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외무장관회의에 참석 중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1일 일본 히로시마의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해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원폭 자료관을 시찰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래 미국의 현직 각료가 평화공원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원폭 투하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예민한 과거사다.
일본은 환영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은 "사상 처음으로 G7 외교장관들이 평화공원을 방문한 것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기운을 다시 띄우는 역사적인 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은 케리 장관에 이어 내달 26~27일 일본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자체가 2차대전의 가해국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상징적인 조치가 되기 때문이다.
케리 장관은 온도차를 보였다. 그는 "과거를 다시 논의하고, 스러져간 이들을 예우하지만 이번 방문은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다"며 "이것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원폭 투하에 대한 사죄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2차대전의 종전을 앞당긴 불가피한 조치라고 보는 여론이 우세한 미국내 정서를 고려한 발언이다.
그는 방명록에도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이곳은 우리가 세상을 바꾸고, 평화를 찾고 사람들이 열망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고 '미래'를 강조했다. 하지만 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현직 외교 수장이 평화공원을 방문한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일 '신(新) 밀월', 한국은?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고위급의 히로시마 방문 논의는 민간 차원에서 먼저 제기됐다. 지난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핵무기 없는 세계'를 언급한 이후 일본 원폭 피해자들과 반핵운동 단체들이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제안했다.
그러나 케리 장관의 평화공원 헌화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둘러싼 최근 미일 정부 간의 교감은 순수한 탈핵의 의미보다 동북아시아 지형관리를 위한 전략적 판단이 우선한다.
전범국의 오명을 털어내고 보통국가로 전환하려는 일본의 의도와 중국 견제에 사활을 걸고 미일 신(新) 밀월을 추진하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히로시마 원폭 문제는 한국으로서도 민감한 문제다. 당시 징용으로 끌려간 4만 명의 한국인들이 희생됐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배와 미국의 원폭으로 인한 피해를 모두 입은 나라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이날 케리 장관의 평화공원 헌화에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과거사 대못 뽑기'로 공고해지는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 한국 정부는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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