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매주 월요일은 함께하는 과학수다 시간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한 9월의 어느 과학 수업에 학생들은 말 그대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런 상황이 생긴 이유는 열정 넘치는(or 운이 좋은) 교사의 사이언스북스 저자와의 만남 이벤트 당첨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설마 당첨되겠어? 하는 교사의 한가로운 생각이 경상북도 영천에 위치한 아주 작은 학교에 좋은 울림을 발생시켰다. 이 글에서는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에 대해 말하기보다 <과학 수다>(전2권, 사이언스북스 펴냄)라는 훌륭한 책을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과 어떻게 함께 읽어 나갔는지 말하고 싶다.
"과학은 어렵다. 사실 그렇지 않은 학문이 어디 있겠는가" 과학수다1의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이명현 박사가 남긴 말이다. 나 또한 학교 현장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이지만 이 박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럼, 그 어려운 과학을 포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단언컨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
"어려운 탐구 과정을 거쳐서 숨겨진 진실에 다가서서 마주하는 순간, 과학의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이 박사의 이어지는 말을 보아서도 알 수 있겠지만 "과학"이라는 학문은 쉽진 않지만 충분히 재밌을 수 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정작 수업에서는 내용 전달에 급급하여 지루하게 흘러가기 일쑤여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과학을 쉽게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과학 수다> 시리즈를 읽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과학이라는 무궁무진한 세계를 흥미 유발이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한다면 과학이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쉽진 않지만 그러기에 더욱 가치 있는 과학이라는 학문을 학생들과 함께 탐험하기에 <과학 수다>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었다.
독서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실제로 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특히, 스마트폰에 익숙한 요즘 학생들에게 무작정 책을 읽자고 해서는 '핵노잼' 교사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이 때, '<과학 수다> 저자와의 만남'은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었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면소재지에 위치한 학교로 전교생이 4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학교로 올해(2016년 2월)를 마지막으로 학교가 문을 닫고 추억 속으로 남게 될 곳이다.
이런 작은 시골 학교의 학생들이 과학자를 만나 본 적은 없을뿐더러 1년에 과학 도서 한 권 읽는 학생 아무도 없는 것이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2학기가 시작 되며 학생들에게 11월에 과학자 세 분을 모시고 저자와의 만남을 할 것인데 그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며 침 튀기며 강조하여 어리둥절한 학생들을 뒤로 하고 매주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읽고 와서 <과학 수다>의 과학자처럼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였다. 무작정 이야기를 나누는 건 무리라는 판단하여 매주 두세 명의 학생이 발표를 책임지기로 하고 목차만을 보고 자신이 발표할 내용을 선택하여 수업을 진행 하였다(신기하게도 학생들 사이에서는 생전 처음 본 단어일 "중성미자"와 "힉스 입자"가 인기였다).
학교 현장에서 효과적인 독서 지도를 하려면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학생과 교사가 함께 독서를 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라 말하고 교사는 읽어 오지 않는다면 시간 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책을 읽어오지 않은 학생이 있다면 그 시간에는 수업을 진행하지 않고 오롯이 책을 읽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하여, 교사가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감명 깊었던 내용을 학생들과 공유하면서 함께 소통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한꺼번에 많은 내용을 읽으려 하지 말고 조금씩 꾸준히 읽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매주 30쪽 정도 되는 분량의 글을 읽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미뤄지는 순간 이제 더 이상 독서가 아니라 부담스런 짐이다).
셋째, 학생들은 독서 후 글쓰기를 하고 교사는 그에 따른 피드백을 해준다. 독서 기록장은 각 챕터별 핵심(중심 내용), 인상 깊은 구절, 이해하지 못한 단어를 나열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설과는 달리 딱히 줄거리가 없는데다 특히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겐 어려운 개념들이 난무하였기에 100% 이해하는 것을 요구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리고 단순히 기록에서 끝나면 학생들이 어떠한 사고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매주 과학 독서 수업 후 학생들이 작성한 기록장을 보고 개인별 피드백을 하고자 애썼다.
한 학기를 되돌아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과학 독서와 글쓰기에서 긍정적으로 변해 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주제마다 편차가 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때마다, 학생에게 강조한 것은 이 모든 내용을 전부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요즘 과학계에서는 이런 것이 이슈인가보다, 흥미가 생긴다면 좀 더 찾아보자 정도의 마음만 가진다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화는 '기생충'에 대한 내용을 배운 직후 발표된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영역이 '기생충'이었던 것이다. '기생충'이라고 하니 뭔가 더럽고 웃기게 생각한 학생들도 <과학 수다>의 '기생충' 부분을 읽고 '기생충'의 중요성을 새삼 알게 되었고 노벨상까지 받게 된 '기생충'의 쓸모에 더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팔자에도 없는 '양자 역학', '힉스 입자' 등의 내용을 찾고 공부하며 내가 모르는 세계가 정말 많구나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학생들과 함께 배우며 어렴풋이 그 세계의 입구에는 들어선 것이 아닌가 기분 좋은 착각도 하였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과학 독서는 과학 교사에 대한 태도, 과학 수업에 대한 태도, 과학 공부에 대한 태도, 과학의 가치에 대한 태도에서 모두 긍정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함께하는 과학 수다를 시작하며 이러한 거창한 변화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TV와 SNS에서나 접하던 과학자들을 직접 보고 책에 사인을 받고자 했던 처음의 목표를 이루었기에 나는 성공한 과학 덕후가 되었다.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에 <마리텔>(<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과학자가 나오는 그 날까지 과학 덕후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덧글. 앞으로 만나는 학생들과 <과학 수다>를 함께할 것이며 사이언스북스에서는 <과학 수다>를 'WHY?' 시리즈처럼 만들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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