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시 사패산에서 6월 7일에 일어난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검거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모양이다. 최근 흉흉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어 누구나 착잡한 마음일 텐데, 그나마 사건 발생 3일 만에 유력한 피의자가 잡혀 다행이다.
피의자 정모 씨(45)의 범행 동기와 관련해 동기에 성폭행이 포함되는지 안 되는지가 뉴스의 주요 관심거리로 보도되고 있다. 나에겐 단위가 다른 비슷한 두 개의 숫자가 뇌리에 남아서 떠나지 않는다.
먼저 1만5000원. 범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고 피해자의 지갑에서 빼앗아간 돈이다. 사람 목숨 값이 1만5000원이고, 1만5000원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식의 설명은 우리가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다 하여도 무척 불편하다. 결과로서 피해자가 우연찮게 강탈당한 돈이 1만5000원인 것이지, 범인이 그 돈을 노리고 범행을 벌이지는 않았을 터이다. 피해자의 지갑 안에 1만5000원밖에 없었음을 사전에 알았다면 범인이 범행에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일단 1만5000원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설명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강탈할 금액이 1억5000만 원이거나 15억 원이면 살인의 동기로 납득할 만한 금액일까. 영화 <몽타주>(2012년 개봉)에서 아동 유괴범이 제시한 금액이 5000만 원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범행과정에서 유괴한 아동을 죽게 만들어 범인은 결과적으로 살인의 대가로 5000만 원을 수중에 넣는다.
언론보도에서는 죽음의 값어치를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흔히 관련된 금액이 특정된다. 그 금액이 영화 <몽타주>처럼 계획되었을 수도 있고 사패산 사건처럼 아닐 수도 있다. 또 사패산 살인사건처럼 1만5000원일 수도 있고, 영화처럼 5000만 원일 수도 있다. 사전에 어떤 금액이 계획되었든, 모르는 상태에서 사후적으로 금액이 결정되었든, 또한 그 금액이 크든 작든, 돈을 목적으로 한 살인사건에서 유일한 사건은 돈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돈 때문에 간단하게 사람 목숨을 취할 수 있는 세상이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실체적 진실로 생활에 밀착한 상황은 소름끼친다.
나아가 비록 사후적으로 확정되었지만 1만5000원이란 푼돈이 상징하는 살인범죄의 '생활밀착' 극치는 사회병리가 일반적인 생활인에게 보편적 위험으로 전가된 악몽으로 규정될 수 있다. 1만5000원은 인간 목숨의 교환가치가 아니라 보편적 위험으로의 입장료이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나쁜 짓 혹은 '죽을 짓'을 하지 않아도 노래하다가 죽을 수 있고, 등산하다가 죽을 수 있고, 게다가 숨 쉬다가도 미세먼지로 죽을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기억에 남은 또 다른 숫자는 1시간 반이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사건발생 3일째인 10일 밤 10시 55분쯤 의정부경찰서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현재 검거 상태인 정씨가 자신이 사패산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때까지 경찰은 살인현장으로 이어지는 사패산 샛길 폐쇄회로(CC)TV 분석과 DNA 대조에서 딱히 명확한 단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보도를 근거로 체포과정을 정리하면, 전화를 받은 의정부경찰은 장난 전화가 아니라 피의자의 자수임을 직감하였다. 정 씨는 술을 마신 상태로, 범행을 고백한 데 이어 자신이 현재 강원도 원주시내에 있다고 밝혔다. 소재를 밝히는 순간 형사들이 원주시로 급파되었고, 그 사이에 고참 형사가 정 씨와 통화를 이어나갔다. 기사에는 "그 사이 정 씨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도주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며 "곧바로 기지가 발휘됐다. 형사들이 (원주에) 도착하기 전까지 통화를 계속하기로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기사에 따르면 의정부 경찰서에서 정 씨가 있는 곳까지는 빨리 가도 1시간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의정부 경찰은 중간중간 끊었다가 통화하기를 반복하며 정 씨를 안정시켰고, 용의자의 심리를 아우르고 달래주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긴박하기 그지없는 범죄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 체포 작전은 급파된 의정부 경찰이 11일 오전 0시 33분에 그때까지 통화를 하며 바람을 쏘이고 있던 정 씨를 살인 혐의로 검거하면서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무용담을 연상케 하는 기사를 읽으며 든 생각은 정 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의정부 경찰은 지근의 원주지역 경찰에게 연락하는 대신 1시간반 이상 떨어진 거리임을 알면서 왜 자기네 형사들을 보냈을까 하는 것이었다. 영화 <몽타주>를 보면 범인 체포과정에서 두 형사가 순차적으로 용의자를 덮친다. 먼저 용의자를 넘어뜨린 주인공 형사(김상경) 대신에 나중에 숟가락을 얹은 격인 조연 형사(조희봉)가 수갑을 채운다. 이후에 조희봉은 자신이 범인을 체포했다고 강조하는 대목이 극중에 나온다.
"민첩하게 대응하였다"고 보도된 의정부 경찰이 굳이 자기네 형사를 보낸 이유가 설마 영화와 같은 이유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일주일을 힘들게 일하다가 하루 시간을 내 산행을 통해 모처럼 휴식을 취하려다 불귀의 객이 된 피해자를 생각하면 영화 같은 발상은 현실에서 나타나선 안 된다. 그렇다면 원주지역에는 용의자를 잡으러 출동할 만한 믿을 만한 경찰이 없었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1시간 반 통화하는 동안 정 씨는 아무 때고 전화를 끊고 다른 곳으로 잠적할 수 있었다. 1분 초가 중요한 시점에 굳이 자기네 인력 말고는 아무도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경찰조직이 무능하기에, 혹은 공조나 긴급한 업무협조가 안 되기에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을까.
안 했어도 문제, 못 했어도 문제이다. 만약에 영화와 같은 이유로 정 씨를 검거하는 데 1시간 반을 허비하였다면, 의정부 경찰은 문책을 받아야 한다. 아직 피의자 신분이지만 정황상 범인인 정 씨가 또 만약에 통화 중 도주하였다면 국민은 또 한 명의 살인범과 함께 생활하는 가중된 보편적 위험에 노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1분 1초를 아끼지 않고 기꺼이 1시간 반을 받아들이는 경찰의 태도가 1만5000원을 보편적 위험의 입장료로 기능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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