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쌘돌이' 이세돌 9단이 또 무릎을 꿇었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알파고는 10일 오후 1시에 시작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2국에서 이세돌에게 211수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이날 대국에선 이세돌이 '백', 알파고가 '흑'을 잡았다. 하루 전 대국에서도 알파고는 이세돌을 상대로 불계승을 거뒀었다.
알파고가 10일 대국에서 보여준 기풍(棋風, 바둑의 개성)은 하루 전과 완전히 달랐다. 다양한 변칙수를 구사하는 등 창의적인 기풍이었다. 이세돌 역시 새로운 기풍으로 맞섰으나 결국 돌을 던졌다. 항복했다는 뜻이다.
바둑계는 경악한 모습이 역력하다. 이날 대국 중계 해설자로 나선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김성룡 9단은 "인간 바둑에서는 처음 보는 수"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이런 바둑을 둔 사람이 없을 테니 데이터에도 없는 수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라고도 했다.
알파고가 새로운 수를 스스로 고안했다는 뜻이다. 당초 바둑계는 알파고가 과거 기보(棋譜, 바둑을 둔 기록)를 학습했으므로, 바둑 이론에 충실한 수를 둘 것이라고 봤다. 기계적으로 공식에 대입하는 것 같은 바둑 말이다. 따라서 알파고는 실수를 하지 않고 계산에는 강하지만 창의적인 수는 두지 않으리라는 예상이었다.
이런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인간끼리 두는 바둑에선 어쩌다 나오는 창의적인 수가 대국 한판에서 연거푸 쏟아졌다. 그저 계산에만 의지하는 게 아니었다. 미래의 큰 이익을 위해 당장의 작은 손실을 감수하는 전략적 판단에도 능한 모습을 보였다. 인간보다 더 인간의 강점에 가까운 바둑이었다.
이세돌이 기풍을 바꾼 것도 그래서였다. 인간이 지닌 강점에 기대서 이기기 힘들다고 본 것이다. 두 번째 대국에서 이세돌은 컴퓨터 같은 바둑을 선보였다. 이른바 '이창호 전략'이다. 이창호 9단은 기본에 충실하고 계산이 치밀하다. 그러나 이런 전략도 통하지 않았다.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알파고는 심리전을 펼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중반까지 이세돌에게 밀리는 형국이었는데 적절한 순간에 기발한 공격으로 판을 흔들었다. 이세돌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고, 그 과정에서 계산 실수를 했다.
또 알파고는 초반에 둔 변칙수로 이세돌의 시간을 갉아먹었다. 이세돌이 변칙수의 의미를 궁리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쓴 것이다. 이는 막판에 이세돌의 발목을 잡았다. 자기 시간(2시간)을 다 쓴 이세돌은 대국 후반부에서 극도로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알파고는 막판에 화력을 집중했고, 결국 이세돌의 항복을 받아냈다.
두 차례의 대국에서 이세돌은 평소와 다른 표정을 자주 지었다. '날쌘돌이'라는 별명답게 늘 발랄했던 그의 얼굴이 종종 어두워졌다. 이세돌을 오랫동안 가르쳤던 스승 권갑용 8단 역시 이런 표정이 낯설다고 했다.
다음 대국은 오는 12일 오후 1시에 열린다. 11일은 휴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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