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이 '낙하산' 사장 논란에 휩싸였다. 현 정권 실세, 산업은행 등이 엮인 논란이다. 낯익은 풍경이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은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닮았다. 눈 앞의 주가에만 관심을 갖는 대주주, 전문성 없는 '낙하산' 경영진 등이 대우조선해양을 망쳤다. 똑같은 일이 대우건설에서 벌어질 모양이다.
대우건설 이사회는 8일 박창민 현대산업개발 고문(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사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오는 23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안건이 통과되면, 박 고문은 대우건설 사장이 된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거세게 반발한다. 8일 이사회 역시 당초 예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진행됐다. 노조 측이 장소를 점거했기 때문이다.
대우건설 사장 선임 절차 변경, '친박' 정치인 입김 때문?
노조 측은 현 정권 실세가 사장 선임에 깊이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대우건설 사장 후보로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박 고문이 갑자기 떠오른 배경에 대한 의혹이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지분 50.75%를 갖고 있는 최대 주주다. 이른바 '친박' 정치인이 산업은행에 압력을 넣어서 박 고문을 밀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박 고문은 과거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지내며 정치권과 끈을 맺었다고 알려져 있다.
대우건설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는 지난 5월 말 차기 사장 후보로 현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과 이훈복 현 대우건설 전무(전략기획본부장)를 결정했다. 하지만 한 달쯤 뒤, 내부 공모 절차를 돌연 취소하고 외부 인사를 포함해 재공모를 시작했다. 이후 새로 거론된 후보군은 박창민 고문과 조응수 전 대우건설 플랜트사업본부장(부사장)이었다. 그리고 지난 5일, 사추위는 박 고문을 단독 후보로 추천했다. 당초 지난달 20일 최종 후보를 정하겠다고 했지만, 뚜렷한 설명 없이 일정이 미뤄졌다.
기존 절차를 뒤엎고 '외부 인사를 포함한 재공모'를 결정한 점, 잇따른 절차 변경에 대해 공식적인 설명이 없었던 점, 박 고문이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이미 돌았던 점 등이 석연치 않다. 또 사추위 위원을 맡고 있는 대우조선 사외이사들 역시 사장 선임 절차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고 알려져 있다.
노조는 8일 성명에서 "산업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투명한 절차 없이 밀실 인사를 단행했다"면서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대우건설 사장 선임과정을 파행으로 몰고 간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박 고문의 사장 지원 자격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해외 건설 경험'이 중요 평가 항목인데, 박 고문은 국내 주택 건설 부문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다는 게다. 실제로 박 고문이 일했던 현대산업개발은 국내 주택 건설 사업을 주로 한다. 반면 대우건설은 해외 사업 비중이 크다.
대우건설 직원들이 정서적으로 반발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설령 정치권 낙하산이라고 해도, 자리에 어울리는 능력을 갖췄다면 반발이 적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다. 대우건설 직원들이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진행한 차기 사장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박 고문을 반대한다고 했다.
노조 역시 "해외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해외 경험이 전무한 역량 미달의 인사를 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박창민(사장 취임)을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신임 사장에게 원하는 것
그럼에도, 박 고문의 사장 취임은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대우건설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지지한 사장 선임 안건이 오는 23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박 고문은 산업은행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박 고문이 사장이 되는 데 대한 반발이 거셀수록, 빚도 커진다. 산업은행의 방패 노릇 역시 그만큼 피곤했으니까 말이다. 박 고문은 어떻게 보은을 해야 할까. 산업은행이 신임 대우건설 사장에게 기대하는 게 뭘까.
신임 대우건설 사장에겐, 숙제가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 2010년 'KDB 밸류 제6호' 펀드를 통해 인수한 대우건설 지분(50.75%)을 펀드 만기인 내년 10월까지 팔아야 한다. 그런데 대우건설 주가는 지난 6년 동안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대로 지분을 팔면, 산업은행은 손해가 크다. 아울러 산업은행이 대주주로서 지난 6년 간 무엇을 했느냐는 비난에 부딪힌다.
결국 신임 대우건설 사장은 향후 1년 2개월 동안 주가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주가를 억지로 끌어올리려고 하면 무리가 따른다. 직원들이 불안해하는 중요 이유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판박이…여전한 낙하산
역시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닮았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주가, 그리고 배당금에만 관심을 뒀다.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이 회계를 조작해서 실적을 부풀리게끔 한 동기를 제공한 건 산업은행이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진짜 경쟁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 회사의 주요 사업 부문, 즉 해양 플랜트 공정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경영진이 된 배경이다.
대우건설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정부 여당과 금융 당국, 산업은행 등이 대우조선해양 사태로부터 뭘 배웠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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