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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별, 봄 맞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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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별, 봄 맞이 음식

[살림 이야기] 굴밥·늙은호박김치찌개·나박김치·파래김치

어떤 사람들은 매해 1월 1일인 신정을 새해의 시작으로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음력 1월 1일인 설을 새해의 시작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동지(冬至)에 양기가 시작되고 생명력이 충만해지고 광명이 부활한다고 여겨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이 아니라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라 하여 '작은 설'이라고도 한다.

비근한 예로 봄을 맞이하는 자세도 조금씩 다르다. 태양력을 따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3월이 되어야 봄이라 생각하지만, 24절기로 볼 때 2월 초순에 이미 봄이 우리 곁에 왔음을 알린다. 해마다 입춘은 양력으로 2월 5일을 전후해서 오기 때문이고, 입춘(立春)의 글자를 통해 보더라도 입춘(入春)이 아니니 이미 봄은 우리 곁에 와 있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2월이 되기 전에 자연스럽게 겨울과 이별을 예비하고 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 따뜻한 겨울 볕을 밭아 우엉, 연근대, 귤피, 표고버섯이 바싹 말라가고 있다. 동네부엌 장독대 위에 놓인 고지들만 봐도 배가 부르다. ⓒ류관희

굴밥 하나면 다 돼

언젠가 남편과 함께 경남 사천에 간 일이 있다. 다른 기억은 다 사라지고 없지만 그날 바닷가에 널린 굴들 틈새에서 놀던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갯가에 흔한 돌멩이 하나를 들어 굴을 내리치면 반으로 갈라지면서 안에 뽀얗고 탄력 있는 속살이 드러났다. 작고 탱글탱글한 굴은 짭조름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을 채 느끼기도 전에 호로록 목을 타고 넘어갔더랬다.

바닷가에서 절로 나고 자라는 굴들은 물이 들어올 때면 물속에 잠겼다가 물이 빠지면 해를 맞아들이면서 웃자라지 않고 천천히 나이를 먹듯 자란다. '자연산'이라고 불리는 이 굴들은 자잘해서 씻기는 좀 번거롭지만, 어찌나 달고 맛난지 씻으면서 자꾸 입으로 가져가게 되는 단점도 있다. 그런 굴들을 잘 씻어 건져 굵게 채 썬 무와 함께 듬뿍 넣고 밥을 하면, 무가 가진 시원한 맛에 굴의 감칠맛과 짠맛이 더해져 반찬이 필요 없는 밥이 된다. 그야말로 밥 하나면 다 된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럴 때는 소모된 에너지를 보충하고 겨울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식재료로 굴이 최고다. 서양에서도 굴은 강장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날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 그들도 굴에 부족한 비타민C를 보충하고, 굴의 갯내를 없애기 위해 레몬을 곁들인 생굴을 먹는다. 레몬즙과 같이 먹는 굴은 세균 번식이 억제되고 살균효과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처럼 다양한 조리법이 발달하지는 않았다.

굴은 한방에서 석화(石花) 또는 모려(牡蠣)라 불리는데, 우리 조상들은 음식으로도 먹고 약으로도 두루 먹어 왔다. 궁중 어의였던 전순의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식이요법서인 <식료찬요>에서는 신선한 굴을 구워 먹으면 피부가 매끄러워지고 안색이 밝아진다고 하였으며, 신선한 굴을 쪄서 먹으면 심신이 허약하여 불안하고 잠을 못 이루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굴의 이런 체내 작용 때문에 "배 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하얗다"는 속담이 생겼을 것이다.

겨울을 잘 나야 봄에 건강하다. 겨울을 잘 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굴처럼 좋은 음식을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겨울이 다 가기 전 굴밥으로 추위를 이기느라 빼앗긴 기운을 되찾고 봄을 건강하게 맞이하면 좋겠다.

굴밥

재료
쌀 2.5컵, 손질한 굴 400g, 무 400g, 들기름 1큰술, 물 2컵
양념장 : 간장 2큰술, 물 2큰술, 쪽파 5뿌리, 다진 마늘 1/2큰술, 고춧가루 1큰술, 참기름(또는 들기름), 참깨

만드는 법
① 쌀을 씻어 분량의 물을 넣고 밥솥에서 불린다.
② 굴을 3% 소금물에서 흔들어 씻어 건져 물기를 뺀다.
③ 무는 약간 굵게 채 친다.
④ 불린 쌀에 무채를 먼저 얹고 그 위에 굴을 펴서 얹는다.
⑤ 들기름을 넣는다.
⑥ 밥이 끓기 시작하고 압력솥의 추가 흔들리면 1분 후 불을 끈다.
⑦ 김이 빠지는 동안 양념장을 만든다.


돼지고기 감칠맛이 김치와 어우르고 늙은 호박의 달콤함이 녹아든 찌개


고향이 황해도 연백인 아버지 덕에 알게 된 김치가 늙은호박김치다. 가장 큰 특징은 다른 김치들과는 달리 생으로 먹지 않고 익혀서 먹는 것에 있다. 익혀서 먹는다는 말에는 겉절이처럼 막 담가서 바로 먹지 않고 충분히 발효시켜서 먹는다는 의미도 포함하지만, 그렇게 익힌 김치를 끓여서 먹는다는 의미도 지닌다. 우리 집에서는 김장 때 같이 담근 늙은호박김치를 1월 중순이 지나 2월이 되면 자주 먹는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껏 해 주시는 음식이 작은 냄비에 늙은호박김치와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육수를 조금 넣어 바글바글 지진 것이었다. 이렇게 국물이 거의 졸아들게 지진 김치를 뜨거운 밥에 얹어서 호호 불면서 먹으면 언제 밥 한 그릇이 다 없어지는지 모르게 맛있었다. 나는 요즘 이 김치에 돼지고기를 넣고 가장 흔한 방법으로 김치찌개를 한다. 돼지고기의 기름진 고소함과 감칠맛이 김치와 어우러진 데 더해 늙은호박의 달콤함이 녹아든 찌개는 들기름으로 지지는 김치에 비할 바가 아니게 맛나다.

늙은호박김치찌개

재료
늙은호박김치 600g, 돼지고기 300g, 들기름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후추, 김치 국물 3큰술, 육수(물) 5컵, 새우젓 1큰술, 대파 1뿌리, 고춧가루 1큰술

만드는 법
① 늙은호박김치의 국물을 짜서 국물은 따로 담아 두고 김치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② 돼지고기는 김치의 크기에 맞춰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③ 냄비에 돼지고기와 들기름, 마늘, 후추를 넣고 볶는다.
④ 돼지고기를 어느 정도 볶다가 김치를 넣고 같이 볶는다.
⑤ 국물이 없어 탈 수 있으니 남겨둔 국물을 넣어 가며 볶는다.
⑥ 물 5컵을 넣고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10분간 푹 끓인다.
⑦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대파와 고춧가루를 넣고 한소끔 끓으면 불을 끈다.

월동 배추와 무의 아삭하고 달콤한 맛이 적당히 익어 새콤한 물김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설 명절에 어머니는 집안을 다 뒤져 대청소를 하시고는 다음으로 나박김치를 담그셨다. 명절에 알맞게 익어야 하는 설맞이 나박김치를 담그기 위해서 어머니는 가을에 김장을 하면서 배추 몇 포기와 무 몇 개를 남겨 두셨다. 배추와 무를 하나하나 정성 들여 신문지에 싸서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오래된 아이스박스에 차곡차곡 넣어 집안의 가장 서늘한 곳에 두셨다. 도시에 살고 있어 땅에 묻지는 못하는 대신 온도의 변화는 최소로 하고 저장성은 최고로 하려는 어머니 나름의 방법이었다. 못생긴 것을 골라내서는 겨우내 배춧국을 끓이고 무나물을 해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좋아서 오래 남아 있는 잘 생기고 단단한 무와 배추를 꺼내 나박김치를 담그셨다.

물론 김장김치나 동치미, 깍두기가 있기는 하지만 명절 음식을 계속 먹는 그 느끼한 포만감을 개운하게 바꿔 주는 데 나박김치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아마도 설 즈음해서 묵은 김치에서 벗어나 뭔가 참신한 김치를 먹고 싶은 내 안의 강렬한 욕구가 그렇게 발현되었을 수도 있다. 나박김치는 월동 배추와 무의 아삭하고 달콤한 맛이 적당히 익어 새콤한 물김치로 자라서, 김장김치를 멀리하고픈 나를 위로하는 김치로 완성된다. 어느 입맛 없는 날 시큼해진 나박김치 국물에 밥을 말아 먹어야겠다.

나박김치

재료
무 500g, 배추속대 300g, 소금 4큰술, 대파 1뿌리, 마늘 5알, 생강 1쪽, 미나리 10대, 실고추 약간
양념 : 고춧가루 2큰술, 소금 2큰술, 배즙 1큰술, 찹쌀풀 2컵, 물 3ℓ
찹쌀풀 : 물 2컵, 찹쌀가루 2큰술

만드는 법
① 무는 깨끗이 씻어서 나박썰기를 한다. (3cm*2.5cm*0.5cm)
② 배추는 흰 속대만 골라 씻어 잎을 길이로 2등분 한 다음 3cm 길이로 썬다.
③ 무와 배추를 소금에 절인다.
④ 대파는 3cm 길이로 잘라 곱게 채 썬다.
⑤ 마늘과 생강도 껍질을 벗겨 깨끗이 씻은 후 곱게 채 썬다.
⑥ 미나리는 잎을 모두 따내고 깨끗이 씻어 3cm 길이로 썬다.
⑦ 찹쌀풀을 쑨다.
⑧ 모든 재료를 넣고 고루 섞어 김치통에 담는다.
⑨ 물 3ℓ에 소금과 배즙, 찹쌀풀을 넣고 잘 섞는다.
⑩ 고춧가루를 면보자기에 잘 싸서 ⑧8의 양념물에 넣고 흔들어 고추색과 맛이 우러나게 한다.
⑪ 8의 재료에 ⑨의 양념물을 부어 익힌다.

처치 곤란한 묵은 김치 국물에 뚝딱

강원도 산골의 내가 완도의 속국처럼 딸린 작은 섬에서 자란 남편과 살면서 가장 좌절한 건 음식이었다. 남편은 매 끼니마다 생선을 찾았다. 그리고 결혼 무렵엔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청각이 시도 때도 없이 김치에 들어가야 했고, 멸치젓갈의 강렬함이 입안에서 오래 떠나지 않게 해야 했다. 설날 아침에 만둣국을 끓였다가 차례 지내러 온 식구 모두가 그릇 속에서 낚시하듯 떡만 골라 먹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남편과 나의 음식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조금씩 양보하며 타협해 가는 중에 나에게 보석처럼 남은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파래김치다.

설이 지나고 정월대보름이 지나는 중에 처치하기 곤란해지는 묵은 김치의 남은 국물과 찌꺼기를 모아 다시 담그는 일종의 '재활용 김치'이기 때문이다. 먹을 줄만 알지 음식을 할 줄 모르는 남편이 원하는 파래김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어 모르쇠를 하던 중이라 묻힐 위기에 있던 김치가 파래김치였다. 어느 날 보길도가 고향인 친구 집에 갔다가 친구 어머니가 차려 주신 밥상에서 파래김치를 만났다. 남편이 얼마나 잘 먹는지 남은 김치를 얻어서 돌아왔고, 그 후 그 맛을 흉내 내어 찾은 김치가 바로 파래김치다. 아마 바닷가 사람이 아니라면 생경한 맛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김장김치 먹다가 남은 국물도, 담가 두고 별미로 즐길 만하니 버리지 말고 모아 두면 어떨까.

파래김치

재료
묵은 김치 국물 2컵, 파래 200g, 대파 1/2뿌리, 쪽파 3뿌리, 마늘 1개,
고춧가루 약간, 액젓 약간

만드는 법
① 묵은 김치의 남은 국물을 버리지 말고 모아 둔다.
② 파래는 모래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깨끗하게 씻어 한두 번 잘라 놓는다.
③ 대파는 다듬어 씻은 다음 송송 썰고 마늘은 곱게 찧는다.
④ 쪽파는 다듬어 씻은 다음 2cm 길이로 썬다.
⑤ 김치 국물에 파래를 넣고 잘 섞는다.
⑥ 파래에 대파, 쪽파, 마늘을 넣고 잘 버무린다.
⑦ 모자라는 색은 고춧가루를 넣고 모자라는 간은 액젓으로 한다.
⑧ 먹을 때 통깨를 뿌려 내면 고소하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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