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결정한 배경으로 세계화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감과 정치 엘리트들이 독점해 온 의회 정치에 대한 도전이 손꼽힌다.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신봉한 신자유주의의 위기이자, 이로 인한 불평등을 방치해 온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영국에 국한되지 않는 전세계적 현상이다. 여기에 정치 아웃사이더들의 포퓰리즘이 더해지면서 브렉시트는 '영국판 트럼프 현상'이라고까지 불린다. 대선을 4개월 앞둔 미국이 브렉시트에 긴장하는 또 다른 이유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 기득권 정치 세력을 제치고 포퓰리스트의 승리로 기록될 브렉시트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가 두려워해야 할 사건이라고 했다.
브렉시트는 노년층, 백인, 중산층 이하의 서민, 지방 거주자들이 주로 지지했다.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성향도 이와 비슷하다.
브렉시트 찬성파처럼 트럼프는 이들에게 '자국 우선주의'를 부추기며 호응을 얻고 있다. 그가 내세우고 있는 이민 제한, 국경 강화, 국제주의 반대 등 신고립주의는 브렉시트 찬성 진영의 논리와 쌍둥이다.
워싱턴포스트(WP)도 브렉시트는 전통적인 관념과 분석들이 거부당했음을 보여준다며 충격적인 사건들이 줄을 잇지 않는다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물론 브렉시트가 곧바로 미국 여론까지 자극해 트럼프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CNN은 브렉시트가 EU라는 외부의 압력을 주권침해로 인식한 영국인들의 반발인 반면, 트럼프 현상은 이와 성격이 달라 단결력을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또한 EU 탈퇴냐 잔류냐는 한가지 이슈를 묻는 국민투표와 달리 복합적 판단을 묻는 대선의 의미도 다르다는 것이다.
좌충우돌 하는 트럼프의 말실수도 트럼프의 대선 전망을 어둡게 하는 상수다. 브렉시트 결정이 나왔을 때 스코틀랜드에 머물던 그는 트럼프 턴베리 골프장 개장식에서 "파운드 가치가 떨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영국에 여행할 것이며, 내 골프장에도 더 많이 올 것"이라며 "이는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브렉시트 문제를 놓고 자신의 사업적 이해만 따지는 듯한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는 "영국인들이 국가를 되찾았으며, 그것은 위대한 일"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클린턴 캠프는 "미국의 이익보다 골프장의 이익을 우선시했으며, 미국의 가정이 브렉시트로 인해 타격받을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역대급' 비호감 후보로 꼽히는 트럼프만큼 클린턴도 대중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 놨다. 월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엘리트 정치인이라는 클린턴의 이미지가 쉽게 바뀔 가능성도 많지 않다.
무엇보다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압축되는 대중들의 속마음이 서구에서 최근 진행된 거의 모든 선거에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세계적인 이슈인 불평등 문제에 클린턴은 이렇다 할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기득권의 표상으로 잡아가고 있다.
브렉시트를 미국 대선과 연결시킨 미국 주류 언론의 예민한 반응이 기존의 관습대로 미국 대선을 전망하기 어려워진 현실을 드러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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