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의 부실 조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산업재해 은폐 관련, 제출된 집단 진정이 업체의 일방적 진술과 병원의 부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진행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울산지역 노동자건강권 대책위와 현대중공업노조는 9일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2건의 집단 진정을 울산고용노동지청에 냈으나 이 중 5건에만 산재 은폐를 적용했다"며 "조사를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2015년 6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다친 재해자 상담 자료와 동영상, 사고 즉보(사고 즉시 발견)를 근거로 62건의 산재은폐에 대해 울산고용노동지청에 집단 진정서를 제출했다. (관련기사 ☞ : 일하다 다치면 병원이 알아서 숨겨준다?)
치료는 받았지만 진료사실이 없다?
울산고용노동청청에서 지난 1월 20일 보낸 조사결과를 보면, 2014년 12월께 작업 도중 손등이 철판에 부딪혀 5바늘을 꿰매는 상처를 입은 전모 씨(진성이엔지) 관련, 노동부는 '소속 확인 불가'로 결론지었다. 산재은폐는 맞으나 전 씨 소속업체가 어디인지 모르기에 처벌 대상을 특정할 수 없다며 아무도 처벌하지 않은 것.
A 씨(송광)의 경우, 2013년 12월께 작업 도중 우측 손목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으나 해당 업체 총무의 제안으로 치료비 보상을 약속받고 타 업체로 이직했다. 하지만 울산고용노동청은 재해자에게 사실 여부도 묻지 않고 사건을 '재해 발생 및 진료사실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2013년 작업 도중 사고로 손가락 골절을 당한 B 씨(송광)의 경우, 업체총무가 '노동부에서 전화가 오면 사고 사실이 없다고 말해 달라'는 제의를 하기도 했다. 결국, 압박을 견디지 못한 B 씨는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울산고용노동청에 허위 진술을 해야만 했다.
산재지정 병원도 도마 위에 올랐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인 송광 소속 재해자가 모두 지정병원인 K정형외과에서 초진 진료를 받았지만 울산고용노동청 조사에서는 재해사실 자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재해자 진료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대책위 등은 병원이 노동부 조사 과정에서 고의로 진료기록을 누락시켰다고 판단한다.
휴업 일수도 논란의 대상이다. 울산고용노동청 조사결과를 보면 산재에 따른 치료를 위한 휴업일수가 3일 미만인 재해자가 13명이었다.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연속 휴업일이 3일 이상 돼야 한다. 업체에서 산재은폐를 위해 일하다 다쳐도 3일 이상 휴업을 주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노동자들은 하루나 이틀만 휴업을 한 뒤, 현장에 복귀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는 이 같은 업체의 '꼼수'를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울산고용노동청, 재해자에게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대책위는 "전 씨의 조사결과인 '소속 확인 불가'는 업체가 물량팀을 사용했을 가능성, 허위 출입증으로 고용했을 가능성 등 업체의 고질적 병폐와 관련된 사항으로 더욱 꼼꼼한 조사가 필요했다"며 "하지만 노동부는 정작 당사자에게 사고 경위를 묻는 단 한 차례의 통화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업체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다른 재해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어떠한 사실 경위도 묻지 않고 업체들의 일방적 주장과 허위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종결지었다"며 "누구를 위한 노동부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2012년 3명, 2013년 3명, 2014년 9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며 "죽음의 이면에는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산재 은폐가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하인리히 법칙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산재 은폐 척결은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지 대책"이라며 "하지만 노동부의 안일하고 부실한 조사는 오히려 산재 은폐를 조장하고 더욱 교묘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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