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날씨 맑음. 구글 지도에 도흐문 출발, 지방도 D1003번 도로를 입력했다. 노선을 선택할 때는 반드시 고속도로는 제외시킨다는 조건을 부여했다.
그렇지 않으면 빠른 길을 선택하느라 고속도로를 경유하도록 알려 준다. 경사도 5~8%의 일직선 고개를 1~2km씩 오르느라 진을 쏙 뺐다.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입에서는 게거품이 나왔고, 새로운 고갯길이 나타날 때마다 마음은 한없이 나약해졌다. ‘이번 여행에 같이 오지 말걸…….’
추니가 뒤따라오며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심정을 물어보기 두렵다. 만일 그렇다고 하면 어쩌지?
오후 3시경, 작은 도시 샤토(Chateau)에 도착했다. “여기 샤토에서 하룻밤 묵을까?” 숙소를 찾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고갯길에 지쳐 이곳에서 머물까 생각했다.
그런데 성당 앞 계단에 철퍼덕 주저앉았던 추니가 벌떡 일어서면서 좀 더 가겠다고 했다. 체력에 무리가 되는 듯했으나 우린 25km 더 떨어진 모(meaux)까지 가기로 했다.
여전히 고갯길은 계속 이어졌고, 체력이 고갈돼 기진맥진했다. 끝이 안 보이는 먼 정상을 보면 지루하고 암담해져서 재밌었던 추억을 꺼내 보려 했지만 기억나는 듯 곧 사라졌고, 스마트폰 음악도 소음이었다.
고개 중턱을 오르는데 어떤 승용차 한 대가 우리 곁을 스치며 힘내라는 응원을 전했다. 우리도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고개 정상에 오르니 아까 그 차가 멈춰 서 있었다.
운전자는 창을 내리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영어 할 줄 아세요?” “예, 조금요.” “어디까지 가시나요?” “예, 파리 쪽으로 가는데요, 오늘은 모까지만 가려고요.”
“혹시 원하시면 저희 집에서 묵으셔도 됩니다.” “뭐라고요? 우리에게 잠자리를 제공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부부가 차에서 내려 정중하게 우리의 의사를 물었다.
“제 이름은 도나토라고 하고, 이쪽은 제 아내입니다. 저희 집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앞에 강이 흐르고요, 아, 잠깐만요. 저희 집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남편은 스마트폰에서 자기네 집 사진을 찾아 우리에게 보여 줬다. “네에, 감사합니다만,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내와 상의를 좀 해야겠어요.”
추니는 조금 걱정스러워하긴 했지만 그래도 흔쾌히 가 보자고 했다. “네. 제 아내도 좋다고 하는군요. 감사합니다만, 정말 괜찮아요?”
“네. 저희 집에서 쉬다 가세요. 저희도 여행을 좋아해요. 과테말라, 쿠바, 뉴질랜드, 일본에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아, 네에. 고맙습니다. 그럼 귀댁에서 묵겠습니다.” 그들은 내가 갖고 있는 지도를 보면서 30km 정도 떨어진 에스블리(Esbly)에 있는 자기네 집을 가리켰다.
자기들은 두 시간 후에 저녁 파티에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7시 30분까지 도착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집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미리보기’를 하자 정확한 집 위치가 그려졌다.
그들은 앞서 집으로 향했고 우린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주택 단지와 공단을 지나고, 구릉지를 넘어 제시간에 닿으려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한참을 달리다 말고 추니가 너무 배가 고파 더 이상 못 가겠다며 멈췄다. 몸이 축 처진 채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한 움큼 남아 있던 마른 혼합 곡류를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들이켰다. 잠시 후 조금 정신이 든다며 다시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헉! 스마트폰 배터리 경고등이 깜빡였다. 얼른 한 개 남아 있던 걸 꺼내 교체했는데 이런, 그것도 충전이 안 되어 있었다.
얼마 안 가서 결국 화면이 흐려지고, 내비게이션도 꺼져 사거리에서 우린 멈춰 섰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난감했다.
‘큰일 났다! 이 일을 어쩌지?’ 그분들이 도착해 달라는 7시 반이 지나고 있는데 꼼짝 못하고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허름한 오토바이 한 대가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와 멈췄다.
아까 그 남편이었다. 우리가 올 때가 다 됐는데도 오질 않으니까 오토바이를 타고 마중 나온 것이었다. 마치 우리 식구를 만난 것 같이 기뻤다.
오토바이를 앞세우고 도착하니 말 그대로 집 앞에 하천이 흐르고, 넓은 잔디 정원 한가운데 꽤 큰 가래나무가 있었다.
자전거를 정원에 세우자마자 우리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 거실, 주방, 작은방, 창고까지 구석구석을 소개해 줬다. 신혼부부 같았다.
그리고 침실을 가리키며 오늘 밤 우리가 잘 방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런데 샤워장, 화장실, 테이블, 화장대, 조명, 가전기기 등을 보아 도나토씨 내외의 침실인 듯했다.
“너무 방이 멋져요. 당신들은 어디서 잘 거예요?” “네, 걱정 마세요. 오늘 밤 파티에 갔다가 늦은 밤에나 돌아올 거예요. 여기 2층에 조그만 방이 또 있어요.”
“아, 네에.” 우린 더 이상 사양하고 싶지 않았다. 그분들은 정성을 듬뿍 담는 모습이었고, 우린 순순히 그들의 성의를 받아들였다.
도나토씨 내외는 파티에 가기 전 우리 저녁상을 차린다며 분주했다. 햄, 소시지, 우유, 빵, 과일, 치즈, 오이절임, 파스타 등 갖가지 음식을 내놓았다.
더불어 “저 찬장을 열면 이것저것 많이 있으니까 먹고 나서 맘대로 더 꺼내 드세요.” 하며 부엌 안쪽에 들어가더니 와인을 한 아름 들고 나왔다.
“어떤 걸로 드시겠어요?” “네에? 우린 와인 잘 몰라요. 스위트, 좀 달콤한 걸로 주세요.” “여기 놓을 테니 마음껏 골라 드세요.”
그리고 나서 그들은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떠났고, 우린 와인에 고소한 치즈를 곁들여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한밤중에 돌아온 그들은 거실에서 잤다.
다음 날 아침, 모처럼 늦잠을 자고 있는데 갑작스레 도나토씨가 가슴에 털 숭숭, 팬티 차림으로 우리 방에 들이닥쳤다. 추니는 이불을 끌어당긴 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도나토씨는 읍내 맛있는 빵집이 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모처럼 손님이 왔으니 따끈한 밥상을 차리려나 보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부인 헬멧을 빌려 쓰고 5분 정도 가는데, 양쪽 볼이 꽉 눌려 아파 죽는 줄 알았다. 아침 식사는 진수성찬이었다.
‘아! 프랑스 가정의 아침 식단은 이렇구나.’ 넓은 도마 위에 햄, 치즈, 빵을 그냥 통째로 얹어 놓은 채 각자 자기 먹을 만큼 썰어 접시에 담아 먹었다.
국물은 커피나 홍차였다. ‘에구, 된장찌개 좀 있으면 좋을 텐데…….’ 우리는 아침을 먹으며 차분한 대화를 나눴다.
엊저녁엔 집 찾아오느라 정신이 없었고, 신혼부부도 파티에 가느라 바빠서 서로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아침 먹고 기차 한번 타 보는 게 어때요? 여기서 파리 시내까지 이십 분이면 갈 수 있어요.” “네, 가깝네요.” “오늘은 기차 타고 파리 시내 구경하시고 다시 이곳으로 오세요.
삼사일 더 묵고 가세요.” “네에? 고맙습니다만 너무…….” “괜찮으니 푹 쉬고 가세요.” “네. 아내와 상의 좀 해 보고요.”
결국엔 오늘 그냥 떠나기로 했다. 비록 하룻밤이었지만 이 정도면 몇 달 동안 신세를 진 거나 다름없다. 며칠 더 묵어가라는 얘기를 몇 번이고 했지만 하룻밤으로 만족했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낯선 동양인을 자기 집에 데려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게 어디 그리 쉬우랴. 무료로 빌려주는 건 차치하고 부부가 쓰는 침실까지 내주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걸까? 무슨 이해타산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여행객들의 처지를 잘 알아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거겠지. 아니면 본인이 여행하면서 이런 경험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고…….
“도나토씨 내외의 성의는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 떠나야 할 사정이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여행 마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훗날 신세 갚을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에 오실 때 꼭 연락 주세요. 주소를 주고받은 뒤 가져간 기념품들을 종류별로 한 개씩 골고루 줬다.
청실홍실은 소중한 인연과 행복한 가정을 상징한다며 벽에 걸어 줬는데 참 좋아했다. 도나토씨 부인은 ‘미키마우스’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며 미키마우스 목걸이를 우리에게 선물로 줬다.
파리로 가는 기차역은 바로 집 근처에 있었다. 도나토씨 부부가 차를 타고 앞장서고 우린 자전거를 타고 뒤따랐다.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도나토씨는 자기 차를 소개시켜 줬다. 50년 지난 앤틱카였다. 차 내부는 목재를 많이 사용했고, 기어는 끈 달린 손잡이를 밀어 넣었다가 당기면서 조작했다.
우린 그 차를 함께 타고 역 광장을 한 바퀴 돌았다. 겉으로 보기엔 빈티지 스타일이지만 안락하고 뭔가 품위가 있어 보였다.
잠시 후 플랫폼에 기차가 들어왔다. 그들은 무거운 화물 자전거를 들어 올려 줬다. “Bye Bye. 메르시.”
한국에 돌아와 도나토씨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귀국 후 보냈던 감사의 편지와 사진에 대한 답장이었다.
에스블리에서
보내 주신 사진 잘 받았어요. 계속 연락을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당신들과 우리 집에 머물렀던 것은 정말 좋은 추억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파리나 프랑스 북부 지방에 놀러 오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오신다면 꼭 말씀하세요. 여름에 차 두 대 중 한 대와 예쁜 집을 빌려드리겠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꼭 오셔서 말씀하세요.
우리 집은 당신들에게 항상 열려 있어요.
추신) 저도 당신을 만난 이후 자전거를 일주일에 두세 번 탑니다. 내년 봄에는 한 달 동안 자전거를 타고 여행할 계획입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당신이 원하실 때 다시 올 수 있다는 것과 또 당신 친구들과 가족들이 여름에 오신다면 집을 빌려드릴 수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도나토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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