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양자 대결로 좁혀지면서, 과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트럼프의 상승세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실제 본선은 트럼프에게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3일(이하 현지 시각) 공화당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인디애나 주에서 과반의 지지로 승리하며 사실상 공화당의 최종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공화당도 트럼프 후보가 사실상 공화당의 대선 후보임을 인정했다.
당초 트럼프는 표의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공화당 내에서도 대선 후보로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등 공화당 지도부가 지원하는 후보들이 경선에서 조기에 하차하고 마땅한 대항마도 나타나지 않으면서 트럼프 후보는 경선 과정 내내 다른 후보들에 우세를 보였다.
그리고 지난 2일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라스무센이 지난 4월 27일과 28일 이틀 동안 1000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전국 지지도에서 트럼프 후보는 41%의 지지를 얻어 39% 지지에 그친 클린턴 전 장관을 오차범위 내에서 따돌리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 후보가 본선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반면 지난 4월 22일부터 28일까지 경제전문매체 IBD와 여론조사기관 TIPP가 800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이 조사에서 클린턴 전 장관은 47%의 지지를 얻어 40% 지지에 그친 트럼프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이에 공화당에 우호적인데다 집전화와 자동응답 방식(ARS)로 진행되는 라스무센의 조사가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러나 공화·민주 양당의 대선후보 선출 경선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트럼프 후보가 앞선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다.
여기에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가 트럼프 후보의 과반을 막기 위해 연대했던 인디애나 주 경선에서 트럼프가 과반을 차지하면서 트럼프의 상승세가 본선에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예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다른 분석을 내놨다. 신문은 3일(현지 시각) '아직 이르지만, 트럼프는 힐러리를 상대로 힘든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길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면서도 "하지만 많은 미국 사람들이 힐러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트럼프는 끔찍하다고 여긴다"며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트럼프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문은 트럼프 후보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최근 대선에 나왔던 주요 정당의 후보들 중 가장 인기가 없는 인물이라는 점을 꼽았다. 신문은 미국 방송 ABC와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4월 6일에서 10일 1010명의 유권자들 대상으로 한 조사를 예로 들며 트럼프 후보의 비호감도가 상당히 높다고 전했다.
실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66%는 트럼프 후보에 호감을 갖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른 공화당 대선주자인 테드 크루즈 의원이 56%, 케이식 주지사가 41%인 것과 비교해보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호감도는 세 후보 중에 트럼프 후보가 32%로 꼴찌였다.
4년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던 젊은 층과 비(非)백인, 고학력자 등의 유권자들이 트럼프 후보에 호감을 갖지 않는다는 것도 트럼프로서는 극복하기 힘든 장애물이다.
신문은 "클린턴 전 장관은 4년 전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을 재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조사를 보면 18~29세 유권자들은 4년 전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보다 더 큰 격차로 힐러리를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젊은 층과 비백인, 고학력자 유권자들의 지지로 힐러리는 충분히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 공화당은 이들의 지지 없이 승리하기 어렵다"면서 "1984년 레이건 대통령이 18% 포인트 차로 승리했는데, 2016년 대선에서는 비백인들이 1984년에 비해 14%가 증가했다. 공화당이 이기려면 이만큼의 백인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백인 사이에서도 트럼프 후보의 인기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신문은 ABC-<워싱턴포스트>의 조사를 인용하며 "트럼프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 백인 여성은 29%, 대학 졸업 이상의 고학력자 23% 만이 트럼프에 호감이 있다고 답했고, 비호감도는 각각 68%, 74%였다"고 전했다.
신문은 트럼프 후보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인 밋 롬니 전 메사추세츠 주지사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을 결집시켜야 한다면서 "최근 조사를 보면 트럼프 후보는 롬니 전 주지사가 2012년 대선 때 승리했던 노스캐롤라이나 주, 유타 주, 애리조나 주, 미주리 주 등에서도 클린턴 전 장관에 뒤지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든 누구든…공화당, 대선 이기기 어렵다
과거 20년 동안의 대선 결과를 살펴봤을 때 공화당에서 어떤 후보가 나오더라도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승리하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연방제의 특성을 반영해 유권자들이 사전에 지지 의사를 밝힌 선거인단을 선출하고 이들이 대통령을 최종 확정하는 간접선거 방식이다. 즉 연말에 이뤄지는 대통령 선거는 50개 주와 수도인 워싱턴 D.C의 유권자들이 특정 정당의 대통령-부통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을 약속한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것이다.
이 선거인단은 대선 선거날 이후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를 진행한다. 하지만 선출된 선거인단은 이미 유권자들에게 지지할 후보를 공표하고 표를 받은 대리인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날의 선거는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메인 주와 네브라스카 주를 제외한 모든 주의 선거인단은 각 주에서 최다 득표를 한 후보가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단은 총 538명으로 과반수인 270명 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해야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독특한 대통령 선출 방식으로 인해 여론조사가 대통령 당선 가능성과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전국 지지율이 높아도 대통령에 선출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2000년 대선에서 당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는 민주당 앨 고어 후보에 54만 표 뒤졌으나 선거인단에서는 271대 266로 5명을 더 확보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난 1992년부터 2012년까지 공화·민주 양당이 얻은 선거인단을 종합해보면 민주당에 유리한 구도가 짜여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6번의 대선에서 항상 민주당이 이겼던 주는 총 19개 주, 선거인단으로는 242명에 달한다. 반면 공화당이 항상 이겼던 주는 13개 주, 선거인단 102명에 불과하다.
<워싱턴포스트>는 2일 이러한 통계 결과를 언급하며 "민주당의 경우 기존 6번의 대선에서 이겼던 주에서 모두 승리해서 24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고, 29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는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인 플로리다 주에서만 승리해도 271명으로 게임이 끝난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공화당은 훨씬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문은 "공화당은 기존에 이겼던 13개 주에서 모두 승리해 선거인단 102명을 확보하더라도 최종 승리를 위해 168명을 더 확보해야 한다"며 트럼프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나오더라도 공화당에게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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