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개각을 통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재신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우 수석에 대한 특별감찰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활동 만기는 오는 19일이다.
일단 별다른 감찰 결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수사권이 없다는 핸디캡을 안고 출발한 감사였다. 결국 '우병우 의혹'을 규명해야 할 임무는 검찰로 넘어갔다. 이 특별감찰관은 18일 직권남용(군 복무 아들 특혜 의혹)과 횡령(우 수석 가족회사 '정강' 관련 의혹) 혐의로 검찰에 우 수석을 수사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찰 결과 보고를 해야 하는 시점을 앞두고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MBC>가 이 특별감찰관이 특정 언론사 기자와 주고받은 사적인 대화 내용을 단독으로 입수, 이 특별감찰관이 감찰 관련 정보를 해당 언론에 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우 수석에 대한 진상 규명과 별개로 두 가지 문제가 추가로 발생했다. 이 특별감찰관의 공개된 발언 등이 감찰 내용 누출에 해당하는지, MBC가 이 특별감찰관의 사적 대화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문제다.
이석수, 감찰 내용을 누설?…오히려 '감찰 불가능'에 대한 토로
이같은 논란을 뒤로 하고 현재 공개된 이 특별감찰관의 발언을 사실로 전제한다면, 이번 특별감찰은 우 수석과 경찰의 비협조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가 18일 공개한 이 특별감찰관의 발언록에 의하면 이 특별감찰관은 경찰과 우 수석이 감찰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토로하고 있다.
이 특별감찰관은 "다음 주부터는 본인과 가족에게 소명하라고 할 건데, 지금 '이게 감찰 대상이 되느냐'고 전부 이런 식으로 버틸 수 있다. 그런 식이면 우리도 수를 내야지. 우리야 그냥 검찰에 넘기면 된다. 검찰이 조사해 버리라고 넘기면 되는데. 저렇게 버틸 일인가"라고 말했다.
이 특별감찰관은 "경찰에 자료를 달라고 하면 하늘 쳐다보고 딴소리 한다"면서 "경찰은 민정(수석) 눈치 보는 건데, 그거 한번 (기자) 애들 시켜서 어떻게 돼가나 좀 찔러 봐. 민정에서 목을 비틀어 놨는지 꼼짝도 못 한다"고 말했다.
현직 민정수석을 감찰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을 자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경우에 따라 청와대가 경찰 등을 통제, 감찰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이같은 내용을 토대로 감찰 결과를 유추한다면, 감찰이 사실상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대통령이 임명한 독립적 특별감찰조차 큰 의미가 없다는 '무용론'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야당이 주장하고 있는 특검 명분을 강화시켜 줄 뿐이다. 이 특별감찰관이 검찰 수사 의뢰를 했지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지 여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특히 검찰을 사실상 지휘하는 민정수석을 검찰이 과연 건드릴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MBC>의 '무리한 보도'…이석수 사찰 의혹까지 제기
그런데 상황은 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16일 밤 나온 <MBC>의 보도 때문이다. <MBC>는 "모 언론사 기자가 이석수 특별감찰관과의 전화 통화 내용이라며 회사에 보고한 것이 SNS를 통해 외부 유출된 것을 옮겨놓은 문건"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특별감찰관이 기자의 취재에 응해 개인적으로 대화한 내용이 폭로된 경로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모 언론사'의 자발적 제공에 의한 것으로 보기에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때문에 누군가 이 특별감찰관을 사찰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공개된 이 특별감찰관의 대화를 과연 감찰 정보 누출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부분도 의문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는 모든 것은 수사 정보 유출로 봐야 한다. 게다가 이 특별감찰관이 '모 언론사' 기자와 한 대화 내용은 대부분 '공시'된 사실인 경우였다. 감찰 기간이 언제라든가, 감찰 대상이 어디까지라든가 하는 이 특별감찰관의 발언은, 관련법에 나와 있는 내용이거나, 언론에 알려진 것들이다.
이 특별감찰관의 대화를 "부적절 행보"라고 지적, 보도한 <동아일보>는 전날인 17일 '단독'이라면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이상철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을 소환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MBC>가 보도한 기사의 논리대로라면 감찰 관련 정보가 특별감찰관실을 통해서든, 경찰을 통해서든, 아아니면 제 3자를 통해서든 <동아일보>에 '누출'된 셈이다.
결국 <MBC>는 출처 불명의 사적 대화 내용을 가지고 '감찰 내용 유출'이라는 무리한 보도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 특별감찰관에 대한 '사찰 의혹'이 제기돼 버린 상황이다.
실제 우 수석 관련 의혹을 최초 보도했던 <조선일보>는 이날 기사를 통해 "더 큰 문제는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특별감찰관 흔들기' 차원에서 국가기관이 불법 도청이나 해킹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이 사건은 정권의 운명이 걸린 초대형 스캔들로 번질 공산이 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한 우 수석이 '현직'인 신분을 이용해 버티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까지도 나왔다. 청와대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특별감찰관이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입장을 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자칫하면 청와대가 감찰에 개입한다는 의혹을 줄 수 있기 대문이다.
"우병우는 '소통령'" 비판…167석 야당의 '특검론' 명분 강화될 듯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감찰 내용 누설 논란과 관련해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병우 수석의 특별감찰관의 활동을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대통령이 임명한 특별감찰관마저 무력화 시킨다면 우리는 민정수석에 대한 문제를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검사 출신인 같은 당 백혜련 의원은 <MBC>의 이 특별감찰관의 대화록에 대해 "내용이나 형식을 보면 통비법을 위반한 명백한 불법 감청 녹취록"이라며 "녹취록이 사실이라면 우 수석의 아들, 가족회사 및 전관 관련자들에 대한 감찰 진행이 어렵다. 사실상 조직적 은폐시도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주장했다.
백 의원은 "녹취록에 비춰볼 때 우 수석은 '일인지하 만인지상 청와대 소통령'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청와대 비서실장도 한숨을 쉬고 청와대 내부에서 어느 누구도 말을 못한다면 감찰은커녕 검찰 수사도 불 보듯 뻔하다"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최근 보도를 보면 특별감찰실에서 그런 사실을 알리든지, 또는 '우병우 일병 구하기', 어떤 사찰대가 있어 가지고 특별감찰실을 도감청 혹은 사찰을 하고 있는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특별감찰관의 감찰이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 방해받고 불법감찰 당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연일 드러나고 있다"며 "권력형 비리에 대한 적법한 감찰활동이 불법사찰 당하고 있다면 국기문란의 극치 그 자체"라고 말한 후 '우병우 특검'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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