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동자 다 죽이고 자본만 살겠다는 것인가?"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이 대량해고를 중단하고 고용을 보장해 줄 것을 촉구했다. 조선소 불황 속에서 하청 노동자들은 임금체불, 퇴직금 미납에 이어 대량해고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조선소를 살리기 위해 무턱대고 세금을 쏟아부을 게 아니라 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3일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진행되는 하청 업체 위장폐업과 물량 재계약 실패 등으로 포장된 구조조정 속에서 최대 피해자는 하청 노동자"라며 "임금체불과 대량해고, 퇴직금 수탈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2곳의 사내협력사 34곳이 문을 닫았다. 이 때문에 하청 노동자 3400여 명의 임금 197억 원 상당이 체불됐다. 노동부는 지금도 꾸준히 임금체불 신고가 들어오고 있어 규모는 계속 늘어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 수치가 단지 노동부를 통해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에 따르면 상당수 하청노동자들이 임금 체불을 신고하지 않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장에서는 5~15일씩, 또는 30~50%씩 임금이 체불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사내하청지회의 주장이다.
체불임금에 임금삭감, 대량해고까지
체불임금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올해 들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임금 삭감'이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에 따르면 현재 현대중공업 하청업체는 노동자들에게 기본급 10%, 수당 30% 삭감에다 연장·휴일근로도 없앴다. 게다가 연차수당 및 휴업수당도 지급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급 순환 휴직까지 강요하고 있다.
대량 해고도 이어지고 있다. 2014년 12월 말 4만1059명이었던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2016년 3월 말 기준으로 3만331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1년 3개월 사이 7742명이 사라진 셈이다. 이 수치는 매일 업데이트되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이런 가운데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 5개사 하청업체 대표들이 마련한 '9대 대정부 요구안'은 혼란을 틈타 잇속을 챙기려는 저들의 탐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며 "문제는 이에 맞장구라도 치듯 울산시와 동구청이 사용자들의 주요 요구를 받아들인 조선산업 종합지원 대책을 발표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조선 5개사 사내 협력업체들은 지난 27일 △ 조선업종 취업 공고생 군 복무 특례제 도입 △ 최저임금법에 정한 최저임금(2015년 5580원) 동결 또는 인하 △ 장애인 의무고용 유보 등을 골자로 하는 대정부 요구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경영자금 지원, 세금 감면, 세무조사 보류, 원‧하청 불공정 거래 중단, 외국인 근로자 고용 확대 등도 포함됐다.
그러자 2일 울산시는 △ 긴급재정 운영을 통한 경제활성화 지원 △ 조선업종 사내 협력업체 경영안정자금 지원 확대 △ 조선 관련 중소기업의 지방세 징수유예 및 세무조사 연기 △ 조선 기자재 기업 국내외 마케팅 지원 확대 △ 조선해양분야 기술혁신 인프라 조기 구축 지원 등을 추진키로 했다.
또한 정부에는 △ 특별고용지원업종 및 고용위기지역 지정 △ 울산 외국인력 지원센터 설치 △ 동구 퇴직자지원센터 건립 특별교부세 지원 등을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무턱대고 재벌과 업체 살리기에 세금 써서는 안 된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작년부터 올해 3월까지 현대중공업에서 7742명의 하청노동자가 쫓겨날 때 울산시와 동구청은 무엇을 했는가"라고 반문한 뒤 "왜 지금 와서 오직 재벌만을 위해 하청업체 '대신 봐주기' 대책만 쏟아내는지 모를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1만 명의 노동자 퇴출이 추가로 예정돼 있다"며 "하청업체들에는 세금 감면과 세무조사 보류라는 특혜를 주면서 왜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고용안정 대책은 없는지 모를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나마 노동자와 연관된 대책들은 모두 대량해고로 인한 퇴직과 실업을 전제로 하고, 이주노동자의 원활한 사용을 위한 내용뿐이라는 것.
이들은 이날 진행되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원·하청 사용자 대표, 그리고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간 양해각서(MOU) 체결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조선 경기 불황 장기화에 대비해 원청 대기업이 사내하청사의 경영 안정화와 정상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과 지원을 다하겠다는 것이 협약의 핵심이다.
이들은 "갑을 관계의 원·하청 사용자가 상생을 표방하는 일은 그 자체로 반대할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하지만 노동자들과의 공생은 배제한 채 사용자들만 생존하겠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떻게 포장하든 구조조정 협약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번 양해각서 체결은 총괄적인 고용안정 선언을 대전제로 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는다면 이 협약은 원·하청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단지 원·하청 자본의 생존만을 위해 임금삭감 등 노동개악과 인력감축을 강행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울산시와 동구청에 종합지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그동안 수십 조의 이윤을 남기고도 임금을 동결해 왔던 현대중공업"이라며 "앞뒤 안 가리고 재벌과 업체 살리기에만 세금을 쏟아부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고용노동부에도 "시민이자 주민인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종합지원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이름에 걸맞게 '자본의 해고'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고용'을 위해서 사력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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