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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자전거 집시들(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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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자전거 집시들(영국)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⑳험난한 입국

험난한 입국

9월 16일. 12시 15분 프랑스 칼레 항구를 출발해 영국해협을 건너 12시 45분에 영국 도버 항구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런데 도버해협 34km를 건너는데 겨우 30분밖에 안 걸린다고? 그게 아니라 90분 걸린다. 60분의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칼레 항구에 있는 영국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들어가는 길은 고가도로와 회전 로터리가 뒤엉켜 있고, 대형차들이 많아 자전거로 비집고 들어가기 두려웠다.

엄청 큰 회전 로터리를 두 군데나 통과해야 하는데 회전 각도가 너무 넓어 돌아가고 있는 건지 비스듬히 직진하는 건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첫 번째 회전 로터리를 무난히 잘 통과하자 곧이어 두 번째 더 큰 회전 로터리가 나타났다. 추니는 늘 뒤따라왔었는데 이번엔 어쩌려고 회전 로터리에 먼저 들어서서 막 달렸다.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이정표를 보니 일곱 번째 길에서 나가야 하는데 여섯 번째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아니야, 아니. 다음이야 다음. 어이구!”

나는 놀라서 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미 회전 로터리를 나간 추니는 되돌아오느라 한참 애를 먹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섰고 추니가 들어간 길이 출입국관리사무소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와 추니한테 왕창 혼났다.

무엇보다도 주변에 외국인들이 있는데 소리를 버럭 질러서 창피했다고 나한테 막 뭐라고 했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추니의 기분이 가라앉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영국 출입국 심사. 프랑스 칼레항에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영국 출입국 심사. 프랑스 칼레항에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여권요?” 영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자전거를 탄 채로 심사를 받았다. “예, 여기요. 제 아내 거랑 같이.” “영국에 무슨 일로?” “보시다시피 자전거 여행.” “영국 어디 어디에 가실 계획?” “글쎄요, 그냥 한 바퀴 돌 거예요.”

“체류 기간은?” “한 달 정도요. 그런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어요.” “직업이 뭐예요?” “직업 없습니다. 얼마 전 은퇴했죠.” “지금까지 거쳐 온 국가는?” ‘이 사람 꼬치꼬치 꽤 따지네, 쯧.’

“오스트리아 빈 출발, 독일, 룩셈부르크, 프랑스를 횡단했어요.” “뒤에 계신 저 여성과는 어떤 관계?” “제 아내입니다.” “같이 계속 동행하나요?” “물론이죠.”

‘영국에선 마누라 데리고 여행 같이 안 다니냐?’ “잠은 어디서?” “캠핑장에서 자고, 없으면 호텔에서.” “영국에 누구 아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저 뒤에 계신 분 부인이 맞아요?”

‘이 사람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아까 얘기했잖아. 그냥 확!’ 깐깐한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배를 타기 위해 승선장 입구에 줄을 섰다. 우리 자전거가 맨 앞, 그리고 오토바이, 그 다음에 승용차, 트럭 순서다.

모두들 우리 뒤를 천천히 졸래졸래 뒤따라 승선했다. 선상 갑판에 올라 양팔 벌려 바다를 가슴에 안았다. 사진 찍고, 콜라도 한 잔 사 마셨다. 별로 마시고 싶지는 않았는데 괜히 남들 따라 줄서서 사 마셨다.

“와우!” 저만치 백암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석회질 성분의 하얀색 절벽인데 높이가 백 미터가 넘었다. 과거 오랜 기간 영국의 입출항 기지로서, 전시에는 방어 요새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영국해협 선상에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영국해협 선상에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영국해협 선상에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영국 도버 항구에 도착해 배 지하 1층에 묶어 둔 자전거를 찾으러 내려갔는데 착각해서 한 층 더 내려가는 바람에 초대형 화물차들 한 뼘 틈새에 끼어 죽는 줄 알았다. 잠깐 동안이지만 추니가 너무 공포에 떨었다.

페리에서 내리자마자 바닥에 빨간 줄과 함께 자전거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선을 계속 따라 나와 도버 시내로 향했다. 고풍 짙은 도버 시내에 들어와 안내센터를 찾아갔다.

“자전거 길 지도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안내원은 브로슈어 3개를 가져왔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곳 시내 지도 이외에 인근 지역으로 연결되는 자전거 길 지도를 좀 구할 수 있을까요?”

“그건 없어요. 그 지역에 가서 구하셔야 될 겁니다. 여긴 이 지역 ‘켄트’ 지방 지도밖에 없어요.”

▲도버시 가는 길.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도버시 가는 길.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당장 내일 어느 길을 달려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누구를 만나서 물어봐야 알 수 있을까? 우린 도버 성당에 들러 눈 감고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도버 시내 케밥 식당 주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컨트리호텔에 짐을 풀었다. 아침 식사 포함 62파운드, 구만 구천 원을 계산했다. 이 호텔은 시설이 낡고 깨끗하지 않았다.

▲도버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도버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도버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도버시.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다음 날 아침,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식사하러 내려갔더니 아침 식사비가 포함되지 않은 가격이라며 12파운드를 더 내란다. “아침 식사가 포함된 것으로 계산을 했는데요.” “아닙니다. 여기 보세요. 포함 안 되어 있습니다.”

종업원이 우리에게 서류를 들춰 보여 줬다. “어제 근무자 지금 계신가요?” “교대하고 집에 들어갔어요.” 우린 그냥 방으로 올라와 간단히 빵으로 해결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다.

“식사하러 내려오십시오. 근무자가 바뀌면서 착오가 생겼습니다. 미안합니다.” 우린 식당이 아닌 프런트로 내려갔다. “아침 식사는 됐으니 환불해 주시죠.”

“네 알겠습니다. 미안합니다. 12파운드 여기 있어요.” 호텔 1층 방에서 자전거에 짐을 싣고 로비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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