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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황금기, 70년대를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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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황금기, 70년대를 기억하다

[프레시안 books] <나의 문화편력기>

누군가에게는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의 교수님으로, 보다 관심 있는 누군가에게는 한국대중음악상을 지켜온 선정위원장이자 더숲트리오의 멤버로, 대중음악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이(아마도 연구가)에게는 대중문화연구가로 알려진 김창남이 자서전적인 대중문화 사유서 <나의 문화편력기>(정한책방 펴냄)를 냈다.

이 책은 김창남 교수 개인의 경험을 한국 대중문화사로 확장하는 성격을 지닌 대중문화 에세이다. 자연 다루는 시간은 1960년대 중반부터 유신 시대다. 피상적으로만 보자면, 우리나라에 대중문화가 가장 억압받던 시기로 이해되는 즈음이다.

그러나 기실을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은데, 1970년대는 대학가에 모던 포크 열풍이 일면서 본격적으로 청년문화가 태동하기 시작한 때이고, 1990년대 서태지 열풍으로 상징되는 청소년 문화 폭발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사의 황금기로 여겨진다. 나아가 김창남이 청년기를 보낸 시대는 운동권 문화가 본격적으로 일어난 시기이다. 운동권이라는 단어에 굳이 '문화'를 붙여 합성어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이 시기 청년문화는 전후 어떤 시대와도 구분되는 독자성을 이뤄냈다. 이는 장정일이 <장정일의 악서총람>(장정일 지음, 책세상 펴냄)에서 해석한 것처럼, 철통 권력이 반드시 문화의 억압과 연결되지 않음을 무엇보다 생생히 입증하는 사례다. 지금 장년 세대의 문화적 빈곤은 그들이 풍요로웠던 과거 유산과의 단절을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

<나의 문화편력기>는 크게 저자의 소년기와 청소년기로 나뉜다. 소년기를 지배한 문화유산으로 당시 군부가 주도한 각종 대회와 청소년 총화용의 잡지 등이 소개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되는 이 시기 만화 콘텐츠가 자세한 설명과 함께 열거된다.

지금 장년 세대 대부분에게 만화란 유년기에 버리고 온, 나이 들어 점잖게 설명하기엔 조금 부끄러운 매체로 여겨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한국의 척박한 만화 소비 환경을 만들었다면 지나친 추측일까. 지금 만화는 세계적 만화 비평 강국 프랑스와 최대의 만화 시장 일본, 미국에서 알 수 있듯, 현대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장르 중 하나로 여겨진다. 김창남은 교수님다운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이 시대 우리의 "B급 문화"를 당당히 소개한다.

음악연구가답게, 책은 이 시대 대중음악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어려운(이라고 썼지만 사실 요새 분위기로만 봐서는 불가능하지 않을 듯한) <맹호부대 찬가>의 가사를 지금도 외우고 있다는 대목, 최희준, 오기택 등 지금으로서는 잊힌 당대의 트로트 가수를 편안하게 사유하는 대목은 해당 시대를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결코 기록하지 못할 정서이고, 이는 우리 대중문화 연구의 중요한 유산이다.

▲<나의 문화편력기>(김창남 지음, 정한책방 펴냄.) ⓒ프레시안
유신 시대 이야기는 그의 청소년기를 다룬다. 김창남은 <선데이 서울> 이야기에서 <딴지일보>를 끄집어내고, 70년대 초반 성인만화 붐을 자세히 소개한다. <분노의 포도>와 같은 명작 이야기도 있지만, 박정희를 찬양하는 책을 읽고 자라난 청소년이 당시 독재 정권의 목표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김창남을 만나본 이라면 누구나 고매한 학자일 것이라는 첫인상을 받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선입견을 깨주는 반전미를 갖고 있다. 이 시기 청년문화, 대중문화 기록은 현재 풍요롭게 채색되지 못하는 게 사실일 텐데, 이런 의외의 다양성이 록 뮤지션을 아들로 둔 김창남 교수를 만들었구나 싶다.

대중문화는 특징상 아카데미 영역의 기록 못잖게 대중 스스로의 기록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과거 대중문화가 단순히 "대중을 위한 문화"로 정의되었다면, 시간의 두께만큼 단련되며 점차 학문의 영역으로 옮아가고 있는 아카데미즘과의 일정 구분을 위해 지금은 "대중에 의한 문화" 역시 대중문화의 중요한 성격으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나 대중문화는 특징상 산업 자본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대량 생산 체제에서 완전히 독립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라도 이 책과 같이 대중으로서의 기록이 바탕이 되어야 이후 세대의 학문적 성찰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이 책은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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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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