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코앞에 두고 정부가 5일 발표한 67개 '생활공감정책' 가운데 57개가 4시간 여 만에 '부적합' 판정을 받은 일이 벌어졌다. 추석을 앞두고 급조해 만든 정부부처의 부실한 대책이 이 대통령의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추진해 오던 정책들을 '생활공감형'이라는 포장만 덧씌워 발표한 정부가 볼썽사납게 됐다. 이 대통령이 다시금 정부부처에 대한 '군기잡기'에 나서면서 '만기친람 체제'로 회귀하는 듯한 인상도 남긴다.
"생활공감형이라고 하기엔 부족"
정부는 이날 낮 12시를 보도시점으로 잡고 오전 10시 30분 경 10대 신규 생활공감 과제 등 모두 67개의 '서민형' 정책을 보도자료와 함께 발표했다. 그러나 '생활공감정책 보고회' 브리핑이 나온 2시 반 경 '10대 과제'를 제외한 57개 과제는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 대통령이 이에 대해 '보완'을 지시했다는 것.
이 대통령은 "생활공감형 정책으로는 다소 부족하다"며 "제대로 된 생활공감정책이 되려면 책상에 앉아서 기존의 정책을 포장만 바꿔 재탕하는 자세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우선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안전망과 능력개발지원을 확대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 고용여건 개선안이 도마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노동부가 제출한 정책들은 기존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생활공감정책으로 특화시키기에는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좀 더 체감할 수 있는 노동정책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게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생활공감과제로 분류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것들이 있으며, 창의적 노력이 덜하고 각 부처에서 기존에 갖고 있던 정책들을 내 놓은 게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또 교육분야에서 마련된 직업훈련 고등학교 지원과 관련된 방안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은 "그런 고등학교 출신들이 전문 기술영역에 바로 진출하지 않고 일반대학에 진출토록 돼 있는 모순이 있으므로, 좀 더 목적에 맞는 취업지원 체제가 필요하다"면서 "지원을 해 줄 때도 학생들에게 지원이 집중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이 질타를 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며 파장의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명절을 맞아 '민생'을 앞세우면서도 기존의 정책들을 모아 나열한 '전시행정'의 전형을 보여준 게 아니냐는 비난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박 기획관은 "오늘은 1차회의였던 만큼 정책들을 발표한 게 아니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였다"며 "향후 연 4회 정도의 회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결재' 받은 10대 과제 중에서도…
이날 회의를 통해 확정된 '10개 과제' 중에서도 기존에 정부가 기존에 추진하고 있는 각종 '민생대책'과 중복되는 정책이 눈에 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새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뉴스타트 2008 프로젝트'와 대동소이한 게 적지 않다.
"전통시장 영세상인들의 금융이용 기회를 확대하고 고금리 부담을 덜겠다"면서 마련된 '소액대출 프로그램'이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지자체나 상인회를 추가로 참여키로 한 것을 제외하면 이미 추진키로 한 '소액 서민대출은행(마이크로크레딧)' 제도와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출한도도 점포당 300만 원에 불과해 그 실효성을 두고도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가 "농가부채 경감을 위한 농기계 은행사업을 실시하겠다"면서 역시 10대 과제에 포함시킨 농가 지원방안 역시 이미 실시키로 한 농기계 임대사업과 겹친다. 정부는 이미 지난 3월 이 같은 사업을 농협을 통해 실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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