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형님'을 겨냥한 '정두언의 난'이 급격히 진압되는 분위기다. 불과 며칠 전 만해도 "끝을 보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던 정 의원은 이상득 의원 등을 겨냥한 '권력 사유화 비판'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모두 삭제하며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정 의원과 뜻을 같이했던 소장파 의원들도 "지금은 국정을 수습할 때"라며 입을 다물었다. 반면 이상득 의원은 "대단히 미안하지만 나는 정풍 대상이라고 절대 생각 안 한다. 내 퇴진 문제는 내가 결정하고 우리 지역구가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완전한 공수역전인 것.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묻지마 식 인신공격 행위와 발언이 걱정스럽다"며 이번에도 '형님' 손을 들어준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면서 "불씨는 살아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 내각 쇄신 결과를 일단 지켜보자"고 말했다. 역공의 기회를 엿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통령 한 마디로 '상황 종료'?
지난 13일 저녁 이명박 대통령과 안경률 의원의 면담결과가 흘러나오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안 의원을 통해 "시국이 어렵고 엄중해 우리가 힘을 합쳐 난국을 헤쳐가야 할 텐데, 일부 의원의 묻지마식 인신공격 행위와 발언들이 걱정스럽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 대통령을 면담한 또 다른 중진 의원도 "대통령이 '정두언이 나한테 이럴 수 있냐'더라"며 청와대 기류를 전했다.
이에 앞선 12일 고승덕 의원이 주도하는 '현장경제연구회'는 모임을 갖고 정 의원을 비판하면서 역전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나섰다. 이날 모임에는 홍준표 원내대표와 임태희 정책위의장도 참가했다.
초선 의원이 대다수인 이 모임에는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인물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대통령의 지원사격을 받은 이상득 의원도 13일부터는 "나는 인사에 아무런 개입도 한 적 없다"면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복심인 박영준 비서관이 퇴진키로 하고 자신도 17일부터 일본에 체류할 계획을 밝힌 만큼 '거리낌'이 없어졌다는 것.
이에 정 의원은 "앞으로 대통령의 정국 수습을 혼신의 힘을 다해 뒷받침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고 김용태 의원 등도 "앞으로 대통령의 국정 수습에 적극 동참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투는 끝났지만 전쟁은 안 끝났다
지난 9일 의원총회 때만 해도 정두언 의원의 주장은 당내에서 적잖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의총 직후 김정권 원내공보부대표가 "대체로 정 의원의 충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을 정도.
이어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은 물론 중도파 격인 나경원 의원까지 '이상득 2선 후퇴론'에 가세했다.
그러나 일부 소장파의 역공-대통령 메시지 공개 등의 치밀한 반격으로 인해 완전히 공수가 역전된 것. 정 의원에 힘을 실었던 의원들은 현재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이 의원과 가까운 정종복 전 의원이나 이방호 전 의원이 민정수석,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기용되긴 어렵게 됐고 이상득 의원도 당분간 물밑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결론은 '현 정권의 최고 실세'가 누구인지 잘 보여줬다는 것이다.
DJ정부에서 권노갑 고문을 밀어낸 '천-신-정의 난'과 이번 사태를 비교하면서 한 정치권 인사는 "DJ는 권노갑 고문은 분명한 상하관계이기 때문에 DJ의 결심이 권 고문을 밀어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의 관계는 다르다"고 풀이했다. 이 대통령 조차 이상득 의원에게 '이래라 저래라'하기 힘들다는 것.
또 한나라당 내에서 '상황은 이제 종료됐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부 소장파들은 이상득 의원에 대한 반감을 더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결국 '전투는 종료됐지만 전쟁은 진행형'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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