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술이 먹고 싶어서 먹었단 말이요? (중략)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1921년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 일부다. 새벽 2시가 넘어 만취상태로 집에 온 남편에게 아내가 "누가 술을 이처럼 권했노?"라고 묻자, 남편이 한 대답이다.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신 게 아니라 사회가 주는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해, 즉 '사회가 권해 마셨다'는 것.
2016년 현재,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여전히 술을 건넨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잔을 부딪치며 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오로지 취업 얘기뿐이다. 대학 생활의 낭만을 즐기기보다는 우리들은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의 취업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취업준비생 100만 명의 시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1992년 이후 사상 최고치인 9.2%로 집계됐다. 정부는 올해 청년 취업난 해소를 목적으로, 27년 만에 가장 많은 국가직 공무원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역대 최대 인원인 22만 명의 취업준비생들이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에 몰렸고, 행정직(일반행정:전국)의 경우 89명 모집에 3만 명 이상이 지원하는 등 무려 406:1이라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사회야말로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길 강제하고 있다. 또한 청년들을 공무원시험 합격 여부도 불투명한, 불확실한 미래로 떠미는 주범이다
공무원시험준비생인 ㅇ씨(25·여)는 "정부가 '취준생'의 증가와 실업률 증가에 대한 해결책을 애꿎은 공무원 시험 준비로 돌리려는 것 같다"며 취업난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공무원 인력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대학 졸업보다는 공무원이 더 큰 이득"
대학 입학 후 휴학하고, 공무원 준비에 들어가는 공시생도 점차 늘고 있다. 1학년이 끝나자마자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대학생 ㅊ씨(21·여)는 "남들 졸업할 때 공무원 시험 합격해서 취업하게 되면, 대학 등록금도 아낄 수 있으니 대학 졸업보다 더 메리트(이득)가 클 것 같아서 휴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학생이 대학 졸업보다 중요한 것은 취업이라며 발 빠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처럼 대학보다 공무원 준비를 하는 고등학생, 이른바 '공딩'이 증가하고 있다. 대학에서의 4년 대신 공무원 시험 준비에 열정을 쏟아 안정적인 직장(공무원)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는 계산에서다. 공딩은 이미 노량진 학원 수강생의 27%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한 고등학교에는 '공무원반'이 신설됐다.
"돈보다는 안정적인 일자리"
공시생 ㄱ씨(26·남)는 "공시생 중에 국가를 위해 일하겠다는 신념 때문인 사람은 별로 없다. 대다수는 안정적인 직장 찾고 싶어서 시작한다"며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안정적인 직장이 없다는 반증 아닐까"라고 말했다.
물론 공무원이 돼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청년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대다수는 불안정적인 노동 구조 때문에, 그리고 학벌과 스펙의 장벽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공무원을 선택한다.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ㄱ씨(26·남)는 올해도 "한 번 더"를 외치며 공부에 여념이 없다. 그는 "그동안 공무원 시험을 위해 준비한 시간이 있어, 이제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다시 대학에 돌아가도 20대 후반에나 졸업을 할 수 있다. 다른 길을 찾기엔 너무 늦어버렸다"고 말했다. ㄱ씨처럼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현재의 불안정함을 애써 버티고 있는 청년들은 많다.
"기업 문화에 대한 염증 때문에 공무원 선택"
설령,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5명 중 1명은 1년 이하의 계약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 게다가 야근과 회식에 치여, 여성일 경우 결혼과 육아를 포기하는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23살에 명예퇴직 당하는 시대다. 지난 연말 두산인프라코어는 20대 사원들에게 희망퇴직을 권고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대학 재학 중인 ㅇ씨(25·여)는 "아버지는 서울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40대에 명예퇴직을 당했다. 그런데 본인의 대학 동기 중 공무원이 된 친구는 잘릴 걱정 없이 지금도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고 부러워한다. 그래서 자식만큼은 공무원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달 '일반해고에 대한 최종안'을 발표했다. 일반해고가 시행되면, 저성과자나 업무 부적응자를 해고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해고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징계해고'와 '정리해고' 두 가지뿐이었지만, 이제는 '일반해고'도 가능해진 것이다. 결국 가중된 불안정성에 공무원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취준생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위 기사는 미래정치센터 블로그 기자단 이하나 학생(인천대 정치외교학과) 취재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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