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폐 손상 이외의 질환도 가습기살균제 피해 여부를 전면 재검증하기로 나서면서 검찰도 수사 확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어 주목된다.
환경부는 지난달 28일 가습기살균제 조사·판정위원회를 열어 비염·기관지염 등 경증 피해와 폐 이외의 피해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판정에 필요한 피해 기준 등을 마련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일단 과학적 인과관계가 소명된 원료 및 제품의 수사에 주력하지만, 환경부 등이 추가 수사의뢰를 하거나 기존 입장을 뒤집는 자료 등을 제출할 경우 적극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1일 "수사는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진행하고 있고, 현재는 폐 손상과 인과관계가 소명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인산염이나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를 원료로 사용 제품을 중심으로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객관적인 조사 근거를 토대로 수사를 의뢰해온다면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와 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 성분 등을 원료로 사용한 여타 제품의 수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애경, 이마트, GS리테일 등이 제조·판매한 제품이 이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검찰은 지금까지는 여러 제품 중 PHMG 인산염 또는 PGH가 사용된 옥시레킷벤키저(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버터플라이이펙트 4개 브랜드 제품을 수사해왔다.
2일에는 옥시 측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만든 한빛화학 대표 정모씨와 옥시 측 광고담당 전 직원 유모씨 등 3명을 소환해 조사한다.
검찰은 옥시가 PHMG 인산염을 제품 원료로 쓰면서 유해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지했음에도 흡입 독성 실험 등 안전성 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단서를 확보한 상태다.
만약 폐 손상 이외의 다른 질환에 영향을 끼친 제품들이 나온다면 검찰은 정부의 재검증 내용을 토대로 관련자 소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4년여가 넘은 지금에 와서야 정부가 폐 이외의 피해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나섬에 따라 기존 검증 과정에서 소홀한 점이 있었는지도 검찰은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 당국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나 자료제출 요구 등이 이뤄질 수 있다.
2011년 11월 질병관리본부는 동물실험을 근거로 CMIT/MIT를 함유한 제품에서는 독성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또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최대 가해업체인 옥시가 2일 공식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 영국 본사의 개입 여부를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옥시 한국지사는 '이메일 사과'를 한 차례 했지만 오히려 여론이 악화되고 검찰 수사를 가속화하는 역풍을 맞았다. 이에 따라 이번 회견은 단순한 옥시 한국지사의 결단이 아니라 영국 본사의 결정이거나 본사와 긴밀한 조율을 거쳐 결정됐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한편 검찰에 따르면 문제가 된 가습기살균제 출시 시점이 옥시가 레킷벤키저에 인수된 2001년 3월보다 5개월 앞선 2000년 10월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출시 시점이 영국 본사의 법적 책임 추궁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이미 살균제가 판매되는 상황에서 옥시를 인수한 본사가 흡입독성 실험을 해야할 필요성이 낮다는 의견이 있다. 반면 옥시가 해당 실험을 하지 않고 문제의 제품을 판매한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본사가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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