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메르스 사태에서 삼성그룹 소속 삼성서울병원은 대학병원을 운영할 때조차 영리를 우선하는 '기업 정신'을 보여줬다. 응급실은 전염병 확산기지로 전락하고, 전염병에 특화된 음압 시설도 영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혀 갖추지 않은 낯뜨거운 사실이 드러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직접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삼성서울병원은 또다시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다. 바로 '유령수술' 사건이 내부고발로 폭로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은 총수의 사과로도 기업 병원의 한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 벌어졌지만, 역시 이번에도 사과로 넘어가려는 태세다.
현재 삼성서울병원 홈페이지에는 "사과드립니다"로 시작되는 사과문이 걸려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산부인과 김모 교수의 대리수술 시행에 대해 피해 환자분과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번 사건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삼성서울병원 임직원은 한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삼성서울병원 올림 -"
삼성서울병원 '유령수술', 이번 한 번뿐이 아니라는데…
사과문에 언급된 사건은 삼성서울병원의 유명한 산과부인과 특진 의사 김모 교수(56)가 환자 측에 알리지도 않고, 몰래 펠로우(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임상강사)급 의사에게 집도를 맡긴 이른바 '유령수술'이다.
삼성서울병원은 내부고발로 이 사건이 폭로된 이후 지난 13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김 교수에 대해 무기정직이라는 중징계 처분을 내려 20일 김 교수에게 통보했다. 권오정 삼성서울병원 원장과 김 교수는 환자와 보호자를 직접 찾아 사과하고 진료비와 특진비 전액 환불 조치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대책 마련에는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김 교수는 이 병원 산부인과의 권위자로 지난 8일 난소암 수술, 자궁근종 수술, 자궁적출 수술 등 모두 3건을 집도하기로 오전 8시, 낮 1시, 오후 3시30분 등 3차례 일정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날 오전 9시30분 일본에서 열린 '부인과종양학회 학술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일본학회의 요청으로 예정보다 일찍 출국하게 됐다는 해명이지만, 억지 변명이라는 빈축만 사고 있다. 게다가 김 교수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의사가 수술하게 됐다는 사실을 병원 측은 물론 환자와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성형외과에서 대리수술이 하도 많이 행해져 '유령수술'이라는 공포스러운 용어가 생겨났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암수술까지 대학병원에서 대리수술이 벌어진다는 것은 김 교수만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병원 안팎에선 김 교수의 대리수술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을 보면, 삼성서울병원의 이번 사과와 중징계 처분은 그동안 눈감아준 행위가 폭로되자 더 이상 '방어'를 포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대학병원에서조차 왜 이렇게 유령수술이 버젓이 행해질 수 있었을까? 가습기 살인 살균제나 최근 유독물질이 코팅된 항균필터 사건처럼 규제 자체가 허술하기 때문에 사실상 유의미한 처벌이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사들이 '특권층'에 속해서인지 의사자격 박탈도 어렵다.
의료계에서는 대리수술이 특진비까지 100만 원 넘게 받아내고도 펠로우 의사가 집도하도록 해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사기죄' 정도가 아니라 '중대 상해범죄'로 처벌할 행위로 보고 있다. 실제로 몇 개월을 기다려 예약한 김 교수 대신 투입된 펠로우는 난소암 수술에서 어려움을 느껴 산부인과의 다른 교수를 호출했고 그 교수의 도움으로 수술을 마쳤다고 한다. 자칫하면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중대범죄였다. 하지만 현실은 사기죄로 기소되도 몇 백만원의 벌금 정도로 그치는 등 사전억제 효과를 발휘하는 엄중한 처벌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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