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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한 아름다운 도시…뷔르츠부르크(Wurz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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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한 아름다운 도시…뷔르츠부르크(Wurzburg)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⑦다시 태어난다면 뷔르츠부르크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뷔르츠부르크에서

장바구니 아주머니를 뒤따라 15분 정도 언덕을 오르니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2층 구조의 비슷한 집들이 한 줄로 길게 줄지어 있었다. 아주머니의 집과 옆집 사이에 난 골목으로 들어가니 안쪽에 열 평 남짓한 잔디 정원이 보였다.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빨간 산딸기가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텐트를 풀기 전에 아주머니는 우리를 집 안으로 안내해 안방, 거실, 그리고 화장실 겸 샤워장을 구경시켜 주었다.

“차와 커피는 이곳에서 드시고, 샤워는 저기서 하면 되고, 과일은 이 바구니에 담아 놨으니 알아서 드세요.”

이사한 집에 놀러 온 친구처럼 아주머니는 우리를 편안하게 안내했다. 우린 그저 당황스럽고 과분할 따름이었다.

“자, 여기 있어요.” 언제든 들락거리라며 출입문 열쇠를 주었다. “저녁에 잠시 외출하고 돌아올 테니 TV는 여기 거실에서 보면 되고요, 편안히 우리 집 같이 사용하세요.”

우리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이었다. 자정쯤, 천둥과 함께 강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장바구니 아주머니가 우산을 받쳐 들고 정원에 나와 거실에 들어와 자라고 권했다. 우린 손전등을 켜고 텐트 지퍼를 반쯤 내린 채 여기는 괜찮으니 그냥 얼른 들어가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는 장바구니 아주머니와 함께 거실에서 따끈한 커피와 빵을 먹었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혹시 한국에 오시면 꼭 들러 주세요.” 고마운 마음에 청실홍실과 책갈피, 그리고 명함을 드렸다.

정원에서 텐트를 접는데 주먹만 한 민달팽이가 열 마리 넘게 텐트에 달라붙어 있었다. 아침 공기 맞으며 내려오는 언덕길이 유난히 상쾌했다.

▲로텐부르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로텐부르크(Rothenburg)로 향했다. 꼬불꼬불 고갯마루에 올라 갓길에서 점심 식탁을 폈다.

분홍 보자기를 땅바닥에 깔고 빵과 우유, 버터와 마른 소시지를 꺼냈다. 지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축축한 텐트와 옷가지를 옆에 함께 펼쳐 널었는데 금방 뽀송뽀송해졌다.

로텐부르크는 중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명성이 높다.

뭐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성 야곱 교회’일까, ‘중세 범죄 박물관’일까? 아니면 슈네발 빵을 먹어 보려고 오는 걸까?

오후 들어 시청 앞 안내센터를 찾아갔다. 그런데 캠핑장과 호텔 모두 FULL. 일주일간 국제 교류 행사를 하는데 2만 명이 넘게 참가해 이미 캠핑장과 호텔이 만원이란다.

‘잘 곳이 없으니 이제 어떡하지? 외곽 숲 속 아무 데나 텐트를 칠까?’
이대로 그냥 다음 목적지로 떠나기는 좀 아쉬워 안내센터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궁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조금 전 상담했던 안내센터 직원이 다가오더니 방금 빈방이 한 개 나왔다며 그곳에 가 보라고 알려 주었다.

▲로텐부르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호텔에 도착해 서둘러 짐을 풀고, 시청 앞 메인 거리로 나왔다. 골목마다 인파가 넘쳤다.

특히 연중 크리스마스트리와 전통 의상 인형을 파는 상점에 관광객이 많았다. 추니는 슈네발 빵이 맛있다며 주먹만 한 걸 한입에 먹어 치웠다.

밤이 되자 빨간색 복장을 한 산타 할아버지가 예쁘게 단장한 작은 차에 선물을 가득 싣고 시내를 한 바퀴 돌며 아이들과 사진도 찍고 즐거운 이벤트를 했다.

로텐부르크에는 일본인과 중국인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번 여행 중에 한국인 가족을 여기서 처음 만났는데, 자전거에 달린 태극기를 보고 알아봤다며 다가와서 무척 반가웠다.

대구에 살고 있으며 가족 여행을 왔다는 동족을 이역만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기분은 남달랐다. 무언가 마구 물어보고 싶고, 같이 오래 있고 싶었지만 아쉽게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로텐부르크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중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때 도시의 반 이상이 파괴되었는데, 성곽을 복원하는 일에 미국과 일본이 적극 참여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곽 회랑에는 돈을 기부한 일본인 이름이 많이 새겨져 있었다. ‘아하, 그래서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구나!’

8월 11일. 아침부터 맞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엎드려 가슴을 핸들에 대고 바람의 저항을 줄여 보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누군가 뒤에서 자전거에 달린 가방을 사정없이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기어를 저단으로 바꾸어 페달링를 빠르게 해 보지만 걷는 속도인 시속 5km를 넘지 못했다.

고개 넘어 바트 메르겐트하임(Bad Mergentheim)을 지나다가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 이 부락의 집들은 단층 같아 보이는데 창문이 나 있는 걸 보면 2층 내지 3층이었다.

어느 집이든 울타리라고 해 봤자 허리 높이 정도로 낮고, 정원과 함께 확 열려 있었다.

또 큰 부속 건물들이 한두 개씩 있었는데, 곡물과 농기계를 보관하는 곳이거나 축사였다. 그래서 농기계, 부산물, 살림 잡동사니가 나뒹굴지 않았다.

베란다에 꽃을 내놓고, 창문엔 예쁜 장식을 걸어 놓은 걸 보니 독일인들은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바드 메르겐트하임.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바드 메르겐트하임.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오후 3시. 가파른 로만틱 가도의 마지막 고갯마루를 힘겹게 올랐다. 그리고 저만치 뷔르츠부르크(Wurzburg)를 향해 내리막 페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도시가 첫눈에 보기에도 아름답다.

17세기 현란한 바로크풍의 도시답게 사방에 첨탑이 솟아 있고, 마인 강변을 따라 스카이라인을 이룬 건물들과 석양에 물든 강물이 도심을 가로지른 ‘알테 마인교’ 위의 사람들을 오도 가도 못하게 붙잡고 있었다.

소설가 헤르만 헤세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싶다.”라고 했던 이유를 알 만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시의 90% 이상이 파괴되었는데 폐허에 남겨진 자재와 벽돌을 그대로 사용해 이렇게 멋지게 부활했다고 한다.

중앙 광장에는 빨간 트램이 활 모양의 레일을 달렸고, 교각 끄트머리에선 누군가 프랑켄 와인을 한 잔 들고 다리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었다.

또 어떤 커플은 벤치에서 아이스크림을 요리조리 돌려 핥아 먹으며 강 건너 고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불어 몸에 은색 칠을 하고 선 행위예술가는 마네킹인지 확인하려는 관광객들 앞에서 눈도 깜짝 안 한 지 오래다.

▲뷔르츠부르크.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

지난 8월 5일부터 11일까지 일주일 동안 로만틱 가도를 달려왔다. 명성 그대로 로만틱 가도는 중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숨 쉬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이색적인 분위기를 애써 찾아보려 했지만, 오랜 세월은 닿을 듯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꼬불꼬불한 길은 펼쳐 놓지 않았고, 실개천은 본래 물길 그대로 흐르고 있었으며, 밭고랑 사이 그늘나무는 정겹고, 축사 두엄 냄새가 가까웠다.

시골답지 않게 정갈하고, 만나는 이들마다 촌스럽고 다정스러웠다. 집 뜰 안에는 버려도 괜찮을 것 같은 녹슨 물건들을 잘 모셔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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