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연산군 때는 언론을 담당하는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젊은 관료들과 계유정난 이래 특권을 독점한 대신들 사이에 힘겨루기가 한창이었다. 무오사화가 일어나기 1년 전인 1497년(연산군 3년), 사간원 정언으로 일하던 만 30세의 조순(趙舜)이 영의정까지 지낸 70세의 노사신(盧思愼)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노)사신이 대간의 논박을 당했으면 대죄(待罪)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온데, 도리어 대간더러 '고자질을 해서 곧다는 이름을 취득하는 짓이다'고 하니, 이는 전하께서 대간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자기 말만을 믿게 하기 위해 감히 가슴속의 음모를 드러낸 것입니다. 춘추(春秋)의 법을 말하면 사신의 죄는 비록 극형에 처해도 도리어 부족하옵니다. 신 등은 그의 살덩이를 씹고 싶습니다. 이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인신(人臣)으로서 누가 군상(君上) 앞에 직언을 할 자가 있겠습니까?" (<연산군일기>)
대간(臺諫)이란 감찰과 언론을 담당하는 삼사와 그 소속 관리를 이르는 말이다. 그들의 임무는 국왕과 대신의 잘못을 간쟁하고 규찰하는 일인데, 영의정 노사신은 그런 대간에게 '고자질'로 강직하다는 명예를 얻으려 한다고 비난한 모양이다. 그러자 대간들이 벌떼 같이 일어나 노사신을 탄핵하는 가운데 "살덩이를 씹고 싶다"는 조순의 '막말'이 나온 것이다. 연산군은 자신의 면전에 대고 이런 상소를 올린 조순에 대해 이렇게 전교했다.
"네가 사신의 살을 씹어 먹고 싶다 말한 것은, 필시 '내가 대간(臺諫)이 되었으니 비록 이같이 말할지라도 나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 (노사신의 말은) 평이한 말인데, 그 살을 씹어 먹고 싶다고까지 말했으니, 이로써 미루어 생각하면, 비록 곤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쓴 나라도 공경하는 마음이 있겠느냐. 조정은 화목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지금은 조금만 불협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 같은 말을 하니, 되겠느냐."
이런 임금의 으름장에도 조순은 물러나지 않고 노사신이 "족히 임금을 그릇되게 하고 나라를 망칠" 말을 했으니 오히려 "그 살을 씹어 먹어도 그 죄에 보상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라고 맞받아쳤다. 이 문제는 대간에 맞서 권위를 지키려는 국왕과 대신, 그들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는 대간의 대결로 한 동안 조정을 뒤흔들었다.
결국 며칠 후 연산군은 조순을 파직하고 이를 성토하는 대간들을 물리쳤다. 1년 후에 무오사화가 일어난 데는 연산군과 대간들 사이에 쌓인 이런 갈등도 한 몫 했다. 그러나 삼사를 중심으로 감찰과 언론의 권리를 사수해 나간 사림(士林)은 결국 16세기 후반 선조 때에 이르러 조정 내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조선 왕조 500년사에 한두 번이 아니었을 이 같은 '막말' 상소에 비하면, 최근 총선 정국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온 정치인들의 막말은 애교처럼 들린다. 지난 1월 14일 더불어민주당이 김종인 선대위원장을 영입하자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김 위원장을 가리켜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막말'로 비난했다.
그에 복수한 것일까? 지난 3월 30일 더불어민주당 주진형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은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겨냥해 "집에 앉은 노인"이라느니 "얼굴마담", "허수아비"라는 '막말'을 퍼부었다. 김 위원장 자신도 강봉균 위원장을 가리켜 "머리가 몽롱해졌다"거나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가리켜 "정상적 사고가 아니다"면서 '막말' 대열에 합류한 바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듣기에도 섬뜩한 조순의 '막말' 상소가, 차라리 귀여워 보이는 요즘 정치인의 '막말'보다 오히려 더 품격 있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전에 두 번이나 도끼를 들고 임금에게 상소를 올린 조헌에게서 절절한 애국심이 느껴지는 반면, 국민의당 공천에 불만을 품고 벌어진 도끼 시위가 저질 패러디 느낌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조순의 상소 뒤에는 도학에 입각한 공론 정치를 추구한다는 사림의 대의가 있었다. 그러나 여야 정치인의 막말에서는 일단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보자는 저급한 정치적 계산만 느껴진다. 차라리 조순 급의 막말을 한다고 해도 역사적 대의에 대한 충정이 느껴진다면 이런 씁쓸한 뒷맛은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제 군주 체제인 조선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더러 '조선의 힘' 운운하면서 그 시절을 찬양해도 딱히 반박할 말이 안 떠올라 말문이 막히곤 한다. 전제 군주 시대보다 훨씬 더 우월한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시민으로서 이보다 더 '웃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조선 시대의 정제된 통치 질서를 높이 평가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가끔 방송이나 강연에서 그 시절의 제왕들에게 높임말을 쓰는 일이 있다. 자기도 모르게 그러겠지만, 왕과 왕족의 행적을 묘사하면서 '하셨어요', '되셨어요' 따위의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시대의 국민 앞에서 과거에 민을 억압하던 지배 계급의 우두머리에게 존대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방송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대통령의 동정을 소개하면서 존댓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말을 듣는 국민 대중이야말로 나라의 주인이고, 그 앞에서는 대통령 아닌 누구라도 아랫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 아니겠는가?
선거를 전후한 정치판에서는 정치인들이 '말'로써 스스로 조선 시대의 왕이나 재상이라도 된 듯이 행동하는 일이 적지 않다. 지난 2011년 7월에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여기자에게 "그런 걸 왜 물어. 너 진짜 맞는 수가 있어. (민주당이) 내 이름 말했어?"라고 반말로 폭언을 퍼부어 구설수에 올랐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공천 파동 때는 김종인 대표가 기자들 앞에서 "패권을 하려면 잘하라고 해. 그따위로 패권 행사하려고 하지 말고…"라고 같은 당 사람들을 겨냥해 반말을 퍼부었다. 유승민 후보가 여론 조사에서 앞서간다는 기자들 지적에 "누가 그래, 조사해 봤어?"라고 반말을 한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도 이 맥락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이들 정치인은 상대 기자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기 때문에 사석에서라면 당연히 반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대는 순간 그는 나이 어린 기자 개인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상대하는 것이다. 말의 높낮이가 분명한 나라에서 국가의 주인을 상대로 반말을 하는 정치인은 그 순간 자격을 잃는 것 아닐까? 앞에 거론한 조순이 당시 나라의 주인이던 연산군에게 "살덩이 씹기" 막말을 한 것은 파직으로 끝났지만, 막말은 안 하더라도 반말을 했다면 어찌 됐겠는가?
연산군처럼 국가의 유일한 주권자이던 선조는 임진왜란 때 백성들에게 한글로 교서를 내려 당시 임금의 말투를 짐작하게 해 주었다. '백성에게 이르는 글'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교서는 백성을 '너희'라고 하대하면서 '하라'체의 명령을 남발하고 있다. 보잘것없는 일개 범부가 군주라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국민의 전신(前身)인 백성들에게 반말을 지껄여댄 것이다.
말은 민주 국민의 최소한의 품격이고 자존심이다. 민주 국가의 주인인 우리 국민은 정치인들에게 분명한 목소리로 경고를 해야 한다.
"얻다 대고 막말에다 반말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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