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싸! 고속도로를 달리다니!
8월 30일. 티옹빌을 떠나 운하(Canal) 제방 길을 따라 메스(Metz)로 향했다. 메스를 10km 정도 앞두고 달리고 있는데 사이클 복장의 빨간 고글을 쓴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코리아? 텐트? 캠핑할 거예요?” “예스, 사우스 코리아. 캠핑하려고요.” “메스 시내에 좋은 캠핑장이 있는데 안내해 드릴까요?”
빨간 고글 아저씨는 속도를 줄여 나란히 달리며 또 다시 물었다. “예, 고맙습니다.” 마침 메스에서 캠핑장을 찾으려던 참이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고글 아저씨는 앞서 달리다가 연신 뒤를 돌아봤다. 아마 우리 화물 자전거와 함께 달리느라 지루했던 모양이다.
캠핑장에 도착해 고글 아저씨는 접수창구에서 한참 동안 무슨 얘기를 나누더니 우리한테 텐트 칠 위치와 편의 시설에 대해 상세히 알려 주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우린 청실홍실 기념품을 줬다.
잠시 후 접수창구에서 일하는 젊은 친구가 갑자기 머리를 쑥 바깥으로 내밀며 “고~마~워”라고 말한다.
깜짝 놀라서 한국어를 언제 배웠느냐고 물으니까 그게 아니고 방금 인터넷에서 한국 인사말을 찾았다고 한다. 귀여운 친구였다.
메스 캠핑장 앞 세유 강은 가득 찬 맑은 물에 백조들이 노닐고, 낚시꾼들이 여기저기 터를 잡고 있었다. 보 아래에선 청소년들이 카약을 즐기고, 보 위쪽에선 시민들이 보트를 타고 있었다.
텐트 치고 나서 메스 시내 구경을 나왔는데 인상 깊었던 것은 찻길보다 더 넓은 보행로였다. 메스는 인구 겨우 13만 명에 불과하고, 수도권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내에는 전문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거리에는 시민들이 가득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활기찬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다음 날 아침. 물안개와 버드나무가 뒤섞여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세유 강을 뒤로하고 낭시(Nancy)로 가는 이정표를 살피며 길을 나섰다.
지도를 보니 낭시에서 파리를 경유해 대서양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작은 부락들을 촘촘히 들를 수 있을 것 같다.
낭시로 가는 자전거 길을 찾느라 한 시간 동안 메스 시내를 헤맸다. 깨진 시멘트 포장길과 아스팔트 찻길을 번갈아 달리며 겨우 시내를 빠져나왔다.
이어 비포장 산길이 나타났고, 명찰 크기의 방향 표지판이 나무에 겨우 붙어 있었다. 노면이 여기저기 움푹 파여 있고, 곳곳에 진흙 길이 이어졌다.
빠늬(Pagny) 부락에 다다르자 아예 자전거 길 표지판마저 보이질 않아 다리를 잘못 건넜다. 다시 돌아와 지나는 이에게 낭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이 길로 쭉 가면 나온다고 일러 주었다.
곧 갓길 없는 아스팔트 도로가 나타났고, 머지않아 자전거 길 안내 표지판이 나올 거라 기대하며 차량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을 넘게 달려 회전 로터리를 들어서자 낭시 방향 이정표가 번쩍 눈에 띄었다.
우린 낭시 방향의 녹색 이정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곧 아스팔트 노면이 양호해지고, 갓길도 넓어져 한참 동안 과속으로 내달렸다. 기분 최고였다.
빵빵. 지나는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우리를 격려해 줬다. 빵빵빵. 뒤이어 여러 대가 경적을 울렸다. “손을 흔들어 주면 되지, 왜 빵빵거리는 거야! 유럽에 무식한 사람들도 꽤 많네.”
그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기분 좋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우리가 달리는 갓길 앞으로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멈추더니 건장한 청년이 차에서 내려 우리에게 다가와 목청 높여 뭐라 뭐라 한다.
이 도로는 위험하다는 얘기인 것 같았다. 그 청년은 팔을 길게 뻗으며 다시 돌아 나가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자전거는 한 대도 보이지 않고 차량들만 총알같이 달리고 있었다.
아뿔싸! 고속도로였다. ‘그래, 고속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면 안 되지!’ 근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중앙 분리대를 넘어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사람의 말이나 제스처를 보면 당장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청년의 말과 행동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었다.
“OK. OK. 알았어요. 땡큐. 땡큐. 알았다니까요.” 우린 무슨 얘긴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저만치 앞에 보이는 육교를 가리키며 저 다리를 건너 빠져나가겠다고 했다.
그 청년도 육교를 보더니 그러라고 하면서 서두르라는 제스처를 하고 그대로 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렇게 육교 쪽을 향해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 또 다른 승용차가 우리 앞에서 급정지했다. 이번엔 어떤 아주머니가 차에서 내려 또 뭐라 뭐라 하신다. 같은 내용인 것 같았다. “OK. OK. 땡큐.” 두 번의 경고를 받고 육교 아래에 도착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그 육교는 고속도로와는 연결되지 않은, 즉 고속도로 위를 지나가는 작은 도로였다.
“흠, 어쩌지?” 난감했지만 오히려 마음은 체념한 듯 가라앉았다. 도로 양옆은 철제 가드레일과 잡목으로 촘촘히 외부와 차단되어 있었다.
온 길을 다시 역주행하는 것은 너무 멀고,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고, 앞으로 직진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무조건 앞으로 ‘GO’다. 죽어도 ‘GO’다. 달리다 보면 다른 도시로 나가는 인터체인지가 나오겠지.
“걱정 말아요. 좋은 수가 있겠지 뭐!” 추니한테 대책 없는 빈말을 던졌다. 달리는 도중에도 차량들은 연신 경적을 울려 댔다.
“안다. 알았어. 그래 무슨 뜻인지 알았다니까. 그래, 곧 경찰이 출동하겠지. 그리고 우리는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거야.
그래도 할 수 없지. 잘못했다고 말하지 뭐. 길을 잃어서 그랬다고 하고 벌금 내라면 내야지 달리 방법이 없잖아. 설마 신병 구속이야 하겠어?”
나도 연신 혼자 떠들며 정신없이 계속 달렸다. ‘앗! 저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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