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5월 17일), 한국 문학은 작은 문턱 하나를 넘어섰습니다. 데보라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창비 펴냄)가 선정 위원 만장일치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 상은 영국에서, 아니 영연방을 포함하는 영어권 국가 전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 번역상입니다.
오르한 파무크, 옌렌커 등 최종 후보에 함께 오른 작가들 면면에서 선명히 보이듯이, 그해 영국에서 번역해 출간된 비영어권 작가의 작품 중에서 문학적으로 가장 훌륭한 작품에 수상의 영예를 안습니다. 따라서 <채식주의자>의 수상은 단지 한 작가의 경사를 넘어서, 한국 문학의 미래(또는 국제화)에 문학적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문학어로서 한국어의 가능성이 타자를 통해 확인되었다는 점입니다. 근대 이후 문학이란 대개 민족어로 하는 것인 만큼, 사실 타자의 인정 따위는 별로 관계없을지 모릅니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끼리 쓰고 읽고 충분히 즐기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한국 문학이 처한 불리한 상황이 선연하게 들어옵니다.
문학의 중요한 기반을 이루는 출판 산업의 세계화에 따라 국경의 장벽이 낮아져서 해외 문학의 국내 독서 시장 진입이 쉬워지고, 그에 따라 번역의 가속화가 진행되는 중이니까요. 게다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양질의 편집자와 번역자가 출판 시장에 풍부하게 공급됨으로써 이제는 우리말로 읽어도 말맛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질 높은 해외 문학이 한국 문학을 포위한 형국입니다. 문학 독자 자체가 굳이 한국 문학 쪽으로 눈 돌리지 않아도 되는 '바리케이드 효과'가 생겨난 것입니다.
더욱이 영화나 음반 산업이 이미 보여주었듯이, <해리 포터> 이래로 <트와일라잇>, <헝거 게임>이 차례대로 그러했듯이, 전 세계 동시 출간을 통한 블록버스터 전략이 조만간 세계 출판 산업의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으려는 중입니다. 주로 청소년 소설 분야에 속하는 이러한 작품들은 판타지 같은 초현실적 배경을 바탕으로 작품에 다문화 가치를 담는 쪽으로 진화함으로써 문화적 장벽마저 뛰어넘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문학 출판 시장 역시 유례없는 경쟁에 노출되면서 과거의 성세를 잃고 위축을 거듭하는 중이었습니다.
한강은 이른 나이에 시인으로 데뷔했지만, 주로 2000년대 들어 소설 창작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폭력과 자유'라는 작품 세계가 선명해지고, 서사를 다루는 솜씨가 물에 오르기 시작했으므로 2000년대 작가라고 불러야 할 듯합니다. 여러 화자들이 이어지는 한 사건을 복층의 화술로 서술하는 한강의 서사 전략은 그다지 대중적이지는 않았지만, 항상 문학 애호가들을 매혹해 왔습니다.
한국 소설이 가장 공들여 진화시킨 장르인 단편이나 중편의 미학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장편의 서사를 다룰 수 있는 중요한 방법적 진전이었습니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에서도, 한강 소설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될 <소년이 온다>에서도 같은 종류의 화법이 시도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문체의 정묘함에서든, 사건의 기이함에서든 '극단의 서술 미학'을 추구하는 한국의 단편이 한 개인의 운명을 다루는 장편의 호흡을 끌어안기 위하여 기묘하게 진화한 한국 소설의 한 정수가 거기에 있으니까요. (아직은 해외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지만, 성석제, 김영하, 김연수 등의 작품에는 전혀 다른 미학적 자질이 있지요.)
한강의 소설이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것은 한국 문학이 이룩한 미학적 자산의 한 부분이 세계 문학의 유산으로 편입된 것을 뜻합니다. 비로소 해외 문학의 공세에 맞설 만한 좋은 무기 하나를 발견한 느낌입니다. '폭력과 자유의 대립' 같은 인류 전체의 주제들을 자기 고유의 화법으로 발화함으로써 인간성의 고양을 이룩한 작품들은 언제든 세계문학의 죽백에 이름을 올릴 수 있으리라는 것이지요.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잔혹한 작품입니다. 세 편의 연작 소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인 영혜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를 벗고 한 그루 나무로 되는 격렬한 변신 과정을 보여 줍니다. 피를 내고 살을 찢는 폭력에 질식된 육체는 거기에 적응하는 대신 힘차게 자유를 갈망합니다.
처음에 영혜의 선택은 일체의 고기를 거부하는 채식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남편의 몰이해와 아버지의 학대가 중첩되고, 형부에 의한 성적 착취까지 발생하면서 기어이 거식의 실천을 통한 '식물 되기'로까지 이어집니다. 영혼을 닦달하고 육체를 침탈해 지배하려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영혜는 "내장을 다 퇴화"시켜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사는 식물적 신체를 이룩해 갑니다. "답답해서, 가슴이 조여서 견딜 수 없"는 억압적 세계를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추방해 버립니다.
육체가 깡말라 붕괴되면서 오히려 정신은 해방을 향해 달려가는 그 과정은 밀도 높은 미학적 긴장과 함께 마음에 신화적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가 차례로 나와서 그녀의 변신 과정을 나누어 기술하는 특이한 서술 방식, 간결하고 정확하며 강렬한 문장으로 단단히 서사를 짜고 이미지를 응축함으로써, 산문적으로는 죽음이지만 시적으로는 불멸인 식물-인간으로 영혜를 살려내는 작가의 솜씨는 가히 천의무봉입니다. 어릴 때부터 반복되는 가부장적 폭력, 거식증과 같은 초현대적 소재, 여성이 나무로 변하는 신화적 이미지의 재현 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채식주의자>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끔찍한 낯섦(uncanny)'을 하나의 독특성으로 창조해 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고유한 화법을 정교하고 아름다운 영어로 옮겨 문학적 성취를 분명히 나누어 가져야 할 이 소설의 번역자 데보라를 주목하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채식주의자>의 수상은 한국어를 공부한 지 불과 일곱 해밖에 되지 않은 아직 20대 청년의 자발적 결단이 이루어 낸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데보라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런던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익히기 전까지 한국 문학과 아무 인연이 없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한 후 좋은 작품을 고르다가 한강의 작품을 만났고, 한강의 작품을 번역하려고 더 열심히 한국어를 익혔습니다. 물론 그녀의 번역을 지원한 대산문화재단(그리고 한국문학번역원)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이 지점은 문학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를 더욱 밝게 합니다. 하나의 성공은 흔히 또 다른 도전을 낳으니까요. 앞으로 몰려들 한국 문학의 자발적 연구자 및 번역자들을 체계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의 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겠습니다.
어제 수상 발표를 계기로 <채식주의자>가 1분에 9.6권씩 팔려 나가면서 완전히 매진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해서 한국 문학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꽃처럼 활짝 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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