 모두 ‘FULL, FULL’이었다.

시내에서 5km 정도 더 가면 도로변에 큰 호텔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그리로 찾아갔다. 가 보니 규모가 꽤 큰 프리미어인호텔이 나왔다.

“오늘 밤 여기서 묵으려고요.” “네. 예약자 성함은요?” “예약 안 했는데요.” “FULL입니다.” “어떤 좋은 방법 없을까요?”

축 처진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뒤에 줄 서 있던 어떤 신사가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호텔이 하나 더 있으니 가 보라고 알려 주었다.

그렇게 20분 정도 달려 신사가 알려 준 호텔에 도착했지만 거기 또한 FULL이었다. 호텔 바깥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추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어떡하지?’ 호텔 여직원에게 다른 지역이라도 괜찮으니 캠핑장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직원은 한참 동안 두꺼운 책자를 뒤적이더니 마침내 캠핑장 한 곳을 알려 주었다.

“거기 전화번호와 위치 좀.” “네, 잠시만요. 여기 있어요.” “미안하지만 전화로 현재 캠핑장을 운영하는지 확인 좀 해 주시겠어요? 좀 부탁드립니다.”

“잠깐만요……. 응답이 없네요.” 잠시 자리를 비운 건지 아니면 캠핑장 운영을 안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만일 달려갔다가 또 허탕 치면 정말 힘든 상황이 닥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대안이 없었다.

구글에 캠핑장 주소를 입력하고 한 시간 정도를 달렸다. 그런데 거의 다 왔다는 사인이 켜졌는데도 캠핑장이 보이질 않았다.

우린 점점 어두컴컴한 숲길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모른 채 뒤따라오는 추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얼마 전 한밤중에 엄청 곤혹스러웠던 ‘위트스터블’ 사건이 재현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직진을 했다.

숲 속을 빠져나오니 희미하게 캠핑장이 보였다. 우린 그제야 조마조마했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랴부랴 짐을 풀고 있는데 옆 캠핑카 할아버지가 커피 두 잔을 들고 오셨다.

커피에서 민트 향이 나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우린 단숨에 들이켰다. 몸이 좀 따스해졌다.

▲세인트 캠핑장.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세인트 캠핑장.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세인트 캠핑장.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커피 잘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빈 잔을 돌려드리며 마주친 인상이 참 고와 보였다. “날씨가 추운데 어쩌지요? 밤엔 더 추울 텐데 우리 캠핑카 옆 천막에서 같이 자요.”

할머니가 텐트 치는 걸 지켜보고 계시다 안쓰러운 듯 말을 건넸다. “아니, 아녜요. 텐트 속은 따뜻해요. 매트와 침낭을 가져왔거든요.”

우린 괜찮다고 거듭 말했다. “뜨거운 물 좀 더 갖다 드릴까요?” “네, 고마워요.” 캠핑카 내외분은 우리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 하셨다.

마치 우리가 자식 같나 보다. 두 분은 이곳에 일주일간 머문다고 하셨는데, 가까운 곳에 사는 아들이 내일 잠시 들르기로 했다고 하셨다.

다음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려 캠핑장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 시장에 나가 바게트 빵, 우유, 치즈, 스파게티, 계란, 소시지, 양파, 타이 라면을 샀다.

그리고 추니 빵떡모자도 샀는데, 이건 추워서 샀다기보다 실은 흰머리를 덮기 위해서였다.

▲세인트 캠핑장.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세인트 캠핑장.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세인트 캠핑장.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왜 잡은 고기를 다시 강에 넣느냐고요.” 추니는 캠핑장 잔디밭을 산책하다 말고 낚시꾼에게 다가가 물었다.

“고기 잡아 드릴까요?” “아뇨, 아뇨.” 매운탕 생각에 갑자기 침샘이 터졌다. 캠핑장에서의 하루는 그저 할 일 없이 세월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게 쉬는 건가?’ 캠핑카 내외분의 아들이 도착했다. 싱글벙글 검정 선글라스를 쓴 아들을 할머니가 손잡고 데려와 우리에게 소개했다.

“우리 아들이에요.” “아, 네에. 처음 뵙겠습니다. 우린 한국에서 왔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와우! 너무 멋지게 생겼네요.”

우리가 인사를 건네자 아들이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말이야. 윗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는 선글라스를 벗어야 예의 아냐?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야, 이거. 쯧.’

9월 26일 아침. 텐트 안쪽에 물방울이 많이 맺혔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틀간 푹 쉬었으니까 오늘은 좀 먼 길을 가야겠다.

텐트 접고, 살림살이를 가방에 넣고, 체인에 기름 치고, 물병을 채웠다. “자아, 허리 굽혀 펴기 시작.” “하나, 둘, 세엣, 네엣! 자, 한 번 더.”

허리 굽혀 펴기는 출발하기 전에 꼭 한다. “오늘 하루도 즐겁고, 안전하게!”

간단한 스트레칭을 끝낸 후 헬멧을 쓰고 막 떠나려는데 이웃 캠핑카 내외분이 하얀 종이에 뭔가를 담아 우리에게 다가왔다.

“집에서 가꾼 건데 가다가 한 개씩 드세요.” 얇은 종이에 싼 사과 두 개였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내외분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우린 청실홍실로 답례했다. 불과 이틀간이었지만 이웃 잘 만나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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