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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는 왜 '살균제 교수'로 전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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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울대 교수는 왜 '살균제 교수'로 전락했나

[기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본 연구 윤리

불행히도 발생과 초기 확산을 방지할 수 있었고, 더욱이 많은 영유아 및 임신부가 희생되지 않아도 될 참사가 발생했다. 옥시로 대표되는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 및 발병 사고는 여러 집단이 관여되어 있지만, 그중 한 집단만이라도 지킬 것을 지키고 제대로 행동했다면 이토록 큰 사회적 비극으로 발전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태에는 관-산-학이라 불리는, 정부의 관련 부처, 기업 그리고 대학 연구자가 관련되었다. 물론 어느 집단도 이런 화학 물질에 의한 살상 사태를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관련 집단들의 부주의하고 무책임한 자세가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중첩되고 쌓여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특히 이번 참사에 있어서 많은 피해자들이 고통을 호소했을 때 바로 잡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심을 받아 구체적 내용이 파악되기까지 5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의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 무게를 이제와 생각해 보면 참담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그 점에서 이번 참사는, 주요 책임 집단인 관-산-학의 몫을 가볍게 하거나 문제의 초점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되겠지만,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은 분명하다.

바닥으로 떨어진 연구 윤리

2011년, 기업 의뢰를 받은 실험에서 '정상이어야 할 대조군에서도 병변이 생겨 호흡 독성 여부를 잘 모르겠다'는 식의 서울대학교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 정부 관련 기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에서 옥시의 호흡 독성을 밝혔다. 그러나 그런 연구 결과는 철저히 묻혔고 피해자의 고통과 억울함은 5년을 더 끌어야 했다.

2011년 이전의 상황은 가습기 첨가제 인허가를 책임진 정부와 소비자 안전을 무엇보다 고려해야할 기업의 무책임으로부터 생겨났다면, 이후부터는 독성 여부를 철저히 규명해야 할 연구 기관이 개입되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 안타깝게도 대학의 연구진이었음은 해당 연구를 옥시로부터 의뢰받아 실험을 진행한 교수가 구속됨으로서 세간이 주목하게 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대학의 공식 절차를 통해 계약된 기업 연구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독성 실험 결과를 연구 책임자가 회사에 직접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 생식 독성의 공개는 사라졌고, 더욱이 정상 대조군 동물에서 감염이 발생해 검사 물질의 호흡 독성 여부는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경우에는 정상 대조군의 감염이 없도록 조심하면서 다시 실험을 하는 것이 연구의 기본 상식이다. 그러나 생식 독성 결과 전체를 누락시키고, 실험의 기본마저 무시한 호흡 독성 결과만 담은 연구 보고서는 대학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교수 개인이 직접 회사에 전달하여 기업에 유리한 자료로써 법정에 제출되었다.

이는 국내 독성 연구의 권위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실험의 정상 대조군마저 오염시킨 조악한 실험이었고, 재실험마저 하지 않았기에 수의과대학만이 아니라 서울대학교 전체의 실험 연구 수준을 땅에 떨어뜨리는 행위다. 그의 변호인이 해당 교수가 1년 연구를 4개월로 단축시켰기에 개인적으로 성과금을 받았다고까지 언급한 것을 고려할 때 이 연구가 매우 많은 연구 윤리상의 문제점이 있음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한편, 옥시 측으로부터 연구 의뢰를 받은 호서대학교 연구자도 연구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1차 실험에서 독성이 나오자 2차 실험에서는 독성이 없는 것으로 결과를 도출해 회사에 제출했다. 재연이 요구되는 과학 연구에서 1, 2차 실험 결과가 다르다면 이 역시 다시 3차 실험을 해서 실험 결과에 대한 재확인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학 연구자는 이를 무시하고 회사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더욱이 충격적인 것은 2차 실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적으로 회사 직원들의 개입이 있었고 호서대 교수 역시 공식 연구비 이외에 회사로부터 개인 계좌로 돈을 받았음이 드러났다.

많은 희생자의 피해 상황이 알려져 기업체와 재판이 진행 중이던 시기에 이러한 대학 연구 결과는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 밝힌 옥시의 호흡 독성을 반박하는 기업 자료로써 피해자와의 긴 사법 다툼의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결국 5년이나 피해자의 고통을 증폭시키고 참사의 진상을 가리는 과학적 기반을 마련해 준 셈이다.

"거짓말, 도둑질하지 말라!"

연구자가 민감한 기업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연구의 기본을 지키지 않고, 개인적으로 돈을 받는 비윤리적 행위가 있었다는 점에서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이후 그토록 강조해온 대학의 연구 윤리가 왜 이처럼 상식을 벗어나 다시 한 번 사회적 고통을 주게 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위의 두 대학 연구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이 피해자들의 호소가 이어지진 지난 5년 동안 철저히 침묵했다는 것도 새삼 우리를 놀라게 한다. 여전히 한국 사회의 연구 집단에 있어서 연구 윤리란 단지 구호에 불과한 것일까 참담해지는 지점이다.

대표적인 국제 과학 사기 사건으로 거론되고 있는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이후 한국 사회는 부단히 연구 윤리 확립에 나섰고, 교육부는 지속적인 개정 속에 '연구 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교육부 훈령으로 유지하고, 연구 윤리 관련 기구나 체제 마련에 노력해왔다.

연구 윤리 부정행위란 국내외적으로 잘 규정되어 있어서 반복하는 것도 그렇지만, 미국국립과학재단(NSF)에서는 대표적 연구 부정행위를 세 가지로 나누어 "FFP" 로 부른다. 없는 실험 자료를 허위로 만들어 내는 '위조(Fabrication)', 얻은 실험 결과를 특정 목적으로 조작하는 '변조(Falsification)', 그리고 남의 실험 결과 등을 슬쩍하는 '표절(Plagiarism)'로서 연구자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연구 윤리에 대한 규정이나 논의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2014년에 '연구 윤리 실무 매뉴얼'이라는 구체적 실무 지침까지 작성해 공유시켰고, 서울대학교에서도 대학 본부 내에 여러 연구 윤리 및 심의 위원회는 물론 단과대학 차원의 연구 윤리위원회와 더불어 '서울대학교 연구 윤리 지침'을 늘 개정하며 구성원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다층적 사회 노력과 인식 개선에도 불구하고 연구 윤리를 위반하고 심지어 이번 사태처럼 직접적인 인명 피해가 연계된 연구에서마저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연구 윤리 규정을 만들어 강조하고 인식시키는 현재의 방식이 충분하지 못함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 규정이 전부라면, 표절 등의 연구 윤리를 위반한 이들이 '예전에는 그런 규정이 없었고 다들 그랬다'라는 상투적 변명도 가능하다.

그런 식의 황당한 변명을 종종 접한다는 점에서 조금 더 연구 윤리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구 부정행위를 대표하는 위조, 변조, 표절에 있어서 앞의 두 경우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이고 세 번째는 '도둑질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의 연구 윤리 개선 노력이란 어쩌면 다 큰 어른들에게, 그것도 학문을 한다는 머리 잘 돌아가는 이들에게 이것을 새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개념이나 규정이 없어서 연구자가 예전에는 거짓말하거나 도둑질해도 되는 것이며, 그래서 이제 거짓말이란 무엇이고, 도둑질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면서 왜 거짓말과 도둑질이 안 된다는 것까지 알려주고 강조해야 하는 것일까. 과거 연구 윤리란 것이 없어도 많은 연구자들이 성실하게 활동했던 것은 어찌 보면 연구 윤리란 강조할 필요가 없는 보편적 기본 상식이자 가치였기 때문이다.

과학자, 거짓말하고 도둑질해야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왜 일부 연구자는 연구 부정행위, 즉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는 것일까? 그 점에서 의외로 답은 분명하며, 나름의 이득이 있기 때문이고 그 이득에 대한 유혹이 크기 때문이다. 아무리 연구 윤리가 강조되어도 그것을 어겨서 얻는 이득과 유혹을 검토하고 개선하지 않는다면 많은 연구 윤리 논의는 그 효력을 잃는다.

연구 부정행위를 유발하는 유혹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대학 내에 들어온 신자유주의 문화다. 생산성을 위한 무한 경쟁을 내세운 1년 단위 논문 숫자나 연구 과제 수주 액수 및 특허 숫자 등 외형적 정량화가 연구자 평가 기준이다. 그 평가에 부족하면 무능한 연구자로 치부되고 봉급 액수에마저 영향을 미치는 대학 문화가 정착되면서 거짓말과 도둑질 하지 말라는 기본 상식은 쉽게 무너진다. 거짓말하고 도둑질한 일부 연구자들이 오히려 평가에서 인정받아 대외적으로 권위자가 되고 각종 정부 기관의 장으로도 발탁되는 경우를 내부에서는 쉽게 볼 수 있기에 그런 유혹은 더욱 힘을 발휘한다.

유혹에 대한 강약은 개인차가 있고 그것은 분명히 연구자 개인의 몫이겠지만, 외부로부터의 이득 및 유혹에 대한 부분은 엄연히 사회적 부분이다. 특히 대학 연구 문화가 양적 평가로 전환된 이면에는 학문 주체인 연구자가 철저하게 배제되고 대학이라는 조직 평가를 위한 문화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를 1년 단위의 생산성으로 평가하고 그에 따른 당근을 제시하는 것은 연구자의 연구를 제대로 하게 하는 문화가 아니라, 대학 전체 평가에 유리한 논문 숫자 등의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를 다양한 형태로 유혹하고 착취하는 제도이자 문화다.

유능한 이가 평가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대학의 여러 평가 기준을 보면 거짓말하고 도둑질하지 않으면 심지어 승진이나 정년 보장이 불가능할 정도로 과도한 기준이 마련되고 있다. 학문과 연구란 것이 그저 빨리 하라고 하는 것만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다양한 학문과 전공 분야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실망하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제대로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이 오히려 의욕을 접게 하는 문화가 빈번한 연구 부정행위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다.

논문 많이 쓰고 연구를 많이 하는 것이 연구자 개인 자산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겠지만 국가나 대학의 공적 자산을 이용하고 국가나 기업의 연구비로 진행하는 것이라면 연구 결과는 사회에 환원하고 많은 연구 논문은 해당 연구자가 속한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굳이 대학 측이 인센티브라고 하여 봉급을 더 주고 여러 혜택을 줄 필요가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한 대학의 체질 개선과 사회 전반의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한 연구 부정행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연구 부정행위는 사회 건강성과 이어져 있고, 사회 윤리와 더불어 연구자 개인의 윤리적 건강성의 반영이다. 연구 윤리 문제는 사회적 가치로서의 윤리와 사회 정의의 문제로 접근해야 그 효과가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든 것을 흑백의 문제로 선을 그어 가를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이이고 모든 상황에는 허용 범위라는 것이 있기에 혼란스럽고 미세한 부분에 있어서 실무적 규정은 필요하지만, 연구 윤리라는 것은 사회와 개인의 기본과 상식의 문제로 바라보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다양한 개선 노력의 의미는 분명 있지만, 거짓말과 도둑질 하지 말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을 새삼 설명하고 강조해보았자 효과는 그다지 기대할 것은 없을 것이다.

연구 윤리를 연구 윤리로만 접근하거나 각론에 치중하기보다는 보다 사회 건강성을 높이고, 학문의 성찰을 강화하는 인문학적 사회 문화가 체화되지 않는 한 늘 새로운 유형의 연구 부정행위는 등장할 것이다. 이번 서울대 옥시 연구에서 보도된 바에 따르면 구체적 실험 데이터는 손대지 않았을지언정 특정 실험 결과 전체를 누락시켜 논문이나 보고서의 전체적인 결론을 왜곡시켰다. 이러한 연구 부정행위는 그동안 예상하지 못했던 유형이자, 내부 양심 선언 외에는 외부에서 밝히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사례다.

일부 정치권과 주류 언론의 무시 속에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이 여전히 2년이 넘도록 진행 중이지만, 이번 가습기 사망 사고에 관-산-학과 더불어 주류 언론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의 해운 회사처럼 이번 참사에서 옥시라는 책임질 회사는 분명하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관련된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상황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개선하는 구체적 재검토가 필요하며, 이를 통한 사회 가치와 윤리 확립이 필요하다. 연구자들의 성실한 연구 윤리 이행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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