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전문가들과 중국 언론 등은 6일 북한이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데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수소폭탄은 핵융합 무기로 기존 핵분열 무기보다 수백 배 강한 폭발력을 내야 하지만 북한의 실험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요 근거였다.
이번 핵실험이 일으킨 인공지진의 규모는 기관마다 다르지만 4.8∼5.2로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의 4.9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미국 싱크탱크인 랜드 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BBC방송 인터뷰에서 "핵분열 기술이었다"고 단정했다.
그는 "이번 무기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원자) 폭탄의 위력과 대체로 비슷했다"며 "(수소탄이라면) 10배는 더 강력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베넷 연구원은 북한의 발표가 거짓이거나 실험에 일부 실패했을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핵분열을 통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원자폭탄과 달리 수소폭탄은 핵융합을 이용하며 폭발력은 바로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넷 연구원은 작년 12월 북한이 수소폭탄을 개발했다고 주장했을 때 "핵분열 무기의 위력이 TNT 10kt(킬로톤)이라면 핵융합 무기는 메가t(1천 kt)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2013년 3차 핵실험 때 발생시킨 규모 4.9의 인공지진을 폭발력으로 환산하면 16.2kt으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미국의 핵문제 전문가인 조 시린시온도 자기 트위터를 통해 폭발력 수준을 3차 핵실험과 비교하며 "진짜 수소폭탄을 터뜨린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분석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제임스 액튼 수석연구원도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핵융합 폭탄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북한의 이번 실험을 기존 핵분열 무기의 위력 증강과 연결하는 분석도 나왔다.
시린시온은 "(수소폭탄은 아니지만) 핵분열 폭탄의 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삼중수소를 첨가한 개량 무기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제프리 루이스 미국 비확산센터(CNS) 소장도 트위터를 통해 "위력이 증강됐을 수 있으나 성공한 단계의 무기는 확실히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는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에 쓰이는 중수소나 리튬6와 같은 물질을 이용해 기존 핵무기의 폭발력을 증강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루이스 소장은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도 북한의 수소폭탄 개발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이 어떤 특정한 기술적 경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경계했다.
베넷 연구원은 북한이 실제로는 아직 핵분열 무기도 완벽히 개발하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몇몇 나라가 핵분열 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더 적은 핵분열과 더 큰 파괴력을 내는 증강 작업을 하고 있다"며 "김정은(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실제로는 이런 무기를 실험해놓고서는 수소폭탄을 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실제로 수소폭탄을 개발해 실험에 성공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네드 프라이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연합뉴스의 논평 요청에 "현재로서는 수소탄 실험을 했다는 북한의 발표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언론에서도 북한의 핵실험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때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견해가 나왔다.
중국 포털사이트 신랑망(新浪·Sina.com)은 "이론적으로 볼 때 (북한의 핵실험에 따라 발생한) 규모 5.0의 지진은 TNT 2만2천t의 폭발량과 맞먹는다"며 "북한의 이번 핵폭발의 위력은 기본적으로 히로시마 원자 폭탄과 비슷하다"고 보도했다.
홍콩 봉황망(鳳凰網) 군사평론가인 류창(劉暢)은 미국, 구소련, 중국이 원폭, 수폭을 개발해온 과정을 조명하며 "기술적 측면에서 볼 때 (수소탄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1945년 7월16일 첫 원폭 실험(폭발력 TNT 2만t)을 했고,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954년 3월 1일 첫 수폭 실험을 했다. 폭발력은 TNT 1천만t 규모였다.
구소련은 1949년 8월29일에 첫 원폭 실험(폭발력 TNT 2만t)을 했고, 1953년 8월12일 첫 수폭 실험을 했다.
중국의 경우, 1964년 10월16일 첫 원폭 실험을 한 뒤 3년 뒤인 1967년 6월17일 첫 수폭 실험을 했다. 폭발력은 330만t에 달했다.
류창은 비록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한 지 10년의 세월이라는 세월이 흐르기는 했지만, 냉전시기 소련과 군비 경쟁을 벌이던 시기의 미국보다 더욱 강력한 핵무기 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상상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미국, 구소련, 중국의 첫 수폭 실험 폭발력은 첫 원폭실험 폭발력과 비교해 최소 165배 증가했다면서 이는 북한의 이번 '수폭 실험'이 실패로 끝났거나 수폭 실험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주장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