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17대 임기 종료와 18대 개원을 앞두고 지난 4년을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총론 성격을 띄는 첫 번째 글에 이어 여야 의원들의 가감없는 소회를 들어볼 예정이다.
28일에는 통합민주당의 최성 의원, 29일에는 한나라당 출신의 유기준 의원, 30일에는 민주노동당 당적으로 의정활동을 했던 진보신당 노회찬 상임대표의 글이 실린다. 이들은 모두 초선이었지만 각 당에서 비교적 깔끔한 처신과 내실있는 의정활동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의원들로 평가된다. <편집자>
오는 29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17대 국회의 임기가 종료된다. 지난 4월 총선이 끝나고 사실상 파장 분위기 속에서도 17대 국회는 끝까지 부지런을 떨었다. 쇠고기 청문회,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 등의 과정에서 낙선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훗날 한국정치사는 17대 국회를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주류 언론은 17대 국회를 '오만과 독선이 판쳤다'고 단언했다. 그 비판은 사실상 원내 제1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바통을 이은 현재의 통합민주당을 향한 것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은 '사과와 반성'을 4년 간 달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2006년 5.31 지방선거 때는 급기야 "우리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한나라당만 빼고 다른 당이라도 찍어주십시오"라는 희한한 구호가 나오기도 했다.
두 차례에 걸쳐 당 대변인을 지냈던 우상호 의원은 "몇 번 사과했는지 세기도 어렵다"고 혀를 내둘렀고, 동작동이 지역구인 한 의원은 새 지도부가 출범하면 의례적으로 찾는 국립묘지 방문을 회고하며 "당 의장 바뀔 때마다 수행하는 것도 지긋지긋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선거만 하면 연전연승했지만 한나라당에 의정활동의 합격점을 주기도 어려울 것 같다. 이른바 17대 국회 초반 4대 개혁법안 처리 과정에서 장외투쟁에 나섰던 건 정책적 반대를 성숙하게 풀어내지 못한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한나라당은 또한 2002년 불법대선자금으로 곤욕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 지방선거 때 공천헌금 파문으로 스스로 부패정당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숱한 성추행·성폭행· 음주 물의 사건은 잊을 만하면 꼭 한나라당에서 터져나왔다.
상큼했던 출발…입법기능에도 충실
4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탄핵역풍으로 인해 대대적 정치권 물갈이가 이뤄지면서 초선의원 비율이 사상 최대인 62.5%에 달했고, 이는 참신하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여권 뿐 아니라 한나라당도 물갈이 열풍을 벗어나지 못했다. 탄핵 역풍 뿐 아니라 대선자금 수사도 세대교체에 한 몫했다. 여야 정치권의 '큰 손'들은 "유권자들의 직접 평가를 받겠다"는 판에 박힌 말로 선거에 나섰다가 쓴잔을 마시거나 아예 정치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쇼'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한나라당은 천막에, 열린우리당은 영등포 시장통에 둥지를 트는 모습도 보였다. 어느 정당 할 것 없이 도덕성, 투명성을 두고 선의의 경쟁을 편 셈이다.
17대 국회의 또 다른 의미는 사회의 분명한 한 축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당했던 진보진영이 50년 만에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으로 원내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13%를 넘는 정당득표를 얻은 이들은 '거대한 소수'를 자임했다.
열린우리당-한나라당-민주노동당으로 구성된 국회를 보고 사람들은 "이제야 중도, 보수, 진보가 균형을 맞추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17대 국회는 이전에 비해 입법 기능에 충실했다. 의원발의 법안 처리 건수는 3258건으로 1912건에 그쳤던 16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매일 멱살잡이가 벌어지는 것 같았지만, 여야 간 물리적 충돌 횟수도 이전 국회에 비해선 많이 줄었다.
여당 의원이 정부의 문건을 폭로하며 외교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례도 있었다. 당청 갈등의 산물이기도 한 이런 풍경은 여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에 그쳤던 과거 국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국회와 대립은 마다치 않았을지언정 부당한 간섭은 삼갔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도력 아래 똘똘 뭉친 한나라당도 YS, DJ가 이끌었던 야당 못잖은 전투력을 발휘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색깔 공방'은 여전
이처럼 시대와 얼굴의 변화, 여야 비율의 변화에 조응하는 모습이 있었지만, 17대 국회에서도 '색깔공방', '막말 파동' 등은 끊이지 않았다.
회기 첫해인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처리를 두고선 몸싸움, 이념대립, 장외대립 등 극단적 대치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줬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냉전 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첫 단추를 이렇게 꿰자 사립학교법 재개정은 물론 종합부동산세 입법 과정에서도 '좌파' 딱지가 난무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면책특권을 앞세워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에 대한 의도적 색깔공세를 반복했다.
그리고 현역의원 신분의 이해찬 국무총리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을 향해 '차떼기당'이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지지자들의 속은 시원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국은 경색되고 대화의 통로는 막혔다.
여권 내에서도 색깔 공방은 멈추지 않았다. 보수적 의원들은 청와대나 자신의 동료들에게 '사회주의 냄새가 너무 난다'고 공격하기 일쑤였다. 스타일만은 그 누구보다 진보적이었던 청와대는 한미FTA, 이라크 파병 등의 정책을 추진할 때는 보수파를 선봉대로 내세웠다.
역편향 우려되는 18대 국회
대선과 총선 결과를 보면 17대 국회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는 싸늘한 것 같다. 그 어느 때 보다 좋은 조건과 자원을 갖고 출발한 17대 국회가 멋진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을 부인하긴 힘들다.
하지만 완전히 낙제점을 줘야만 할까? 4년 전 여의도는 여야 당선자들의 백가쟁명으로 시끌시끌했다. 초선 당선자와 중진 의원의 계급장 뗀 토론도 치열했다.
지금 여의도는 그때와 비교할 때 너무 조용하다. 낙선한 의원들도 청문회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지만 당선자들은 당권의 향배나 청와대의 움직임에만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있다.
18대 당선자들의 '질'에 대해서도 여러 뒷말이 나온다. 하나회 출신으로 정치테러의 배후에 섰던 인사, 부패 문제로 정계를 떠났던 '올드보이'들까지 국회에 입성했고, 당 내에서도 누군지도 모르는 인사들이 일부 정당의 비례 1번, 2번을 달고 무난히 당선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18대 국회는 의회와 정당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국민들이 직접 거리에서 촛불을 밝히는 상황에서 출범한다. 과연 18대 국회는 17대보다 일신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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