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이라는 순우리말이 있다. 가위의 한 날과 다른 한 날이 교차된 지점에 박아 놓은 나사 모양의 작은 물건을 말한다. 가위의 한 날만으로는 베나 종이를 자를 수 없다. 두 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양날로도 그 어떤 대상을 자를 수 없다. 두 날을 맞물리게 하는 사북이 있어야만 한다. 부채에도 이 사북이 박혀 있어 부챗살을 하나로 모으고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다. 이처럼 사북은 어떤 물건이 본래의 고유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도 사북이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일에는 이 사북과 같은 존재가 있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가위의 양날만 보고 그 날이 되고자 할 뿐 이 사북을 좀처럼 눈여겨 보지 않는다. 작고 눈에 잘 띄지도 않아 돋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가위를 놓고 좀 더 깊이 사유를 해보면 세상의 이치 중 하나를 깨닫게 된다.
가위의 한 날은 명분(名分)이요, 다른 한 날은 실용(實用)이다. 어떤 사람은 명분이라는 날만 가지고, 또 어떤 사람은 실용이라는 날만 가지고 세상을 자르고자 한다. 제대로 잘릴 리가 없다. 명분과 실용 모두를 가위의 양날처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명분과 실용은 결코 대립각이 아니다. 임마누엘 칸트 식으로 표현하면 명분 없는 실용은 맹목이며, 실용 없는 명분은 공허하다. 이 명분과 실용은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바로 사북이다. 어떤 일을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려면 우선 그 일의 사북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사북을 자리매김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관련해 사북은 무엇일까. 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 가이드라인인 ISO 26000은 조직이 사회적으로 책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한 7가지 핵심주제를 제시하는데, 지배구조, 인권, 노동관행, 환경, 공정운영관행,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참여와 발전이다. 이 중 '지배구조'는 사북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ISO 26000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단순화 시킨 도식을 보면 조직 지배구조는 나머지 핵심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나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은 인권, 노동관행, 환경 등과 관련한 책임성도 나쁠 가능성이 높다.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은 직접적으로는 환경과 소비자 이슈이지만 그 근본 원인으로 천착해 들어가면 지배구조 이슈로 귀결된다. 자동차 배기가스 통과를 위한 테스트는 실내 실험실에서 진행되고 이 실험실에서는 핸들조작이 별로 없다. 폭스바겐은 이를 이용해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핸들조작이 없을 때만 작동하도록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 분명한 건 폭스바겐 구성원 중 일부는 이 꼼수를 알고 있었고, 또 이를 알고도 의사결정을 한 누군가는 있었다는 점이다. 전현직 임원간의 심각한 알력이 작용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외신은 포르쉐 가문의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의 독점을 거론한다. 결국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이자 문화인 지배구조가 건전한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지배구조 만능론을 내세우는 건 아니다.
우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이 사북에 눈을 돌리고 그게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 사북은 시스템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작가 한승원은 사북형 인간으로 다산 정약용을 들고 있다. 그의 소설 <다산 1·2>의 도입부는 임종 직전의 다산이 두 가지 약을 섞어 마시는 꿈을 꾸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그 약은 다름 아닌 주자학과 천주학이다. 그에 따르면 다산은 "주자학을 비판하긴 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천주학을 버렸다고는 했지만 그 요체를 가슴에 새겨 담고 있었던" 사상가다. 그래서 한승원은 <다산 2> 말미에 쓴 작가의 말에서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다음과 같이 가위에 비유한다. "주자학이라는 한쪽 날 위에 천주학이라는 다른 한쪽 날을 가새질로 포개고 그 한가운데 사북으로 박혀 있다."
책임 있는 사회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 정 다산 같은 사북형 인간이 많은 사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실행하는 사회이다. 나라든, 사회든, 기업이든, 가정이든 말이다. 총선이 코앞이다. 정치권에서는 입후보와 인재 영입이 한창이다. 가위의 날이 되고자 하기 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분야에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사북형 인재가 영입되고 당선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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