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직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이 지금 자리에 앉기 전에 이재만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을 만났다."
이 비서관은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의 '문고리 삼인방'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이런 만남에 대해 홍 회장은 직접 이야기했다. 지난 2014년 12월 8일, 서울 옥인동의 한 식당에서였다. 이 자리는 삼성자동차 OB(퇴직자) 모임이었다. 당시 홍 회장은 이 비서관에 대해 "말수도 적고, 외부인과 접촉도 별로 없다"라고 평가했다. 당시 만남 직후 홍 회장이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으로 선임됐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심정택 씨의 증언이다. 그는 묻는다.
"외부 접촉이 거의 없는 대통령 측근을 누구의 도움으로 만날 수 있었겠는가."
"삼성 미래전략실, 퇴직자들도 관리했다"
홍 회장은 심 씨의 직장 상사였다. 심 씨는 과거 삼성자동차 경영기획실에서 오랫동안 조사 업무를 담당했었다. 이후 홍보 대행사 및 갤러리를 운영했고, 지금은 저술에 전념한다. 홍 회장은 산업통상자원부 관료 출신으로 삼성자동차에 영입됐다. 홍 회장은 삼성자동차 전무 및 삼성SDI 부사장을 지내다 퇴직했다. 심 씨는 홍 회장에 대해 "로비스트"라고 평가했다.
심 씨에 따르면, 홍 회장은 이날 모임에서 전주비전대학교 총장 재직 당시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학생 취업을 위해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 회당 50~60만 원의 식사 비용이 발생한다. 그걸 삼성에 청구했다는 게다. 이전에는 잘 내줬는데, 요즘은 잘 처리해주지 않는다는 게 홍 회장의 불만이었다고 한다.
삼성이 자신들의 사업과 관련이 있는 부처 공무원을 영입해서 '로비스트'로 활용한 사례, 그리고 퇴직 이후에도 꾸준히 관리하는 사례가 확인된다. 하지만 한국생산성본부 측은 심 씨의 주장을 부인했다. 설령 홍 회장이 이 비서관을 만났다고 해도,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선임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 전 비서팀장과의 만남
심 씨는 최근 <이건희傳-초국가 삼성을 건설하다>(새로운현재 펴냄)라는 책을 냈다. 홍 회장의 사례는 이 책 내용 가운데 일부다. 심 씨는 앞서 <삼성의 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등을 출간했었다.
<이건희傳(전)> 집필에 앞서, 저자는 정준명 전 삼성전자 일본본사 사장을 만났다. 정 전 사장은 이병철, 이건희 회장의 비서팀장을 지냈었다. 이병철, 이건희 회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사람이다. 그가 한 이야기가 책에 많이 소개돼 있다.
이밖에도 그는 퇴직한 삼성 간부들을 폭넓게 만났다. 그 역시 삼성 퇴직자 가운데 한 명이므로, 만남이 수월했다. 앞서 소개한 홍순직 회장도 포함된다.
그뿐 아니다. 삼성 관련 자료는 최대한 수집했다. 공개된 자료를 꼼꼼히 살피고, 흩어진 정보를 조립한다. 그것만 잘해도, 새로운 정보를 발굴할 수 있다. 진짜 의미 있는 정보는 밀실이 아니라 개방된 도서관에 있다. 그게, 정보 전문가였던 그의 지론이다. 이런 수집과 분석의 결과물이 이번 책이다. 집필하는 과정에서 기자 역시 그를 여러 번 만났다. 공개된 정보의 해석을 놓고, 그와 여러 차례 토론했었다.
삼성 권력과 TK 권력
저자의 문제의식은 '권력'이라는 키워드로 모아진다. 대기업, 특히 재벌의 행태는 경영학이나 경제학 이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재벌은 그 자체로 산업 권력이며, 정치 권력과 상호 작용을 통해 생명을 이어간다.
삼성은 지금껏 두 차례에 걸쳐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했다. 창업자 이병철에서 이건희 회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첫 번째다. 이재용 부회장이 넘겨받는 과정이 두 번째다. 저자는 이 두 과정이 모두 TK(대구-경북)에 바탕을 둔 정치 세력이 집권하던 시기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작업은 전두환 정권 시기에 이뤄졌다. TK 출신 관료 및 정치인의 대부로 꼽혔던 신현확 전 총리(전 삼성물산 회장)가 이 과정을 지휘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은 박근혜 정권 시기에 진행됐다. 이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부 고위직은 대부분 TK 출신이었다.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모두 TK 출신이다. 최 전 장관은 대구고등학교 출신인데, 현 정부 들어 대구고 인맥이 대대적으로 약진했다는 지적이 지난해 국정 감사에서 나왔었다. 안 수석은 대구 계성고등학교 출신, 정 위원장은 대구 경북고등학교 출신이다.
"삼성 같은 기업 또 생기면…"
따라서 삼성의 성장은, 한국 경제의 성장과 그대로 겹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기득권 집단에 뿌리를 둔 권력의 성장과 겹친다. 결국 삼성의 성장은, 기득권의 강화 과정이었다.
다양한 사회적 자원이 이런 목적으로 소비됐다. 법질서의 권위가 흔들리고, 정치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그 대가는 한국 사회 전체가 치른다. 글 도입부에서 소개한 홍순직 회장과 이재만 비서관의 만남은 작은 사례일 뿐이다.
저자는 딱 잘라 말했다.
"지금의 삼성 같은 기업이 또 생기면, 나라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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