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4.13 총선 후보자 지원 유세 발언이 점입가경이다. 김 대표는 8일에는 부천 소사에 출마한 새누리당 차명진 후보 유세장을 방문해 "20대 국회에서는 (야당이 노동개편 4법 등 처리에) 발목을 잡을 때 차명진 3선 의원을 앞장 세워 몸싸움이라도 해서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본회의장 누드 사진' 논란의 당사자인 경기 안양 동안갑 심재철 후보 유세장에선 심 후보를 "최고의 양심과 신의의 정치를 일관되게 실천"한 사람으로 포장했다.
4년 전 총선에서 야당 후보를 뽑아준 지역에서는 집권 여당의 후보가 이번에 당선되어야만 지하철 사업 등 개발 사업이 속도를 낸다는 '포퓰리즘'식 유세도 계속되고 있다. 이 후보가 당선되면 '상임위원장 시키겠다' '국회의장도 할 수 있다'와 같은 '감투' 유세도 계속되는 중이다.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은 "초등학교 반장 선거 수준의 유세"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가 '몸싸움'에 앞장 세우겠다고 한 차명진 후보는 실제로 '몸싸움 국회' 때마다 각종 언론 보도에 등장했던 인사다. 2007년엔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관련된 'BBK 특검법 및 검사 탄핵소추안' 처리를 막으려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회 본회의장 점거에도 앞장섰다. 한나라당은 당시 본회의장을 점거하면서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모든 출입구를 쇠사슬과 전기줄, 집기 등을 동원해 봉쇄했다. 그러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이 이런 방해를 뚫고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차명진 전 의원은 들것에 실려나가기도 했다.
지금의 종합편성채널을 탄생시킨 2009년 언론법 강행 처리 때도 때마다 그가 등장한다. 그는 당시 한 야당 의원 보좌관한테 목이 졸리다가 팔을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민주당 쪽에선 차 전 의원이 먼저 보좌진을 밀치고 주먹을 휘둘렀으며, 쓰러진 보좌관이 집단 폭행을 당하던 중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다. 언론법 강행 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갔던 그해 9월 22일에도 차 전 의원은 법안 처리를 물리적으로 막으려던 야당 보좌진들과 싸우다 양복이 찢어졌다.
이런 '폭력 국회'가 계속되자 여야는 지금의 국회 선진화법을 만드는 데 합의했지만, 새누리당은 이 법을 '망국법'이라고 규정하고 무력화하려는 중이다. 급기야는 당 대표가 선거 유세 도중 과거의 '몸싸움'을 불가피한 것처럼 선전하며, 이에 앞장설 후보를 독려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차 후보에 대해 "용감하고 정의감이 강해서 야당 의원들과 선두에서 싸우다가 병원 입원도 여러번하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양복이 찢어져서 저한테 양복을 사달라고 때를 쓴 적도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차 의원이 있을 때는 야당이 발목을 잡고 방해하면 차 의원이 앞장서 싸웠다"면서 "서비스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는데 야당이 반대해서 통과가 안 됐다. 차명진 의원이 있었으면 몸싸움 해서라도 통과시켜 청년 중장년층에게 수십만 일자리를 만들 수 있었는데 원통하다"고 했다. 그는 급기야 "20대 국회에서는 차명진 3선 의원을 앞장 세워 몸싸움이라도 해서 이런 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차 후보가 과거 법원의 '불가' 판단에도 기어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명단을 공개해 벌금형을 받았던 일을 '용감한 일'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는 "부정 사관으로 패배주의를 가르치는 전교조를 몰아내야 한다"면서 "차명진 의원이 앞장서서 명단을 공개했다. 그 용감한 일을 차명진 의원이 해냈다"고 말했다. 차 후보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명단을 함께 공개했던 다른 의원들과 공동으로 총 9억1000여만 원을 명단이 공개된 전교조 조합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말로는 늘 '법치주의'를 외치면서도, 정치적으로 유리할 때에는 법원의 제동을 무시하고 나섰던 결과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안양시 범계역을 방문해서는 이 지역 후보자인 심재철 후보를 "최고의 양심과 신의의 정치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일관되게 실천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우리 심 의원은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반독재 투쟁하는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다고 1993년도에는 언론 민주화 운동을 이끌다 두 번이나 투옥됐던 민주화 운동가"라고도 말했다.
심재철 의원은 그러나 '서울역 회군'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심 후보는 계염령 하에 있던 1980년 5월 15일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서울역 일대에 무려 10만 명이 운집해 '군부 타도'와 '민주화'를 외치던 때에도 시위의 '후퇴 및 해산'을 결정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때에는 구타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하고 공소 사실을 인정, 관련자들이 2년~사형이라는 중형에 처하게 되기도 했다. 24년 후 재심에서야 무죄가 확정된 사건들이다.
심 의원은 이렇게 학생운동을 마무리한 후에는 문화방송(MBC)에 입사해 보도국 기자로 일하다가 1995년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에 입당해 현재 4선 의원에 이르렀다. 2013년 4월에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드 사진을 검색해 보는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누드 사이트가 성인인증 없이 무제한적으로 살포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 구글과 다음에서 검색해 봤다"면서 "실효성 있는 규제와 법안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해명해 더 큰 논란을 불렀다. 김 대표는 이날 유세에서 "안양 시민이 심재철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렇게 심 의원의 과거 민주화 운동 이력을 선거 운동에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야당에는 "운동권 출신이 많아 문제"라는 유세도 이어갔다. 김 대표는 심 의원 유세장에서 "20대 국회에서는 운동권 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심 의원에 대해 "우리 새누리가 각종 어려운 일에 봉착할 때마다 심재철 의원은 항상 앞장서 정의의 편에서 바른 말을 했다"면서 "대통령이 싫어하는 바른 말을 가장 많이 했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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