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3주년 하루 전인 오는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서 '유령 집회'가 열린다.
'진짜 유령'들이 집회를 벌이는 것은 아니다. 최근 집회 및 시위가 원천 봉쇄되자, 유령의 형상을 빌려서라도 집회·시위의 권리를 보장받겠다는 뜻을 전달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빛으로 촬영한 물체를 3차원 입체로 구현하는 홀로그램 기술이 동원된다.
홀로그램 형식의 집회, 이른바 '유령 집회'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기획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집회 형식이다.
유령 집회가 제일 처음 열린 곳은 스페인이다. 지난해 4월, 스페인 시민단체 '홀로그램 포 프리덤'은 공공건물 인근에서 시위를 못 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킨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유령 집회를 연 바 있다.
앰네스티는 지난 1월 청와대 인근 집회를 신고했지만, 경찰은 교통 방해를 이유로 금지 통고를 내렸다. 이에 스페인 사례에서 착안, 유령 집회를 기획한 것. 앰네스티는 다시금 '집회 시위 자유를 위한 홀로그램' 개최 신청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집회가 아닌 문화 행사이므로 이에 대한 허가 여부는 서울시 몫이다. 정작 서울시는 행사를 허가했지만, 경찰은 다시금 교통 혼잡을 이유로 금지했다.
"원래 주 도로에서는 집회 신고가 안 되지만, 행진은 가능했었어요. 청와대 인근 행진을 하면 적어도 청운동 동사무소까지는 허용됐는데, 세월호 유족들이 행진한 이후로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백악관 앞 펜실베니아 애비뉴에서는 신고하지 않아도 집회가 가능합니다. 영국에선 행진이 아닌 이상은 총리 관저 앞에서 집회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공공건물에서 100미터 이상 떨어져야만 집회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제는 청와대에서 200미터 떨어진 청운동 동사무소까지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안 간사는 집회 시위는 신고제임에도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홀로그램 집회도 '집회 시위 자유'라는 영상 내용을 문제 삼았습니다. 영상의 내용을 갖고 허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건데, 그럼 모든 문화제 내용을 경찰이 검열하겠다는 의미 아닙니까."
집회 시위 원천 봉쇄도 모자라,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을 폭압적으로 진압했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은 농민 백남기 씨는 여전히 중태에 빠져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마이나 키아이 유엔특별보고관은 이와 같은 한국의 집회 시위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집회와 관련한 모든 단계(집회 전, 집회 도중, 집회 후)에 부당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약들은 공식적인 법적 제약에서부터 보다 더 실제적인 장애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여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점진적으로 약화시켜 일종의 특권으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물대포와 차벽을 사용하는 것은, 특히 과도한 무력과 함께 사용하게 될 경우는 경찰과 시위대 간 긴장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공격은 공격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마이나 키아이, 지난 달 29일 기자회견)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현재는 유령 집회를 위한 영상 편집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영상 총 길이는 10분으로, 24일 오후 7시 30분부터 이 10분짜리 영상이 3번에 걸쳐 상영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실제 집회 현장에서처럼, 각자 가져온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집회는 인권이다, 인권이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이날 미처 참여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앰네스티 측은 휴대전화 메신저를 통해서도 음성 메시지와 문자 메시지를 받았고, 17일까지 총 180여 건이 도착했다.
"우린 공권력처럼 물거나 해치지 않아요"
"우리는 길에서 만나고 걷고 노래하고 싶다"
메신저를 통해 모인 메시지들은 영상에 반영될 예정이다.
"재밌어 하시는 것 같아서 좋지만, 유령 집회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랍니다."
앰네스티는 24일, 집회 시위의 자유를 요구하는 '유령 호소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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