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여러가지 계획을 특정 재벌과 관련지어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 때문에 위축돼 자꾸 밀리지만 그런 것은 명확하게 하면서도 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산업은행 민영화와 함께 최근 정부가 속도를 내고 있는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과정에서 "오직 대기업만을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데 대한 적극적인 반론으로 풀이된다. 특히 삼성의 은행소유 여부가 초미의 관심으로 등장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이같은 주문은 적지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산업 변화, 빨리빨리"
특히 이 대통령이 특정 재벌과의 관련된 해석을 '오해'라고 선을 긋긴 했지만,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이 지난 인수위 시절 "(삼성-현대자동차-SK-LG 등) 4대 그룹은 절대 은행을 인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못박았던 대목과는 온도차가 느껴진다는 지적이다.
당시 곽 수석은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와 관련해 연기금, 중소기업 컨소시엄 등의 은행인수 가능성은 열어 두면서도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4대 그룹이 은행까지 소유하면 자본 집중화로 인한 독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었다.
이날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해외자원개발이나 통일에 대비한 정책금융도 해야되지만 이것 때문에 민영화가 늦춰져서는 안 된다"며 "국제사회에 내놓을 만한 IB(투자은행)를 갖추어야 한다는 기조에서 추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그는 산업은행장의 명칭이 '총재'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은행장이 자기 자신을 총재로 부르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라면서 "과거사회 뿌리깊은 권위의식을 버리고 금융산업이 서비스 산업이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고도 했다.
앞서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지난 달 26일 <매일경제> 주최 강연에서 "산업자본이 사모(私募)펀드(PEF)를 통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금산분리 원칙을 우선적으로 완화하겠다"면서도 "금산분리 완화가 일각에서 우려하는 재벌의 은행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고 논란이 진화에 나선 바 있다.
결국 이 대통령이 "자꾸 위축돼 자꾸 밀리고 있다"고 지적한 대목은 금융당국 관계자들이 '재벌의 은행소유 논란'에 대해 눈치를 보지 말고 산은 민영화와 금산분리 완화를 밀고 나가라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또한 금융감독 정책의 신속한 변화를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금융감독 정책의) 점진적 변화는 있을 수 없다고 본다"며 "변화는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점진적으로 하나씩 하면 세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도대체 했는지, 안 했는지, 말은 했는데 하고 있는지, 이렇게 되어선 우리 스스로 변화할 수 없다고 본다"며 "일시에 개혁이 되고, 그 개혁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법령을 바꾸는 것도 있지만 공직자들의 마음자세가 중요하다"며 "현행법은 그대로 두더라도 공직자들이 적용하는 규정만 잘 정리해도 금융규제가 반정도는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개혁연대 "'전봇대' 뽑듯 무분멸한 규제완화 추진하고 있다"
"오해는 지나치게 의식할 것 없다"는 이 대통령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가 이날 업무보고에서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를 위한 3단계 조치 등의 내용을 담은 '금융의 신성장 동력 산업화를 위한 정책 방향'을 확정한 대목을 두고는 곧바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는 이날 논평에서 "금융위원회는 금융산업에서의 규제와 감독을 전봇대 뽑듯 뽑아버려도 좋을 불필요한 규제 내지 간섭으로 치부하고,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외환위기 이후 힘들게 이룩해 온 금융시장의 투명성 제고 노력마저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어 "이는 결국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국민경제적 위험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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