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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탈북자를 '알바 시위꾼'으로 만들었나?

[한반도 브리핑] 인권 감수성 실종된 탈북자 정책

지난 선거의 '어설픈 북풍 공작'을 보면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생각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선거에 개입하려는 공무원들이 있다는 말인가? 북풍 공작의 또 다른 퇴행적 측면은 바로 탈북자에 대한 낡은 시각이다. '귀순'을 체제 경쟁의 '도구'로 삼았던 아주 오래된 냉전의 풍경 말이다. 낡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의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어버이연합'에 동원된 탈북자들은 정착 지원 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탈북자 정책,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여러 개의 탈북

북풍 공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탈북자에 관한 정보를 왜곡했다는 점이다. 통일부는 탈북자의 발생을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증명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통일부도 잘 알고 있듯이 거짓말이다. 국내에 입국하는 탈북자는 2011년 이후 계속 줄어들었다. 2011년 2706명에서 2012년 1502명, 2013년 1514명, 2014년 1397명, 2015년 1276명으로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탈북의 동기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연은 다양하다. 일부 정치 망명으로 볼 수 있는 사례가 분명 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더 풍요로운 세상을 찾아서, 더 많은 기회를 위하여, 혹은 더 안정적인 삶을 위하여 남쪽으로 온다. 최근 들어 정치 망명보다는 경제 이민과 교육 이민이 늘어나는 추세다. 때로는 탈북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조선족으로 위장해서 돈을 벌어 다시 북한으로 가겠다는 사람도 있다.

탈북자를 체제 경쟁의 도구로 삼는 것은 분명 반인권적이다. 최근 입국하는 탈북자들은 대부분 기자회견을 거부한다. 본명 대신 가명을 사용하는 탈북자도 적지 않다. 북한에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북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서 구체적인 인적 사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 원칙을 깨버렸기 때문에 북풍 공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탈북자 중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해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는 사례도 있다. 남쪽으로 와서 그야말로 처음부터 다시 북한을 공부해서 남과 북을 균형감 있게 바라보는 젊은 연구자들도 등장하고 있다. 지방에 가보면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작은 규모지만 성공한 분들도 분명 있다.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북한 체제에 비판적이고 보수적인 정치 성향이지만 무조건적이지는 않다. 정치와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탈북자들도 많다. 소수가 탈북자의 이미지를 독점하는 경향이 있지만, 다수의 탈북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수 단체를 만들거나 혹은 동원되는 탈북자들은 알고 보면 '탈북자 실업'의 또 다른 현상이다. 아주 평범한 탈북자들 다수가 바라는 것은 '탈북자'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이다. 그들은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대접받고 살기를 원한다. 불편한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 분야에서 공정하게 경쟁해서 인정받기를 원할 뿐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비판받아야 할 지점은 바로 정착 지원 정책의 실패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동원이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국가정보원이 주도한 댓글 공작에 탈북자 단체를 동원했다. 어버이연합이 일당 주고 동원하는 방식은 아무것도 아니다. 조작으로 밝혀진 탈북자 간첩 사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땅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탈북자를 가장 야비하고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활용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 일반 시민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어버이연합 회원. ⓒ프레시안(허환주)

탈북자 정착, 무엇이 문제인가?

'따뜻한 남쪽 나라'에 온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다시 떠난다. 2만9000여 명의 탈북자 중에서 제3국으로 다시 떠난 수는 5000여 명에 이른다는 추측도 있다.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는 수도 늘어나고, 처음부터 3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왜 다시 떠나려 하는가? 먹고 살기가 어렵기 때문이 첫 번째 이유다. 불편한 시선이 불편해서, 혹은 정치적 동원으로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싫어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탈북자 정착 지원 정책은 그동안 꾸준히 개선되어 왔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우리 사회의 복지 공백이 너무 크고, 사회 안전망이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독이 동독 이주민을 받을 때 별도의 정착 지원이 필요 없었던 것은 기존의 서독 복지 제도로 충분히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탈북자 정착을 주도하는 현행 제도는 문제가 많다. 정착 지원 정책의 핵심은 임대 주택 배정을 비롯한 주거, 일자리, 교육 등이다. 지방별로 분산 수용을 장려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 중앙 부처인 통일부가 할 일이 아니다. 특히 통일부는 이번 북풍 공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탈북자 정착 지원 정책의 주무 기관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했다. 행정자치부가 총괄을 하고 노동-복지 부처와 협력하는 새로운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새로운 이산 가족으로서의 탈북자

탈북자 3만 명 시대다. 정착 지원 정책이 실패한 자리를 정치적 동원이 차지했고,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고 북한인권재단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야비한 반인권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공유할 때다. 통일을 준비한다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일상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남쪽 나라의 '따뜻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탈북자는 또 다른 이산 가족이다. 전쟁 때 내려온 사람만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 아니다. 고향이 강원도고 전라도고 경상도 듯이, 그들도 고향이 이북일 뿐이다. 다만 가족과 만나지 못하는 이산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남이나 북이나 탈북자를 체제 경쟁의 시각으로 보기에 '이산 가족'의 아픔을 외면한다.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인권이다. 왜 탈북자는 이산 가족 상봉을 신청하면 안 되는가? 탈북의 동기가 그 무엇이든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혹은 누이와 오빠를 만나면 안 되는가? 동서독처럼 언제든지 방문이 가능하고 합법적으로 이주를 허용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남북 관계가 많이 달라져야 가능할 것이다. 그때가 되기 전이라도 우선적으로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탈북자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 인식을 바꾸고 제도를 개혁해야 할 것이다. 그 이전에 반드시 탈북자를 체제 경쟁의 도구, 정치 공작의 도구로 삼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입만 열면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인권에 대한 성찰을 권한다. 북풍 공작이나 어버이연합의 정치동원을 조사해서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탈북자 인권을 재정립하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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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김연철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활동했으며 2004년 7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역임했습니다. 저서로 <냉전의 추억>, <북한경제개혁연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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