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듯 맛을 내는 무밥과 무나물
잔기침이 그치지 않고 오래가면서 목이 너무 아파 괴로우면 굵게 채 썬 무를 넉넉히 넣고 지은 무밥이 먹고 싶어 어머니 생각은 더욱 간절해진다. 쌀보다 무를 훨씬 많이 넣고 지어 밥 같지 않은 밥이지만, 별 반찬 없이도 한 그릇 뚝딱 해치우게 되는 어머니의 무밥에는 웬만한 감기나 몸살 따윈 금방 뚝 떨어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쪽파를 쫑쫑 썰어 넉넉하게 넣고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마무리한 양념간장을 한 숟가락 넣고 같이 비비면 쪽파가 내는 알싸한 맛이 참기름과 깨소금의 고소함과 만나 무밥이 입안에서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무로 만들어 내는 어머니의 음식 중 무밥과 대적할 만한 것은 무나물이다.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 것 같은데 달고, 별다른 기술이 없었던 것 같은데 궁극의 감칠맛을 내기 때문이다.
무밥이나 무나물이나 언뜻 느끼기엔 별스런 맛이 없는 음식일 수 있겠다. 그러나 입에 넣고 찬찬히 먹다 보면 무가 지니는 부드럽고 모나지 않은 맛이 김치나 장아찌 등의 강하고 자극적인 맛들을 모조리 감싸 안고 배속으로 들어간다. 세상과 맞서 싸우느라 곤두섰던 내 안의 모든 날카로움이 익혀 만든 부드러운 무 음식 한두 가지로 유연해지는 강인한 힘을 가진 것 같다.
● 무버섯밥
재료
쌀 2.5컵, 밥물 2컵, 무 400g, 버섯들 100g, 들기름 1큰술, 국간장 1큰술
양념간장 : 간장 3큰술, 육수 3큰술, 고춧가루 1큰술, 다진 파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참기름 1큰술, 통깨 1큰술
만드는 법
① 쌀은 미리 씻어 건져 30분간 불려 둔다.
② 무는 깨끗이 씻어 약간 굵게 채 친다.
③ 무 버섯들은 무와 비슷한 크기로 썰거나 찢어 놓는다.
④ 무와 버섯을 분량의 들기름과 국간장을 넣고 살살 버무린다.
⑤ 압력밥솥에 씻어 불린 쌀을 넣고 불리기 전 쌀의 80% 분량으로 밥물을 잡는다.(무와 버섯에 수분이 많으므로)
⑥ 밥솥에 버무려 놓은 무와 버섯을 얹어 밥을 한다.
⑦ 양념장을 만든다.
● 무나물
재료
무 300g, 느타리버섯 100g, 간장 1큰술, 들기름 1큰술, 육수 1/3컵, 다진 파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볶은 깨, 참기름 약간
만드는 법
① 무는 5~6cm 길이로 굵게 채 썬다.
② 느타리버섯은 무채의 굵기와 비슷하게 길이로 찢는다.
③ 둥근 팬에 느타리버섯을 넣고 그 위에 무채를 올린다.
④ ③의 재료에 분량의 육수와 들기름, 간장을 넣는다.
⑤ ④의 재료를 불에 올리고 뚜껑을 덮은 다음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무가 익을 때까지 둔다.
⑥ 무가 익으면 파와 마늘을 넣고 뒤적인 다음 모자라는 간은 소금으로 한다.
⑦ 참기름과 볶은 깨로 마무리하여 그릇에 담아낸다.
겨울에 제맛인 저장 가을무에 굴 넣어 굴깍두기
겨울에 먹는 가을무는 생식을 해도 맛나다.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에서 말하는 여름무의 "맵고 지린 맛"하고는 달리, 달고 시원해 목에 가래가 끼고 답답할 때 까서 먹으면 가슴 속조차 시원해진다. 습도가 높은 여름에 나오는 무와는 달리 지금 만나는 무들은 단단하기가, 거짓을 살짝 보태면 차돌처럼 차지게 단단하다. 그래서 다른 계절과 달리 무를 절이지 않고 깍두기를 담가도 김치통의 바닥이 보이는 마지막 한 점까지도 아삭아삭하니 맛나다.
특히 절이지 않고 바로 담그는 깍두기는 한창 제철이라 옹골지게 맛이 든 굴과 만나 마침표를 찍는다. 막 담근 굴깍두기는 바로 먹으면 무의 달고 시원함에 굴의 비릿한 바다 향이 묻어나 돼지고기 수육을 부르는 맛이고, 굴의 살이 허물어지면서 깍두기가 익으면 어리굴젓의 맛이 느껴지는, 아수라백작처럼 두 얼굴을 가진 음식이 된다.
● 굴깍두기
재료무 2개(2kg), 굴 300g, 미나리 200g, 쪽파 200g, 갓 200g
양념 : 고춧가루 1컵, 대파 1뿌리, 다진 마늘 3큰술, 다진 생강 2작은술, 새우젓 2/3컵, 멸치액젓 2/3컵, 배즙 1/2컵
만드는 법
① 무는 깨끗이 씻어서 사방 2cm 길이로 자른다.
② 굴은 3% 소금물에 흔들어 깨끗이 씻는다.
③ 미나리, 쪽파, 갓은 다듬어 씻어 2cm 길이로 썬다.
④ 대파와 새우젓을 곱게 다진다.
⑤ 양념 재료를 모두 넣고 잘 섞는다.
⑥ ⑤의 양념에 썰어 놓은 무를 넣고 잘 버무린 후 미나리, 쪽파, 갓을 넣고 마지막에 굴을 넣어 버무린다.
⑦ 항아리나 김치통에 꼭꼭 눌러 담고 상온에서 하루 이틀 숙성시켜 냉장고에 넣고 먹는다.
⑧ 김장철에는 상온에서 열흘 정도 숙성시키면 알맞게 익는다.
겨울의 뿌리채소 무
생식과 숙식이 모두 가능한 무는 맵고 서늘한 성질을 가졌지만 위와 폐에 이로운 식품이다. 그래서 소화를 돕는 것은 물론 식욕을 증가시키며 섬유질이 많아 위장 유동을 촉진시켜 변비가 있는 사람에게도 좋고 담을 삭이고 기침을 그치게 하는 작용이 있으며 열을 내리고 갈증을 풀어 주는 이뇨작용도 있다. 복부가 더부룩하면서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이나, 만성기관지염을 앓거나, 오래된 가래 기침이 있는 사람이 먹으면 아주 좋은 식품이다.
하지만 인삼을 먹고 두통이나 어지럼증, 구토 등이 생겼을 때 무를 갈아 즙을 내어 먹으면 그 증상이 해소된다고 하니 아무리 좋은 무라도 인삼과 같이 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 동의보감에 음식과 약은 그 뿌리가 같으니 약은 질병에 걸린 다음에 먹는 것이고 좋은 음식을 먹어 질병을 예방하면 약을 따로 먹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니 평소에 질병에 걸리지 않게 질 좋은 음식으로 건강을 지키는 것이 지혜로운 식생활이다.
밥도 부르고 술도 부르는 쪽파김무침
결혼하기 전 완도에서 배를 타고 다시 들어가는 조그만 섬 생일도에 인사를 간 때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겨울이었다. 하룻밤을 묵으면서 미역과 함께 김을 채취해서 말리고 상품으로 만드는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게 되는 귀한 경험을 했다. 지금은 공장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모두 사라진 기억 속 일이지만, 그래서 나에게 더욱 귀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겨울 새벽의 바닷바람은 얼마나 찬지, 차갑다 못해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질 만큼 따갑다. 하지만 김을 채취해 생산하는 어민들은 그런 통증 따위를 탓하면서 투정부릴 여유가 없다. 겨울의 하루해는 너무 짧기 때문이다. 새벽 3시쯤에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쪽배를 타고 김양식장으로 나간다. 김도 미역과 다르지 않아 고무장갑 등을 끼고는 미끄러워 채취할 수 없으므로 맨손으로 뜯어야 한다. 미역은 크기나 크지만 김은 뜯고 또 뜯어도 그릇을 쉽게 채우기 힘들어 마음이 정말 조급해진다. 채취한 김을 한시라도 빨리 민물에 넣고 여러 번 씻어 바닷물의 소금기를 빼고 대나무 발에 한 장 한 장 떠서 해가 뜨기 전에 말리기 위한 준비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해에 다 말리지 않으면 색이 변하고 상해 상품의 질이 떨어지므로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 하루 수고가 허사가 되므로 어떻게든 해가 떨어지기 전에 잘 마르도록 기원하면서 자주 들여다보는 일도 잊지 않는다.
김이 다 마르면 걷어다 백 장씩 모아 작두에 네 귀를 맞춰 자르고 묶으면 그때야 길고 긴 하루가 마감된다. 겨울에 날이 따뜻하면 김이 건강하지 못하고 병이 생기므로 김을 양식하는 어민들이 말하기를 겨울은 땡땡 얼어붙게 쌩쌩 추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해가 가는 말이다. 단 하루였지만 시댁에 가서 김을 만져 본 이후로 나는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마땅히 받아들이고 김을 구울 때나 자를 때 떨어지는 부스러기 한 조각에 심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편이 어린 시절, 김은 집안 생계를 잇는 주된 수입원이었지만 남편은 제대로 모양을 갖춘 김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작두로 자르고 남은 부스러기만 모아다 밥상에 올려 주셨기 때문이라 했다. 그나마도 모아 두었다가 내다 팔았기 때문에 김양식으로 생계를 꾸려 가는 집이었지만, 부스러기나마 마음 놓고 넉넉히 먹지 못하고 자랐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어린 시절에 너무 자주 먹던 음식이라 그런지 남편은 지금도 김이 밥상에 없으면 너무 서운해한다. 덕분에 나도 딸아이도 김을 좋아하게 되었다.
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가며 구워 밥상에 올리기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가끔 김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깊이가 있는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소금을 솔솔 뿌려 볶듯이 구워 접시에 담아낸다. 구운 김에 밥을 싸먹을 수는 없지만 아쉬운 대로 바로 구워 먹는 김맛을 흉내 낼 수는 있다.
아무리 고소하고 맛있어도 김을 구워만 먹는 것은 어쩐지 다양하지 못해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미진함이 남는다. 그래서 가끔 김을 무쳐 먹는데 특히 쪽파의 향을 입혀 무치는 반찬을 정말 좋아한다. 손질한 쪽파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미리 간장을 부어 놓으면, 쪽파는 기운이 빠져 쪼글쪼글 늙어 가고 대신에 쪽파의 향을 잔뜩 먹은 간장이 싱거워지고 양이 늘어 김을 무칠 만하게 된다. 참기름과 볶은 깨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밑반찬이 되고 적당히 짭짤하니 맥주 안주로도 훌륭하여 갑작스러운 음주 충동에 재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한 번 만들 때 넉넉하게 해 두면 여러 가지로 요긴하니 좋을 것이다. 친구가 찾아오면 좋을 눈 내리는 저녁이다.
● 쪽파김무침
재료쪽파 250g, 김 10장, 간장 3~4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만드는 법
① 쪽파를 깨끗이 씻어 3~4cm 길이로 자른다.
② 손질한 쪽파에 분량의 간장을 넣고 뒤적여 1시간가량 절여 둔다.
③ 김을 바삭하게 굽는다.
④ 구운 김을 비닐봉지에 넣고 부순다.
⑤ 간장을 넣은 쪽파에서 간장을 분리해 마늘과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무침장을 만든다.
⑥ 무침장으로 김을 조물조물 무친다.
⑦ 무친 김과 쪽파를 다시 한번 버무려 그릇에 담아낸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