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6.15 남북 공동 선언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평화 통일 시민 강좌'를 연재합니다.
지난해에 이어 2회째를 맞은 평화 통일 시민강좌는 남북 교류 협력 재개 촉구를 주제로 오는 6월 25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진행됩니다.
지난 6월 11일 네 번째 순서로 서울 정동 레이첼카슨홀에서 '남북이 함께 준비하는 언어통일, 겨레말큰사전'을 주제로 김병문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책임연구원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겨레말큰사전>의 의미와 남북의 '언어 통일'을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정리했습니다.
지난 6월 11일 네 번째 순서로 서울 정동 레이첼카슨홀에서 '남북이 함께 준비하는 언어통일, 겨레말큰사전'을 주제로 김병문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책임연구원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겨레말큰사전>의 의미와 남북의 '언어 통일'을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정리했습니다.
1989년 문익환 목사가 방북했을 때 김일성 주석과 통일국어대사전을 만들기로 합의 했습니다. 2004년 남측의 통일맞이와 북측의 민족화해협의회가 이전에 있던 일을 상기하여 의향서를 체결하고 2005년 남북이 금강산에서 결성식을 가졌습니다. 2006년 (사)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가 출범하여 사업승계를 받고 매년 4차례 남북이 편찬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정지되었던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은 2014년도에 재개됐습니다. 2014년 두 차례, 2015년 평양, 금강산, 중국 심양‧대련을 옮겨가며 세 차례 편찬회의를 진행했으며 마지막 12월 대련회의에서 2016년 2월에 편찬회의를 하기로 약속했으나 남북관계가 단절되어 현재까지 편찬회의를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2008년까지는 본격적 원고작성을 하기에 앞서 <겨레말큰사전> 올림말을 정하고 자모 배열순서와 자모의 이름을 정하는 등 큰 틀의 내용을 합의했습니다. 2009년부터 <겨레말큰사전> 사전을 집필하기 시작했으며 남과 북이 반반씩 나누어 집필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4~5차례 편찬회의를 하여 2019년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모든 것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겨레말큰사전>은 33만 개의 어휘가 실리는 대사전입니다. 남측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측의 <조선말대사전>에 실린 50만 개의 어휘 중 사전에만 있고 쓰지 않는 말들은 버리고 23만 개의 어휘를 추렸습니다. 그리고 지역어와 기존 사전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소설이나 문헌에는 있는 새로운 어휘 10만 개를 발굴하여 올림말 33만 개를 선정했습니다.
집필회의는 8개 조로 운영되며 남측은 2명, 북측은 1~2명이 한조를 이루어 7박 8일 동안 회의를 합니다. 한 조당 남측원고 1500개, 북측원고 1500개를 합의하고 옵니다.
갈치와 칼치, 강낭콩과 강남콩
남북이 차이가 나는 형태 표기를 <겨레말큰사전> 에 적용하기 위해 단일화 작업을 하였습니다.
자모배열
'ㅇ'은 소리가 없기 때문에 북측에서는 자모 순서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ㄱ~ㅎ' 다음에 'ㅇ'이 나옵니다. 'ㄲ'이나 'ㄸ'같은 경우 남측은 한글 24자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전에는 'ㄱ' 'ㄲ' 'ㄴ' 'ㄷ' 'ㄸ'순서로 들어가죠. 북측은 'ㄲ'나 'ㄸ'도 엄연한 글자로 취급합니다. '살'과 '쌀'은 다르니 자모로 인정하여 'ㄱ~ㅎ, ㄲ~ㅉ,ㅇ'으로 자모 40개로 합니다. <겨레말큰사전>에서는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ㄲㄸㅃㅆㅉ' 순서로 들어갔습니다.
'나방'은 '나비'로 통하고 '오징어'는 '낙지'로 통한다
<겨레말큰사전> 은 한 어휘에 남, 북, 해외(연변이나 재일동포)에서 쓰는 예들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중고등학생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뜻풀이를 쉽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의 정보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눅다'라는 말은 남북 둘 다 쓰는 말이지만 북측에서는 '싸다'라는 뜻으로 의미가 다릅니다. 이런 경우 둘 다 <겨레말큰사전>에 실었습니다.
<표준말국어대사전>과 <조선어대사전>은 표준어 중심이기 때문에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한 문화어를 반영합니다. 하지만 <겨레말큰사전>은 지역어, 사투리 방언을 충실하게 반영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라도 방언 '가투'(벌레 먹은 콩이나 팥)와 같은 어휘도 들어갑니다.
북측에서는 나비와 나방을 통틀어 '나비'라고 합니다. 남측도 원래는 '나방'이란 단어가 없었는데요, 일제 강점기부터 생겨난 말입니다. 이런 어휘의 경우 '나비ː 1. 나비 2. 남측의 나비와 북측의 나비와 나방을 일컬음' 으로 해설하며 북측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나비는 앉을 때 날개를 접고 나방은 날개를 펼친 상태로 앉는다'라고 추가 해설을 해줍니다.
북측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라고 합니다. 식당에 가서 낙지 달라고 하면 오징어가 나옵니다. 변별이 되지 않는 것인데요, 아마도 이것은 잘 안 잡히기 때문에 잘 먹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분단과 지역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는 <겨레말큰사전>
이런 차이는 분단 이후에 생긴 것이 아니고 그 이전부터 생긴 것입니다. 남북 언어의 이질화를 걱정하는 많은 분들이 북측에 책임을 돌리며 북측에서 말을 이상하게 써서 이질화가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북의 말이 다른 것은 사회나 제도상의 차이도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방언, 즉 지역마다 달리 말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남측에서 지역마다 부추를 정구지, 솔 이라고 다르게 쓰는 것처럼 남북의 차이도 분단 이전부터 지역마다 달리 쓰는 말이 많습니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감자를 고구마라 부르고 우리가 아는 감자는 '하지감자'라고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라 하고 감자는 '지슬'이라고 합니다. <겨레말큰사전>에서는 분단 상황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자는 취지로 지역어를 표준어나 문화어로 인정하여 모두 싣고자 했습니다.
방언적인 차이는 음운에서도 나타나는데요, 북측은 'ㅓ'와 'ㅗ'가 가까워서 발음이 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편찬회의를 하면서 만난 북측 분과 인사를 하는데 북측 인사가 "장용남입니다"라고 해서 "아, 장영남 씨, 반갑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아니요, 장용남입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네, 장영남"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분이 한글로 이름을 적어줬고 제가 죄송하다고 하니까 "괜찮습니다. 개성사람도 잘 못 알아듣습니다"라고 하더군요.
분단이 되어 70년이 흘렀지만 중부방언을 쓰는 개성사람들도 평양어 중심의 교육을 받아도 발음에는 중부방언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도 표준어 교육을 하지만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가 남아 있는 것처럼요.
분단 이후 문법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휘는 우리가 지역적인 차이가 있는 것처럼 남북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입니다. '증권'이나 '주식시장' '유상증자'처럼 사회제도적인 차이에서 나오는 언어 차이는 교류가 되고 서로가 사는 모습을 가깝게 보면 충분히 금방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시대가 지나면서 계층이나 연령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말이 있습니다. '덕담'은 남측에서는 새해때 하는 말이지만 북측에서는 말을 주저리 늘어놓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도 분단과 큰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흘러가면서 새로 생기거나 변하는 것입니다. '도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측에서는 도령을 높여 부르거나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을 높여 부르는 용어지만 북측에서는 두 번째 의미로는 쓰지 않습니다. '도련님'도 시대가 지나면 쓰지 않는 용어가 될 수 있습니다.
외래어나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꾸기도 합니다. 이것은 북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측도 '제형'을 '사다리꼴'로 우리식으로 바꾸어서 씁니다. 북측은 제형이라고 합니다. 북측이 외래어를 전부 순화시켰다고 오해하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로 제시했는데 북측의 인민들이 쓰지 않으면 사전에서 빼버립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스크림이나 '에스키모'라고 합니다. 미원은 '맛내기'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민들이 쓰므로 사전에 올립니다.
'노동'이냐 '로동'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제일 어려운 것은 두음법칙과 사이시옷 문제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협상으로 미루어 놓았습니다. '노동신문'으로 할 것인지 '로동신문'으로 할 것인지가 가장 큰 쟁점이고 서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북은 원래의 형태를 밝혀주는 것이 좋다고 하고 남측의 맞춤법도 원래의 형태를 밝혀주되 발음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합니다. 1933년 맞춤법 통일안의 원칙도 원래의 형태를 밝혀주는 것입니다. '읽는다(잉는다)' '읽고(익꼬)' '읽어(일거)' 소리가 제각각 다르지만 'ㄺ'을 다 밝혀주는 것이 그 예입니다.
'먹다(먹따)' '먹고(먹꼬)' '먹어(머거)'도 받침 'ㄱ'의 소리가 다르게 나지만 'ㄱ'으로 표시해 주는 것처럼 북측은 소리가 바뀌는 것에 구애됨없이 원래의 형태를 밝혀주어야 한다고 해서 '로동'이라고 표기합니다. 남측은 '노동'과 '근로자'의 차이처럼 두음법칙이 적용됩니다.
1933년 한글 맞춤법의 원칙도 표기와 발음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시경 선생이 처음으로 제기했는데요, '낫, 낯, 낮, 낱, 낟'은 발음이 같지만 맞춤법이 다릅니다. 다 구분해서 써야 합니다. 처음 주시경 선생 이론대로 했을 때에도 논란이 많았습니다. 어렵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이것이 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북측은 해방이후 조선어학회의 이극로 선생이 올라가 조선말의 기본 틀을 짰습니다. 북측은 1933년 한글맞춤법의 원칙을 충실하게 적용했을 때 '로동'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고 하여 그렇게 정했습니다. 또한 의식적인 실천으로 'ㄹ'발음도 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보면 언어학적으로는 협의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겨레말큰사전>과 관계없이 남측의 일부 국어학자들은 남북의 표기를 비교할 때 두음법칙에 대해서는 북측의 표기가 합리적인 것이 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버스를 '뻐스'라 읽고 골대를 '꼴대' 가운을 '까운'으로 발음하는 것과 같이 발음과 표기는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문제가 간단치 않습니다. 여러 고려사항이 있습니다. 예전에 <겨레말큰사전>을 TV에서 방영한 적이 있는데 자세한 이유와 과정 없이 남측 안 몇 개, 북측 안 몇 개, 복수로 채택된 것이 몇 개 이런 식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남북이 대결하는 것처럼 말이죠. 바로 북측에서 이런 식이면 우리는 회의를 못한다며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두음법칙도 순수하게 언어학적으로만 볼 수만 없습니다. 분명 국민들 사이에서 거부감이 있습니다. 사전은 꼭 언어학적으로만이 아니라 대중들이 읽고 이해해야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므로 쉽게 정리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사이시옷 문제에 대해서는 설문조사를 해보더라도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등교, 등굣길, 장마, 장맛비 같이 굳이 사이시옷을 붙여야 하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북측은 사이시옷을 쓰지 않습니다. 두음법칙과 같은 원리입니다. 원래의 형태를 씁니다. 사이시옷은 쓰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되찾기' 정신을 잇는 <겨레말큰사전>
1920년대 후반 최현배, 이극로, 김윤경, 이희승 등 당시 쟁쟁한 언어학자들이 모여 사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자모음 순서를 정하고 표준어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사전은 어떻게 만들지 논의하여 1933년 맞춤법 통일안이 나옵니다. 조선어사전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을 때 조선어학회사건(1942년)으로 대부분의 회원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회원분들중에 옥중에서 돌아가시기도 하고 해방 될 때까지 감옥에 계시다 해방 후에 풀려난 분도 계신데, 이 분들이 다시 사전을 집필하려고 보니 사전원고가 없었습니다. 이후 수소문을 통해 서울역에서 원고를 찾았고, 예정보다 늦어진 1957년 한글학회에서 <우리말큰사전>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분단이 된 이후였고, 조선어학회에서 사전을 만들던 많은 분들이 북으로 올라가서 다른 사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조선어학회때 사전을 만들었다면 모르겠지만, 이것이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남북이 한반도 전역에서 머리를 맞대고 만든 사전이 없습니다.
<겨레말큰사전>은 역사적으로 보면 식민지시대 때 우리 말을 되찾기 위한 작업이었으나 미완으로 끝난 사전작업을 잇는 작업입니다. 통일을 준비하고 예비하는 차원에서 남북의 말과 지역어를 함께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분단과 지역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는 <겨레말큰사전>
이런 차이는 분단 이후에 생긴 것이 아니고 그 이전부터 생긴 것입니다. 남북 언어의 이질화를 걱정하는 많은 분들이 북측에 책임을 돌리며 북측에서 말을 이상하게 써서 이질화가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북의 말이 다른 것은 사회나 제도상의 차이도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방언, 즉 지역마다 달리 말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남측에서 지역마다 부추를 정구지, 솔 이라고 다르게 쓰는 것처럼 남북의 차이도 분단 이전부터 지역마다 달리 쓰는 말이 많습니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감자를 고구마라 부르고 우리가 아는 감자는 '하지감자'라고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라 하고 감자는 '지슬'이라고 합니다. <겨레말큰사전>에서는 분단 상황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자는 취지로 지역어를 표준어나 문화어로 인정하여 모두 싣고자 했습니다.
방언적인 차이는 음운에서도 나타나는데요, 북측은 'ㅓ'와 'ㅗ'가 가까워서 발음이 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편찬회의를 하면서 만난 북측 분과 인사를 하는데 북측 인사가 "장용남입니다"라고 해서 "아, 장영남 씨, 반갑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아니요, 장용남입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네, 장영남"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분이 한글로 이름을 적어줬고 제가 죄송하다고 하니까 "괜찮습니다. 개성사람도 잘 못 알아듣습니다"라고 하더군요.
분단이 되어 70년이 흘렀지만 중부방언을 쓰는 개성사람들도 평양어 중심의 교육을 받아도 발음에는 중부방언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도 표준어 교육을 하지만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가 남아 있는 것처럼요.
분단 이후 문법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휘는 우리가 지역적인 차이가 있는 것처럼 남북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입니다. '증권'이나 '주식시장' '유상증자'처럼 사회제도적인 차이에서 나오는 언어 차이는 교류가 되고 서로가 사는 모습을 가깝게 보면 충분히 금방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시대가 지나면서 계층이나 연령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말이 있습니다. '덕담'은 남측에서는 새해때 하는 말이지만 북측에서는 말을 주저리 늘어놓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도 분단과 큰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흘러가면서 새로 생기거나 변하는 것입니다. '도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측에서는 도령을 높여 부르거나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을 높여 부르는 용어지만 북측에서는 두 번째 의미로는 쓰지 않습니다. '도련님'도 시대가 지나면 쓰지 않는 용어가 될 수 있습니다.
외래어나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꾸기도 합니다. 이것은 북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측도 '제형'을 '사다리꼴'로 우리식으로 바꾸어서 씁니다. 북측은 제형이라고 합니다. 북측이 외래어를 전부 순화시켰다고 오해하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로 제시했는데 북측의 인민들이 쓰지 않으면 사전에서 빼버립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스크림이나 '에스키모'라고 합니다. 미원은 '맛내기'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민들이 쓰므로 사전에 올립니다.
'노동'이냐 '로동'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제일 어려운 것은 두음법칙과 사이시옷 문제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협상으로 미루어 놓았습니다. '노동신문'으로 할 것인지 '로동신문'으로 할 것인지가 가장 큰 쟁점이고 서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북은 원래의 형태를 밝혀주는 것이 좋다고 하고 남측의 맞춤법도 원래의 형태를 밝혀주되 발음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합니다. 1933년 맞춤법 통일안의 원칙도 원래의 형태를 밝혀주는 것입니다. '읽는다(잉는다)' '읽고(익꼬)' '읽어(일거)' 소리가 제각각 다르지만 'ㄺ'을 다 밝혀주는 것이 그 예입니다.
'먹다(먹따)' '먹고(먹꼬)' '먹어(머거)'도 받침 'ㄱ'의 소리가 다르게 나지만 'ㄱ'으로 표시해 주는 것처럼 북측은 소리가 바뀌는 것에 구애됨없이 원래의 형태를 밝혀주어야 한다고 해서 '로동'이라고 표기합니다. 남측은 '노동'과 '근로자'의 차이처럼 두음법칙이 적용됩니다.
1933년 한글 맞춤법의 원칙도 표기와 발음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시경 선생이 처음으로 제기했는데요, '낫, 낯, 낮, 낱, 낟'은 발음이 같지만 맞춤법이 다릅니다. 다 구분해서 써야 합니다. 처음 주시경 선생 이론대로 했을 때에도 논란이 많았습니다. 어렵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이것이 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북측은 해방이후 조선어학회의 이극로 선생이 올라가 조선말의 기본 틀을 짰습니다. 북측은 1933년 한글맞춤법의 원칙을 충실하게 적용했을 때 '로동'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고 하여 그렇게 정했습니다. 또한 의식적인 실천으로 'ㄹ'발음도 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보면 언어학적으로는 협의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겨레말큰사전>과 관계없이 남측의 일부 국어학자들은 남북의 표기를 비교할 때 두음법칙에 대해서는 북측의 표기가 합리적인 것이 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버스를 '뻐스'라 읽고 골대를 '꼴대' 가운을 '까운'으로 발음하는 것과 같이 발음과 표기는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문제가 간단치 않습니다. 여러 고려사항이 있습니다. 예전에 <겨레말큰사전>을 TV에서 방영한 적이 있는데 자세한 이유와 과정 없이 남측 안 몇 개, 북측 안 몇 개, 복수로 채택된 것이 몇 개 이런 식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남북이 대결하는 것처럼 말이죠. 바로 북측에서 이런 식이면 우리는 회의를 못한다며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두음법칙도 순수하게 언어학적으로만 볼 수만 없습니다. 분명 국민들 사이에서 거부감이 있습니다. 사전은 꼭 언어학적으로만이 아니라 대중들이 읽고 이해해야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므로 쉽게 정리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사이시옷 문제에 대해서는 설문조사를 해보더라도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등교, 등굣길, 장마, 장맛비 같이 굳이 사이시옷을 붙여야 하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북측은 사이시옷을 쓰지 않습니다. 두음법칙과 같은 원리입니다. 원래의 형태를 씁니다. 사이시옷은 쓰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되찾기' 정신을 잇는 <겨레말큰사전>
1920년대 후반 최현배, 이극로, 김윤경, 이희승 등 당시 쟁쟁한 언어학자들이 모여 사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자모음 순서를 정하고 표준어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사전은 어떻게 만들지 논의하여 1933년 맞춤법 통일안이 나옵니다. 조선어사전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을 때 조선어학회사건(1942년)으로 대부분의 회원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회원분들중에 옥중에서 돌아가시기도 하고 해방 될 때까지 감옥에 계시다 해방 후에 풀려난 분도 계신데, 이 분들이 다시 사전을 집필하려고 보니 사전원고가 없었습니다. 이후 수소문을 통해 서울역에서 원고를 찾았고, 예정보다 늦어진 1957년 한글학회에서 <우리말큰사전>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분단이 된 이후였고, 조선어학회에서 사전을 만들던 많은 분들이 북으로 올라가서 다른 사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조선어학회때 사전을 만들었다면 모르겠지만, 이것이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남북이 한반도 전역에서 머리를 맞대고 만든 사전이 없습니다.
<겨레말큰사전>은 역사적으로 보면 식민지시대 때 우리 말을 되찾기 위한 작업이었으나 미완으로 끝난 사전작업을 잇는 작업입니다. 통일을 준비하고 예비하는 차원에서 남북의 말과 지역어를 함께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작업은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언어적으로 보면 첫걸음에 불과합니다. 공동으로 사전을 작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언어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남북 간 이질감과 언어 태도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쓰는 말을 통하여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됩니다. 나이가 몇 살인지, 지역은 어디 사람인지, 교육수준은 어떠하고 경제적 계층은 어디에 속하며 어떤 성격일지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게 되죠.
남북통일 이후에 어미 하나하나의 문제보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동서독이 통일되었을 때 서독사람들이 동독 말을 쓰는 사람을 낮잡아 보았습니다. 문법적, 어휘적으로 잘못이 없는데 어떤 쪽의 어휘를 쓰는지 억양은 어떠한지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죠.
이런 태도는 우리 내부에도 있지만 통일이 되었을 때 문제가 될 것입니다. 형태를 통일하고 맞춤법을 맞추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쉬운 일입니다. 통일되기 전에 우리가 북한을 보는 태도와 관점이 어떻게 성숙되어 있느냐에 따라 언어적인 문제가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습니다.
<겨레말큰사전>을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 언어 태도를 고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신 여러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접근을 잘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겨레말큰사전>이 비로소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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