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쇠고기 고시강행이나 촛불집회 강경진압만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각종 '이명박식 정책'들 역시 이 대통령의 '유턴'과 함께 다시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공기업 '선진화' 하겠다"…"옳으신 말씀"
대표적인 예가 '공공부문 민영화'와 '규제완화' 정책이다. 26일 청와대에선 주목할 만한 행사가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의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게이오대 교수를 청와대에서 만난 것.
다케나카 교수는 일본 고이즈미 내각에서 경제재정장관, 금융장관, 총무장관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공공개혁 및 우정 민영화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우정 민영화 사업에서는 우편·예금·보험 등 3대 업무를 총괄하는 사원 24만 명, 개인금융자산 보유액 360조 엔의 '공룡'을 성공적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다케나카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와 함께 우정 민영화 등 고이즈미 내각의 구조개혁에 힘입어 일본 경제가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는 여러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재의 '답답함'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또 "공기업 지원으로 연간 20조 원 정도가 들어가고 있다"면서 "민간보다 잘 하는 공기업도 있지만 기능이 분산돼 제대로 안 되고 있다든지 민간에서 맡는 게 더 나을 공기업도 있기 때문에 '공기업 선진화'를 추진하려고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당장 어렵다고 개혁을 미루면 국가 경쟁력이 없어지고 미래가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에 대해 다케나카 교수는 "대통령이 말씀하는 방향이 맞다"면서 "개혁은 논란이 되는 것 또한 불가피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한국의 '경제 대통령'과, 일본의 '민영화 전도사' 사이의 의기투합이었다.
다케나카 교수는 지난 2006년 펴낸 자신의 저서 <구조개혁의 진실 : 일본정부 개혁의 숨은 뒷이야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썼었다.
"(민영화의) 저항세력이나 야당은 대안을 내놓지 않고 비판만 한다. 비판하는 측에는 세 가지의 단순한 유형이 있음을 알아냈다. 첫째는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다. 두 번째 유형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듣고 하라'는 식으로 이른바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며 비판하는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은 '다케나카는 시장원리주의자'라는 식으로 상대를 일방적으로 평가하여 라벨을 붙여 버리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자신에 대한 정책적 '반대론'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부하는 특유의 스타일로 각종 논란을 타고 넘어 왔다. 특히 여전히 진행 중인 '쇠고기 논란'으로 모종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 이 대통령으로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다케나카 교수를 대통령 국제 자문위원에 위촉했다. 일본 고이즈미 내각이 밀어붙인 '민영화 정책'의 일등공신으로부터 한 수 배우겠다는 의도에서다.
'민영화'와 '규제완화'는 'MB노믹스'의 요체
규제완화 작업에도 다시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규제완화는 공공부문 민영화와 함께 '작은정부-큰시장'으로 집약되는 'MB노믹스'의 요체다.
같은 날 대통령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제4차 회의를 열고 금융부분 규제개혁 추진계획 등을 논의했다. 사공일 위원장은 이날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규제개혁 작업은 제조업, 금융을 넘어 앞으로는 보건의료, 관광사업 등 각종 서비스 산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친 상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한 호텔에서 경제5단체장들과의 조찬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경제5단체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투자활성화를 위한 기업환경 개선, 성장 잠재력 확충 노력도 당초 계획대로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야 한다"면서 "특히 투자 활성화를 위한 감세·규제완화 등의 조치가 기업 현장에서 정책효과를 조기에 체감할 수 있도록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기업 선진화? 국면전환 위한 전형적인 '꼼수'일 뿐"
청와대 내부에선 실제 "이젠 민영화와 규제개혁으로 성과를 내는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 동안 속도감 있는 민영화와 규제개혁에 대한 강력한 신념을 갖고 이를 추진하던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이 교체된 데다 여당으로부터의 '속도조절론'이 제기돼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었으나 하루이틀 새 이런 관측은 자취를 감췄다.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전언이 많다.
한 경제정책 전문가는 "국정운영은 '대운하를 안 하겠다'는 식으로는 이끌어 갈 수 수 없다. '뭘 하겠다'는 것을 내 놔야 한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그게 바로 민영화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9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처음 사용한 '공기업 선진화'라는 개념은 기존에 추진하던 '공기업 민영화'와 사실상 동일한 정책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대통령은 지난 기자회견에서 "가스나 물, 전기, 의료보험 등은 애초 민영화 계획이 전혀 없었다"며 "이 문제는 염려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선을 그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기업 민영화라는 표현은 적합한 표현이 아니고, 공기업 선진화"라며 각 부문에 대한 민영화 정책 자체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이는 전형적인 꼼수"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민영화 자체에 대한 비난여론도 높아진 만큼, 이명박 대통령은 '선진화'라고 말만 바꿔 쇠고기 논란으로 봉착한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은 이명박 정부로서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방향"이라며 "결국 '공공부문 선진화'란 여전히 파괴력을 보이고 있는 '철밥통 담론'을 부풀리고, 반(反)공공성 정서를 부채질해 공공부문 전체를 국민의 적으로 돌림으로써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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