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외교 대란설이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속에 선택의 기로에 선 한국이 위태로워 보인다. 남한 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이어 일본의 참의원 선거,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이어지는 삼각파도가 몰고 온 동북아 신냉전의 한 복판으로 한국이 속절없이 끌려들어가는 모양새다.
미중 갈등 한반도에 끌어들인 사드 배치
한국 정부는 미중 간의 균형 외교를 포기하고 남한 내 사드 배치 결정으로 첫 단추를 한미동맹에 맞췄다.
이는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한국과 주한미군의 중요한 역할 변화를 의미한다. 북한 위협에 대한 방어적 개념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전진기지로 탈바꿈하는 징표가 사드 배치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동북아 지형에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가 불가피해졌다는 전망이 다수다.
한중, 한러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남한 내 사드 배치를 미국의 글로벌 미사일방어 체계(MD)의 동북아 버전으로 본다.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적 옵션까지 포함하는 대응을 경고했다.
양위쥔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사드 배치 발표 당일 이례적으로 밤에 발표한 성명을 통해 "한·미 양국의 움직임을 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며 "우리는 국가의 전략적 안전과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상원 국방위원회의 예브게니 세레브렌니코프 제1부위원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국방부와 함께 미사일 및 지상부대 배치 등의 방안을 포함한 구체적 조치들을 마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의 사드 기지를 사정권에 포함시키도록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 정부가 한국에 관광이나 무역, 비자 발급 등의 부문에서 불이익을 주는 경제적 보복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사드 배치 결정은 북중, 북러 관계를 밀착시키는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에게 북한은 미국이 추진하는 동북아 MD에 대한 군사적 완충제로서의 의미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인 이달 27일이나 중국의 국경절인 10월 1일을 계기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방중이 성사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군사대국화로 치닫는 일본
10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도 중국과 미국 간의 갈등을 격화시키고 한국을 격랑 속으로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 압승을 바탕으로 평화헌법 9조의 개정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을 추진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이미 지난해 4월 미일 안보협력지침을 개정해 미일 동맹의 위상을 지역 동맹에서 글로벌 동맹으로 격상시켰다. 일본 자위대가 전세계로 활동범위를 넓혀 미국을 후방지원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지난해 9월에는 '집단적 자위권(자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나라가 공격을 당하는 경우 자국이 공격당한 것으로 간주해 대신 반격하는 권리)' 행사를 골자로 한 안보법제도 정비해 놓았다. 그러나 헌법 9조에 발목이 잡혀 집단적 자위권을 한정적으로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아베 총리에게 개헌 발의 요건을 안겨준 이번 선거 결과는 그 마지막 빗장을 풀어 집단적 자위권을 무한정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를 제공한 셈이다.
자민당이 지난 2012년 내놓은 개헌안대로 개헌이 이뤄지면 일본은 '일본의 평화와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 총리를 최고지휘관으로 하는 국방군을 가질' 수 있고, 국방군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에 나설 수 있다. 즉, 일본이 미국이 수행하는 전세계 무력 분쟁에 '글로벌 동맹'으로서 관여하는 데에 어떤 제약도 사라지는 것이다. 한반도 전쟁 시에는 주한미군의 후방 지원을 위해 일본군의 한반도 상륙도 가능해진다.
이처럼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핵심인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군사 대국의 길로 나아갈 경우 미일 동맹의 하위파트너인 한국은 궁지에 몰린다. 미일이 남중국해와 한반도에서 중국 포위 전략을 구체화시킬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또 다른 시험대
이런 가운데 중국의 대양 진출에 있어 핵심적인 전략적 가치가 걸린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가 12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판결은 지난 2013년 1월 필리핀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15개 항목으로 나누어 PCA에 제소한데 따른 것이다. 그 중 핵심은 구단선(九段線)의 법적 타당성 여부와 중국이 건설한 인공섬의 법적 지위에 관한 판단이다.
구단선은 중국이 남중국해 해역과 해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그은 U자 형태의 9개 선으로, 남중국해 전체 해역의 90%를 차지한다. 이 선을 중국 말고는 다른 국가들이 인정하지 않아 PCA가 남해 구단선을 사실상 위법으로 규정하거나 명확한 판단을 보류할 가능성이 높다.
인공섬의 법적 지위 역시 중국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가장 남쪽인 스프래틀리(난사) 군도 중 7곳의 암초에 인공섬을 건설해 활주로와 통신시설을 만들었다. 그러나 필리핀은 이 섬들이 자연섬과 달리 썰물 때 드러나고 밀물 때 잠기는 간출지여서 독자적인 영해를 주장할 수 없다며 중국의 점유와 건설 활동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 판결에 법적인 효력은 없지만 PCA가 필리핀 손을 들어줄 경우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주장하고 있는 '항행의 자유'가 정당성을 인정받는 효과를 낸다. 중국은 PCA 판결이 나오더라도 '무시' 전략으로 대응할 방침이지만, 남중국해에서 미중 갈등은 보다 직접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란 관측이다.
미국은 지난달 남중국해 인근 필리핀 해역에서 항공모함을 동원해 공중방어와 해상 작전을 펼쳤다. 중국 역시 지난 5일부터 남중국해 파라셀 군도에서 전략폭격기까지 동원해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항행의 자유'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 원론적 입장을 밝히며 중립적 입장을 취해왔다. 12일 PCA 판결 뒤에도 기존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PCA 판결은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의 지속적인 군사 갈등을 부추기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드 배치 문제와 함께 한국 정부로서는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압박받는 또 다른 외교적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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