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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함부로 길을 들어서지 말아야지!’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⑮감히 유럽 고속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다니!

감히 유럽 고속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다니!

고속도로변 울창한 잡목 사이로 작은 틈새가 눈에 띄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들여다보니 개구멍이었다.

잡목을 제거하면 빠져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작업에 들어갔다. 유난히 가시 잡목이 많았다. 간신히 잡목을 비집고 탈출에 성공했다.

휴우. 우린 농로에 앉아 서로 마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좀 차리고 나서야 ‘A31’ 고속도로 이정표가 눈에 보였다.

해질녘 폼피(Pompey)에 도착해 슈퍼에서 빵과 우유를 샀다. 슈퍼에서 7km 떨어진 곳에 B&B호텔이 있다는 정보를 얻어 그곳으로 가는데, 경사가 심해 오르느라 기진맥진했다.

B&B호텔은 별 두 개짜리 저렴한 비즈니스호텔이었다. 아침 식사를 제공하고 55유로다. 깨끗하고 친절했다.

▲B&B호텔.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B&B호텔.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다음 날 아침, 폼피의 B&B호텔을 나와 낭시로 향했다. 호텔을 나오자마자 거미줄 같은 인터체인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젠 함부로 길을 들어서지 말아야지!’ 한 번 잘못 들어가면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 어제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

감히 유럽 고속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다니! 생각해 보니 우리가 너무 심했다.
인터체인지 옆 갓길에 자전거를 세우고 GPS를 켰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어떤 길이 국도이고, 어떤 길이 고속도로인지 알 수 없었다. 인터체인지 입구에서 지도를 펼쳐 보기도 하고, 구글 지도를 확대해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 반대편 차선으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사이클이 눈에 띄었다. 우린 펼쳐진 지도를 번쩍 들어 보였다.

그 사람도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디에서 핸들을 돌렸는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지도를 펴 보이며 낭시를 거쳐 파리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는 의미로 지도 위에 손가락으로 쭈욱 선을 그었다.

그는 자기를 따라오라며 반 시간 정도 달려 어느 하천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 하천을 따라 직진하면 작은 부락들이 나오는데 거기서 다시 물어보라고 했다.

감사의 표시로 2018평창동계올림픽 배지를 줬다. 하천을 따라가다 보니 갈림길이 자주 나타났다. 길을 잘못 접어들어 되돌아오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뭐 좀 도와드릴까요?” 둔치에서 이정표를 살피고 있는데 자전거 타고 가던 빨간 셔츠 입은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네. 한국에서 왔는데 프랑스를 횡단하는 자전거 길을 찾고 있어요.” 지도를 펴 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네, 자전거 전용도로는 잘 모르고요, 아마 운하 길과 국도를 번갈아 타고 가야 할 겁니다. 가는 길에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을 보고 가시죠. 원하시면 안내해 드릴게요.”

빨간 셔츠 청년은 진지하게 우리의 의사를 물어봤다. “그게 어디에 있는데요? 저희들이야 좋죠. 시간 좀 내 주시겠어요?”

우리는 마침 그곳에 가려고 했다는 듯이 대답했다. “가다가 10분 정도 안쪽으로 들어가면 돼요. 여기서 가까워요. 자전거는 한국에서 직접 가져온 거예요?”

빨간 셔츠 청년은 우리와 나란히 달리면서 물었다. “예, 비행기에 싣고 왔어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발했지요. 지난달 7월 16일 빈을 출발했으니까 오늘이 45일째 되네요.”

마치 먼 길을 같이 떠나는 사이처럼 얘기를 주고받았다. “와우! 거기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에게서 놀란 표정과 경계의 눈빛을 동시에 읽을 수 있었다.

“예, 천천히 달려요. 석 달간 유럽 횡단을 하고 있는데 갈 데까지 가는 거예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다 보니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스타니슬라스(Stanislas) 광장 출입문은 온통 황금으로 칠해져 있었다.

빨간 셔츠 청년은 사진도 찍어 주고, 안내센터에 들어가 자료도 얻어다 줬다. 우린 청실홍실과 한복 책갈피 기념품을 줬다.

안내를 끝낸 청년은 우리를 낭시 외곽 운하 길 입구까지 데려다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땡큐! 메르시.”

▲스타니슬라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스타니슬라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스타니슬라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스타니슬라스.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우리는 낭시 외곽 운하 길을 따라 툴(Toul)로 향했다. 오염된 인공 수로와 맑은 물길이 나란히 따로 흐르고 있었다.

툴로 향하는 D121번 지방도로는 자연 지형을 거의 그대로 이용해 도로가 나 있었다.

도로가 마치 ‘낙타봉’처럼 생겨서 능선에 올랐다가 내려갈 때면 가속도 때문에 페달을 밟지 않고서도 저절로 다음 능선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계속해서 나오는 수십 개의 낙타봉 길을 한 시간 이상 오르락내리락했다.
“야호!”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이런 길만 계속 있으면 좋겠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밀림을 가로질러 달리는 일직선의 낙타봉 길은 마치 꿈속에서 바이킹을 타는 것 같았다.

숲길을 빠져나와 툴 관광안내센터에 들렀다. 안내원은 갖고 있던 지도책을 여러 장 복사해 도흐문(Dormans)까지 가는 길을 형광펜으로 그어 줬다.

운하 길을 가다가 다시 작은 마을들과 들녘을 지나고, 산을 넘어야 하는 복잡한 코스였다.

▲낙타봉길.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부와 바꽁(Void Vacon) 마을에 도착하자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앗! 세 번째 펑크다.’ 내 자전거만 연거푸 펑크가 났다.

자전거 좀 제대로 타라고 추니한테 재차 지적을 받았다. 하필이면 해 저물고 갈 길이 먼 때에 펑크가 났다.

아직 잘 곳을 정하지도 못했는데……. 지도를 보니 큰 부락까지 가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무바즈(Mauvages) 부락을 지나면 또 산길로 들어서야 한다. “휴우. 어쩌지?” 그냥 한숨만 내쉬었다.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냥 갈 데까지 가는 것 외에는…….” 혼자 중얼거렸다.

▲펑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오래된 폐가가 보였다. 지붕이 땅 끝에 길게 닿은 걸 보니 축사로 사용했던 건물 같았다. “저기서 잘까?” 그냥 버리는 말이었다. “…….”

추니가 아무 말이 없다. 그러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밤중에 산짐승이 내려와서 같이 자자고 하면 어떡하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더 가 보자고.”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하필 식재료도 떨어졌다. 배는 고프고 갈 길은 멀다.

드디어 무바즈 마을이 나타났다. 작은 부락이라서 인적이 보이질 않았다. 우린 누구라도 만나려고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달렸다.

문 닫힌 낡은 성당 앞을 지나고, 텅 빈 도로에 우리 둘만 어슬렁거렸다. “이 부락 주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모두 바캉스를 떠난 걸까?”

어쨌든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야할 것 같았다. 여기서 더 가면 큰 산을 또 넘어야 하고, 그 다음 부락에서 숙박이 가능하다는 보장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무바즈 마을.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우린 자전거에서 내려 마을 한가운데를 천천히 걸었다. 때마침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한 여학생이 창문을 열고 밖을 보고 있다가 우연히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봉주르.” 우리가 먼저 말을 건넸다. “…….” “이 마을에 호텔이 있나요?” “…….” “호텔이요, 호텔. 슬리핑!” 우린 두 손을 포개 왼쪽 뺨에 대고 잠자는 시늉을 했다.

“…….” 여학생은 우리를 수상한 듯, 혹은 신기한 듯 쳐다만 봤다. “호텔, 호텔, 슬리핑!” 울타리 너머 불과 10m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더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여학생은 갑자기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창문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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