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회복시킨 두부 요리
몸과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날, 다른 사람이 해 주는 밥을 먹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과 감사를 느낀다. 그들이 요리하는 자세와 마음을 통해 다시금 나를 돌아보며 좋은 에너지를 새롭게 채워 나간다.
지난해 겨울 참 바쁜 시기를 보냈다.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작은 요리 공간이 점점 사랑을 받게 되면서 조금은 벅찼다. 여행을 사랑하고 채소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걸 삶의 기쁨으로 여기는 나는 어렵사리 큰 결심을 하고 일본 간사이 지역으로 떠났다. 피폭에 대한 두려움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던 땅이었다. 그런 나를 움직인 건 한 사람과, 그의 요리였다. 여행 중에 만난 케이코 씨는 나보다 마흔 살이 많지만, 서로가 놀랄 만큼 삶이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건강을 이유로 먹고 생활하는 데 좀 더 진지해졌고, 채소 음식을 좋아하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를 즐거워하는 그는 방사능 수치 검사를 하여 비교적 안전한 자신의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와 생협의 식재료를 활용해서 요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파동의 힘을 믿는 그는 수시로 식재료에 대해 오링테스트(O-ring Test,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아 붙여 근력의 변화를 측정해 특정 물질이 피검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방법)를 하며 나를 챙겨 줬다.
당시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 도착하여 먹었던 두부 요리를 잊을 수 없다. 다시마 우린 물에 두부와 미역을 넣고 끓인 맑은 국물의 아주 단순한 요리. 데친 두부와 미역을 생강을 갈아 넣은 간장소스에 찍어 한입 먹는 순간, 몸과 마음이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았다. 장시간 서서 요리할 때면 체력적으로 무척이나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 두부 요리를 떠올리면, 내 안에 사랑과 감사의 힘이 솟는다. 그 힘으로 나는 다시금 요리하고, 사랑과 감사의 에너지를 나눠 간다.
명상으로 나를 보듬다
지난 5월 말 전북 진안으로 열흘 동안 다녀온 '위빠사나 명상'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남편의 배려와 벗의 귀한 조언에 힘입어 심신을 공부했다. 묵언과 불교의 오계(五戒)를 지키고 나의 호흡과 감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며, 이 세상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 어떠한 갈망도, 혐오도 찰나의 감각이구나. 나는 그 찰나의 감각에 중독되어 아둔한 눈과 귀로 살았고, 삶을 통해 배우는 아름다운 지혜를 참 많이도 놓쳤구나.' 감사하게도 내 안의 깊은 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
요리를 업으로 삼은 지 6년째, 젊은 나이에 작은 사업장을 시작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기도 했다.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할 만큼 영글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하며 스스로를 참 힘들게 했다. 나 스스로 고통의 씨앗을 뿌려 놓고 그것을 망각한 채, 내가 원치 않는 고통을 준 사람을 원망하고 회피하기도 했다.
명상을 통해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부정성을 만나는 게 참 힘들었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강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일어나는 평정심을 통해 나는 나를 용서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했다. 용서란 단순히 누군가가 베푸는 큰 아량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용서는 상처를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각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흘 동안 명상 수행을 통해 지혜의 씨앗을 얻었다. 때때로 비바람을 맞으며 자랄 이 씨앗을 사랑으로 잘 키워나가려고 한다. 이 씨앗이 내 요리에 또 하나의 재료가 될 수 있길 기도한다.
좋은 사람들과 흙을 만지며 기쁨 느껴
2012년부터 4년째 도시 장터 '마르쉐@'에 요리팀 출점자로 함께하고 있다. 마르쉐@는 한여름과 한겨울을 빼고는 거의 매달 1~2회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농부, 요리사, 수공예가가 함께하는 도시형 농부 시장이다. 이 멋지고 귀한 장터에서 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결을 느끼고 내 작은 재능과 소명 그리고 삶의 일부분을 나누며 마음의 휴식을 취한다. 요리를 하며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마치 친정에 가서 쉬듯 장터에서 숨 쉬고, 먹고, 나누며 엉킨 실타래를 풀 혜안과 위안을 얻는다.
지난 6월에는 장터를 통해 인연을 맺은 충남 홍성의 이연진 농부 댁에 손 모내기를 하러 다녀왔다. 주말까지 바삐 일하고 맞는 월요일엔 늦도록 아침잠을 자며 피로를 회복하는데, 이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홍성에 갈 채비를 했다. 장터 식구와 손님들과 동행했기에 더욱 기운차고 즐거웠다. 농부는 토종 벼인 조동지와 흑갱을 심었는데, 밭을 갈지 않고 풀과 벌레와 벼가 함께 공생하며 생장하는 자연재배에 도전했다. 나는 생애 두 번째로 손 모내기를 하면서, 땅의 생명의 힘에 놀라며 아이가 태어나 세계를 만나듯 새로운 행복을 느꼈다.
사실 기계 없이 900평에 이르는 땅에 20명 내외의 사람이 직접 모내기하는 건 많은 시간과 노동을 요한다. 이 광경에 동네 어르신은 혀를 차기도 했고, 지나가던 차는 멈춰서 한참을 구경하기도 했다. 세상이 문명화되고 기계화되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잃었다. 자연의 많은 부분이 훼손됐고, 인간성을 상실했으며, 직접 손으로 일궈내는 일을 통한 기쁨을 잃어 갔다. 모두가 공존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시절이 역사 속에만 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연진 농부 같은 귀한 분들이 역사의 맥을 다시 이어 가고 있다.
주로 꿀잠을 자며 몸의 휴식을 취하던 평범한 월요일에 흙을 만지고 풀벌레 속에서 너털웃음을 지으며 땀의 가치를 배우고 노동의 큰 기쁨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역사를 복원하고 새로운 역사를 쓰는 현장의 산증인이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새참을 먹을 때 한 농부가 직접 노랫말을 지은 노래 한 곡조를 불러 주었다. "밥은 생명이요, 우리는 다른 생명의 생명을 빌려 살아가기에 겸손하고 감사하자"라는 내용이었다. 대지의 기운을 받으며 모든 생명에게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던 하루, 이 얼마나 아름다운 휴식인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