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여성 살인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 내 여성 혐오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다. 여성들은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언론을 지목하며, 언론이 성 평등 보도에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하얀 마스크를 쓴 20대 여성 10여 명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 모여 주섬주섬 흰 천막을 펴들었다. '우리는 기자회견女인가'라는 문구였다.
'20대 여자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참가자는 '김치녀', '트렁크녀' 등 언론의 '○○녀', '○○맘' 표현 사용이 여성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 사건을 보고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우리가 집에 가다가 폭행을 당하거나 살해당하면 뭐라고 나올까'라고 물으니, '왕십리 노래방녀', '안암동 술집녀', '고대녀' 같은 말이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론은 피해자를 마음대로 우롱하고, 여성 혐오를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사 쓰기를 하는 언론이 방관자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또 다른 참가자는 강남 여성 살인 사건에 대해 언론이 '묻지마 범죄'로 명명한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가해자는 6명의 남성을 보내고 7번째로 문을 연 여성을 죽였습니다. 경찰이 '조현병에 의한 묻지마 범죄'라고 발표하자, MBC는 빠르게 '여혐이 아닌 피해망상 추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여중생에게 성추행 한 남성에게 집행유예가 내려진 사건에는 '등굣길 여중생에게 '몹쓸 짓''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성폭행, 성희롱이라고 명명하지 않습니까. 묻지마 범죄, 한 순간의 실수, 몹쓸 짓 같은 표현은 성폭력과 여성 폭력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이들은 이같은 언론 행태를 꼬집으며 '우리는 기자회견女인가' 현수막을 찢었다.
이어 언론이 성범죄 보도 권고 기준과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을 따를 것을 요구했다. 한국기자협회가 정한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에는 △언론은 성폭력 범죄의 원인이 일부 개인의 정신적 병리 현상이나 절제할 수 없는 성 욕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성 인식과 양성 불평등 문화 등 사회 문화적 구조에도 있다는 것을 유념하여야 한다. △언론은 성폭력 범죄가 피해자의 잘못된 처신으로 발생하였다거나 피해자가 범죄에 빌미를 제공하였다고 인식될 수 있는 보도를 지양하여야 한다. △언론은 가해자 중심적 성 관념에 입각한 용어 사용이나 피해자와 시민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고 불필요한 성적인 상상을 유발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들은 "언론은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왜 생겼는지 생각해보고 가이드라인만이라도 최소한으로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가이드라인이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는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며,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별도의 성 평등 시정 권고 심의 기준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