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면 뿌려지는 것들
눈은 내리는 곳에 따라 다른 풍경을 만들고 다른 취급을 받는다. 눈에 대한 이런 정의는 어떤가. '대기가 짧은 시간 만들어낸 퇴적층.' 춥고 메마른 겨울 산과 들에 내리는 눈은 빛과 열을 조절하고 수분을 공급해 식물이 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맞춤 이불'이다.
하지만 시멘트와 아스팔트 도시에 내린 눈은 쌓일 틈이 없다. 없애야 하는 존재가 돼버린다. 기후변화로 평년기온이 웃돌고 기상이변이 잦아 폭설 피해와 제설 비용은 되레 늘고 있다. 겨울이면 거리마다 쌓아놓은 모래주머니가 '염화칼슘 제설함'으로 바뀐 때는 1990년대 들어서다. '염화칼슘을 보관하는 집' 문패가 달린 것은 2000년대 즈음. 염화칼슘 수입현황에 따르면, 1990년대 수입량이 늘기 시작해 2001년 5만 톤(t)을 넘어섰고, 2011년 30만 톤으로 최고치를 기록한다. 염화칼슘은 1968년 OCI(옛 동양제철화학)가 처음 생산을 시작했다. '누구나 살포할 수 있습니다' 제설함 글귀처럼 염화칼슘 살포가 일상이 되기 전, 골목에 연탄재 깨뜨리고 모래 섞인 흙을 뿌려 빙판길을 막았다. 눈 쓰는 이웃들은 겨울 풍경을 만들었다.
'제설제의 혁명'이라는 염화칼슘은 19세기 벨기에 화학자가 산업화하며 세계에 퍼졌다. 소금보다 높은 값에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는 제설제가 되었다. 눈을 빨리 녹이기 때문이다.
염소와 칼슘으로 이뤄진 염(鹽), 흰색을 띠는 염화칼슘은 수분을 흡수해 눈을 녹인다. 이때 분해되면서 60도 씨(℃) 열을 일으켜 주변 온도를 올리고 더 많은 눈을 녹게 한다. 또한 녹은 뒤 물 분자가 결합하는 것을 방해해 어는 것을 막아준다. 염화칼슘이 녹아 있는 물은 영하 55℃ 정도에서야 얼게 된다.
그다음 많이 쓰이는 제설제는 소금인 염화나트륨. 일본, 유럽과 북미에서 주로 쓴다. 염화마그네슘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서 쓰는 정도. 염화칼슘은 고체나 액상으로 뿌리거나 물과 소금을 섞어 사용한다. 이런 '습염식'은 물과 소금을 7대 3 비율로 섞은 수용액을 살포기로 다시 소금과 혼합해 살포하는 방식이다. 눈을 빨리 녹이면서도 염화칼슘을 적게 쓰고 도로에도 남지 않는다. 2002년 전국 고속도로에 도입해 2005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전국 지자체로 퍼지고 있다.
제설제의 역습
빠르고 편리하고 값싼 염화칼슘이 전국 도로와 골목에 뿌려진다. 2013년 소방방재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와 국토관리청, 한국도로공사가 사용한 제설제량은 50만 6509톤. 15톤 덤프트럭 3만 3767대 분량에 해당한다. 대부분 염화칼슘이다. 민간 사용량은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 많은 제설제는 눈과 함께 사라진 것일까. 세계 곳곳에서 도로 주변 나무들 잎이 마르고 말라죽는 일이 일어났다. 도로가 파손되고 차량과 철재 교량이 부식되는 피해가 늘기 시작했다. 하천과 지하수 오염이 보고됐다. '제습제의 역습'이었다.
2005~2006년 일본 홋카이도에선 염화칼슘을 먹은 작은 야생조류들이 얼어 죽고, 북미에선 도로 옆 양서류가 위험에 처했다는 보고도 있다. 국내에선 2010년 경기도 이천시 도로변 과수나무들이 잎이 마르고 결국 말라 죽었다. 중부지방의 잦은 폭설로 제설제 사용이 급격히 늘었던 때다. 과수원 주인은 한국도로공사에 피해보상을 신청했다. 국내 최초 '제설제' 환경 분쟁 사건은 5년을 끌다, 지난 2011년 900만 원 배상 결정이 최종 내려졌다. 2015년 겨울, 대전 유성천 물고기 떼죽음도 염화칼슘이 원인이었다.
염화칼슘 제설제는 어떻게 나무에 피해를 입히는 것일까? 국립산림과학원은 2005년부터 2011년까지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서울 홍릉에 있는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이 연구를 해온 김선희(46세) 박사를 찾았다.
"겨울에는 염화칼슘 피해가 눈에 띄지 않아요. 최저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는 3월, 염화칼슘이 묻었던 나무의 잎과 가지에 빠르게 탈수피해가 일어납니다. 고속도로 변이나 국도 변 가로수의 반대편은 건강한데, 일부만 피해를 입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직접 피해는 제설 과정에서 염화칼슘이 바람에 날려 튀거나 분진 형태로 나무에 묻었을 때 나타난다. 염소는 광합성 작용에 필요한 산소를 발생시키는 필수 원소지만, 나무에 많이 쌓이면 뿌리, 줄기, 잎 조직의 생장을 억제하고 나무를 말려 죽일 수 있다. 칼슘은 광합성 작용에 필요한 칼륨과 균형을 이뤄 식물 속 유해물질을 중화시키는데, 염화칼슘이 토양에 쌓여 뿌리로 흡수되면 나무 속 이온 농도를 높인다. 너무 많이 쌓이면 엽록소 생성에 관여하는 철의 흡수를 방해해 잎을 누렇게 변하게 한다. 간접 피해로는, 염분이 토양 속 수분의 삼투압을 늘려 뿌리가 물을 흡수하는 것을 방해한다. 정상 토양인 약산성이 알칼리성으로 변해 필수양분을 흡수하는 능력이 떨어져 결핍을 일으킨다. 토양구조도 나빠져 통기성과 배수성이 떨어진다. 결국 뿌리의 호흡과 수분 흡수가 어려워진다.
염화칼슘 피해 증상은 식물이 양분과 수분을 흡수할 수 없는 조건일 때 나타나는 마름 현상과 같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염화칼슘 수용액 농도에 따른 피해 증상을 살피는 묘목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에 쓴 염화칼슘 수용액 처리 농도는 0.5~5%까지. 제설 현장에선 도로 상황과 적설량에 따라 그 농도가 다르다. 실험 결과 나무 종류에 따라 염화칼슘 피해가 다르게 나타났다. 상록침엽수 잣나무는 잎 마름, 갈변, 조기 낙엽을 보였고 염화칼슘에 가장 약했다. 활엽수인 산딸나무도 잎끝 마름, 반점이 나타났다. 산벚나무, 이팝나무, 구상나무도 염화칼슘에 약한 나무들이다. 난대림 수종은 어떨까.
"동백이나 후박나무는 바닷가에 많이 살아요. 염류에 내성을 지닌 수종이고 눈이 잘 안 내리는 남쪽에 사니 제설 피해와는 상관없겠다 하지만, 2010년엔 남부 지방에도 눈이 많이 내려 제설제를 많이 뿌렸죠. 기후변화로 남쪽 수종도 염화칼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나무가 광합성과 호흡, 대사 작용을 하려면 물이 필요하다. 나무는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나무 꼭대기 위로 보내는 증산작용을 한다. 염화칼슘은 엽록소의 양과 질을 떨어뜨리고 나무에 수분 스트레스를 크게 준다. 잎 뒷면 기공의 여닫는 능력이 떨어져 건조 피해가 일어나고, 이산화탄소를 잘 흡수하지 못해 대사 작용이 떨어진다. '마로니에'로 알려진 칠엽수는 수분에 가장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나무들은 시들해질 때 물을 주면 되살아나요. 칠엽수는 한계가 오면 갑자기 뚝 떨어져요. 겉으로 표가 안 나니 괜찮다 싶었는데 갑자기 피해를 입는 거죠. 그때 물을 줘도 회복을 못 해요. 가뭄 시기에 조심해야 할 수종이에요."
은행나무, 양버즘나무, 느티나무처럼 대체로 내염성이 강한 나무들도 해마다 제설제에 노출되어 오랫동안 쌓이면 피해가 나타난다고 한다.
42년 만의 가뭄을 겪은 2015년, 6월부터 누렇게 변한 은행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시 용산구에서 염화칼슘 피해를 받은 은행나무를 파보니 잔뿌리가 거의 없었다. 나무는 물과 양분을 잔뿌리로만 흡수한다. 유독 나무들 속에서 키가 작고 직경도 가는 나무들이 있다. 사거리 모서리, 아파트나 학교, 관공서 입구, 도로 합류 지점에 있는 나무들이다. 염화칼슘을 더 많이 뿌리는 곳이다. 국립수목원은 2004년 관통 도로에서 염화칼슘을 금지하고 100% 모래로 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도로 주변 100년 이상 노거수 654그루를 조사해보니, 75.2%가 고사하거나 고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건강과 환경을 지키는 제설의 기본
1980년대 후반 경제개발협력기구는 염화칼슘 제설제 위험을 경고했다. 그 대체제로 염화마그네슘아세테이트(CMA), 유기산염(CMO), 초산칼슘 같은 친환경 제설제들이 개발됐다. 국내는 2010년 제설제에 대한 환경부 인증이 시행되며 상수원 지역에서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도심에서도 '친환경 제설제'라고 쓴 제설차량을 마주치곤 한다. 조달청은 2013년 9월부터 환경표지 인증 제설제만을 나라장터에 등록하고 있다. 현재 15개 제조사 제품이 올라가 있다. 원료 원산지는 염화칼슘처럼 중국산이 대부분, 국내 생산업체는 서너 곳 정도이다.
친환경 제설제는 염화칼슘에 비해 생태계 독성이 적고 부식을 줄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값은 두 배 정도 높다. 조달청 발표에 따르면 2015년 친환경 제설제 계약물량은 지난해에 비해 138% 규모로 늘었다. 서울시 경우 2015년 사용량은 15%. 지자체 예산에 따라 친환경 제설제를 쓰고 싶어도 못 쓰는 형편이다.
김선희 박사는 가로수 자체를 건강하게 하고 해마다 쓰는 제설제로 나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현실에 맞게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차츰 친환경 제설제 비중을 늘려가되 '친환경' 제설제에 대해 제대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제설제에 비해 피해를 줄이는 정도지, 친환경이라 해서 제설제를 많이 써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거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을 제대로 하는 일이 중요해요."
세계는 제설제의 유해성을 확인하며 염화칼슘과 염화나트륨을 퇴출하고 있다. 인력과 제설 장비를 이용한 기계적 제설이 우선이다. 대중용 제설기도 널리 보급되어 있다. 독일 경우 제설제 농도도 정해 육교나 급경사 지역 같은 곳에만 쓰도록 규제한다. 어기면 약 1800만 원 벌금을 물어내야 한다.
나무를 지키는 제설의 기본은 이렇다. 하나, 가능한 제설제 사용을 줄이고, 짚으로 만든 보호막을 설치해 직간접으로 염화칼슘이 나무에 튀거나 묻는 것을 막는다. 둘, 제설제가 녹아 있는 눈을 나무 밑이나 화단에 쌓아놓지 않는다. 셋, 염분에 약한 나무가 있는 곳엔 제설제를 쓰지 말아야 한다. 넷, 무엇보다 눈을 쓸고 제설장비로 치우는 것이 먼저다.
도시의 나무들은 네모난 화분에 심겨진 것과 같다. 땅속은 보행신호와 콘크리트 구조물로 사방이 막혀 있다. 땅속 깊이와 넓이도 1미터를 넘지 않는다. 키가 아무리 커도 더 이상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겨울엔 장식전구로 열 피해를 받기도 한다. 김선희 박사는 장식 전구는 나무가 겨울 준비를 하는 12월 설치해 2월 봄이 되기 전 제거해야 하고, 꽃눈과 잎눈을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2월 나무는 생리 활동을 안 하니 쉬는 거죠. 그때까지 나무는 세포 속 물을 밖으로 빼서 세포 사이사이를 얼려놓아요. 어는 피해를 막는 거예요. 수액 농도를 진하게 해 얼지 않게 하고, 잎에 떨켜를 만들어 잎을 떨구고…. 겨울을 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 잠깐 쉬는구나, 다음 해 새봄 새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구나! 나무는 늘 미래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난해 12월 겨울 평균 최저 기온은 1973년 이래 가장 높았다. 눈과 얼음 축제들은 줄줄이 취소됐다. 반면, 울산을 비롯해 남부지방에선 폭설 대비 훈련을 한다. 올겨울 서울시 염화칼슘 보관하는 집은 7708곳. 스마트폰이 제설함 위치 정보까지 알려준다고 한다. 이상한 겨울 한가운데서 지구를 지키는 진짜 '스마트한' 제설로 갈아타자.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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