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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의 로맨스, 진정 박수 받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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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의 로맨스, 진정 박수 받으려면‥

[사회책임 혁명] SK는 최 씨도, 노 씨의 것도 아니다

최태원 SK 회장과는 일면식이 없지만 개인적으로 친근하게 느껴지는 재벌총수다. 과거 SK 사람들로부터 내 전화 목소리가 최 회장과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통화하면 회장님에게 전화 온 줄 알았다"고들 했다.

최 회장의 '로맨스'가 화제이다. 불륜이라고 말하는데, 그냥 나는 돈 많은 중년남자의 '로맨스'로 부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최 회장을 욕한다. 우선은, 나는 그를 욕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박수까지는 아니어도 쉽지 않았을 '결단'을 존중해 주고 싶다. 사랑 앞에 솔직한 그의 모습은, 온갖 억측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는 좀체 보기 힘든 중년의 당당함이다.

물론 결혼의 의무와 책임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적잖은 사람들이 이혼하는 요즘, 결혼의 의무와 책임이 무한정인 것은 아니고 양자의 합의에 의해 언제든지 해소될 수 있다. 최 회장의 '로맨스'는 이혼 전에 일어난 사건이기에 응당 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이혼이란 해결책을 찾는 행위는 나름대로 차선(次善)의 해결책으로 간주될 법하다. 비록 윤리적으로 비난받을지 몰라도 자신의 삶 앞에 당당한 선택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애정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처리되어야 할 개인사이기에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재벌총수에게도 사생활이 있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법률을 위반하지 않은 사적 영역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외부의 관여는 부적절하다.

한데 이번 '로맨스'의 커밍아웃을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로맨스의 원론을 넘어서는 불편이 서서히 감지된다. 최 회장이 보여준 중년의 당당함과 진실한 사랑찾기를 존중하는 입장임에도, 그가 사적인 현안을 갖고 사회적인 통로로 해답을 구하는 모순된 태도를 취했다는 점 때문이다.

사사화(私事化)가 아닌 사회화(社會化)는 최 회장이 자신의 '로맨스'에 책략을 들이댔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그렇게 되었지만, 신문지상에 자신이 스스로 고백함으로써 그의 '로맨스'는 사회적 현안이 되었다. 사랑 앞에 당당한 그에게, 대놓고는 아니지만 내심 지지의 마음을 품었을 사람들에게 사랑에 책략을 얹는 실망스런 행태는 일말의 동정심마저 거두게 한다. 그 책략의 내용에는 전혀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

최 회장 '로맨스'의 사회화의 현상 또한 불편하기 그지없다. 나오는 얘기가 주로 재산분할, 후계구도이다. 대중의 심리에 영합한 어쩔 수 없는, 한심하고 상업적인 분석임을 감안하고도 사실 자체보다 사실에 대한 해석이 훨씬 더 불쾌하다.

먼저 재산분할. SK의 그룹 성장사를 거론하며 재산분할시 최 회장의 부인인 노소영 나비아트센터 관장의 기여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사실 주지하듯 SK는 우리나라 재벌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경유착 사례이다. 대한석유공사, 한국이동통신 등 공기업을 인수받아 현재 그룹의 핵심을 채웠다. 다른 유수 재벌은 그나마 자력으로 세운 다음 다양한 지원을 받아내 기업을 키우는 우회적 정경유착을 택했지만 SK는 대놓고 권력에게서 자산을 받아냈다. SK의 출발점 또한 적산과 관련 있으니 극언하면 정경유착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SK의 "혼"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을 분할할 때 부정의 정도의 따라 나눠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가 자연스럽게 유통되는 세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차제에 노 관장의 아버지 노태우 씨가 개입한 불법 행위가 있었으면 낱낱이 밝혀내어 불법적인 재산이전에 대해서는 국가가 환수하는 게 타당한 논리가 아닐까. 현실적으로 불법성을 밝혀내기 어렵다 하더라도 밝혀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보도된 내용을 검증하는 것만으로도 진실규명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 노태우 씨 생전에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일이다. 그 다음에 만약 노 관장의 기여가 입증된다면 사회환원의 다양한 방법을 논의해야 옳다. 지금은 재산분할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 불법성 규명을 논할 때이다.

후계구도 운운도 마찬가지다. 최태원 회장이 이미 물려받은 회사를 당연히 그 자녀가 물려받을 수 있다는 가정은 틀렸다. SK는 최 씨 일가의 기업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지분으로도 그렇고, 기업형성과정을 살펴봐도 그렇고, 국민의 기업 성장기여를 봐도 그렇다. 후계구도 운운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재벌 기득권을 기정사실화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최 씨 일가가 주요 주주의 지위를 이어갈 수는 있겠지만 왕국을 물려주듯이 상장법인을 통째로 상속시킬 순 없다. SK는 최 씨의 회사가 아니며 더구나 노 씨의 회사는 아니다.

이렇게 울화통을 터뜨려 봤자 달라지는 건 없겠고, 나와 목소리가 비슷한 당당한 중년 최 회장이 어쩌면 뭔가를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면 망상일까. 그 기대는 자연인 최태원이 사랑 앞에 진심으로 당당해지는 것이다. 경영권을 내려놓고 은퇴하여, 사랑하는 연인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과 함께 어디 하와이나 남태평양 같은 데서 호젓하게 당당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과거 그룹의 성장 과정에 불법이 있었다면, 이번에 사랑을 고백하듯 국민 앞에 고백하고 공익재단을 만든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사회환원까지 해놓고 은퇴하면 금상첨화겠다. 그런 당당한 최태원에게 나는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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