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청와대의 발표처럼, 이번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않으면 24년 전 처음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드러났던 그때로 돌아가는 것일까? 24년 전에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국제사회에 호소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합의를 충실히 이행하면 이마저도 불가능해질 수 있다.
정부가 '성과'라고 칭송하고 있는 합의 결과가 이전에 일본이 취했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한-일 정부가 합의를 '충실히' 이행하면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의도대로 역사 속에 묻혀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정부가 말하는 책임은 '도의적' 책임
정부는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죄 △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피해자 치유 사업 등을 이번 합의의 성과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내용들은 이미 일본이 이전에 밝혔던 입장이나 조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과 관련, 정부는 그간 일본이 '도의적'인 책임만을 강조했지만, 이번에는 이 문구가 빠졌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명확히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도의적인 책임만 지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 양보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일본은 회담 직후부터 이 모호한 문구를 '도의적 책임'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28일 한-일 외교 장관 회담 결과 기자회견 직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배상은 아니다"라며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치유하기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역시 이날 저녁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한-일 간의 재산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해결된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일본 공영방송 NHK가 보도했다.
기시다 외무상과 아베 총리의 발언은 일본 정부 차원의 법적 책임이 이미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종료됐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번 회담에서 언급한 일본 정부의 책임은 '도의적'인 책임이며, 이는 일본 정부가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합의 역시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은 없지만 '인도적'으로는 책임이 있으니, 그에 따른 '인도적인' 차원의 지원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 1995년 발족했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하 국민기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이번 사업이 민간 모금이 아닌 순수 일본 정부 예산이 출연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민간 주도로 이뤄진 국민기금보다 진전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민기금에도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의 예산이 일정 부분 투입된 바 있다.
물론 민간이 주도하는데 정부가 지원금을 주는 형태보다는 정부가 모든 예산을 부담하겠다는 측면만 보자면 이전의 국민기금보다 나아진 결과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자금의 출처만큼 중요한 것이 기금 또는 사업을 실질적으로 누가 주도하느냐의 문제다.
국민기금이 당시 피해자들로부터 거부당하고 비판을 받았던 이유는 자금의 출처와 더불어 인도적 책임만 지겠다는 일본 정부의 인식도 있었지만,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기금을 주도하고 있다는 부분도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에 한-일 양국이 합의한 재단 설립도 국민기금의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재단을 만들어 실질적인 사업 집행을 주도하고 일본 정부는 자금을 대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 정부는 자금은 지원하면서 재단은 굳이 한국이 세우라고 했을까? 일본 정부가 직접 재단도 만들고 자금까지 투입하면 마치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지는 것 같이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또 하나의 성과로 내세우는 아베 총리의 사죄는 내용적·형식적인 측면에서 성과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일단 내용적인 측면에서 기존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가 언급했던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죄의 방식을 보면 오히려 예전보다 후퇴했다. 무라야마 총리의 경우 1995년 8월 15일, 일본에서 열린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과 사죄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밝혔고 이는 후에 본인의 이름을 딴 '담화'로 현재까지 남아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경우 기시다 외무상이 대신 읽는 것에 그쳤다.
위안부 지우려는 아베 손 들어준 박근혜 정부
정부가 내세운 위의 세 가지 성과는 사실상 이전 일본 정부의 입장이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과거보다 후퇴한 부분도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성과로 포장하면서, 다시는 위안부 문제를 꺼내지 않겠다고 일본과 약속했다.
28일 한-일 외교 장관 회담 직후 기시다 장관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실시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라고 말했다. 즉, 이번 합의를 끝으로 앞으로는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다수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를 성급하게 결론 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 막상 '불가역적'이라는 단어를 제안한 것은 일본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였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문제도 매듭짓지 못한 채, 향후 위안부 문제를 진전시킬 수 있는 통로를 한국 정부가 스스로 막아버린 셈이다.
이와 함께 위안부 평화비(소녀상)와 관련,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소녀상의 철거 및 이전을 고려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말 그대로 관련 단체와 협의를 하겠다는 뜻이라며, 회담에서 거론됐던 문제이기 때문에 발표문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소녀상 문제와 더불어 회담에서 언급됐던 일본군 위안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문제는 회담 결과 발표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았다.
지난 29일 일본 <지지통신>은 한-일 양국이 이번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보류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이 우려 표명을 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발표문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유네스코 관련 사안이)위안부 문제에서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들어갈 이유가 없다. 별개의 문제"라고 대답했다.
외교부의 설명대로라면 유네스코 관련 사안은 위안부 문제 해결과 별개의 사안이고, 소녀상은 밀접하고 본질적인 문제다. 그리고 외교부는 이 문제를 "관련 단체와 협의하겠다"며 사실상 일본의 요구를 수용했다. 만약 외교부가 일본의 요구인 소녀상의 철거 및 이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유네스코 문제처럼 아예 발표문에 넣지 않든가, 아니면 "소녀상에 대해 한-일 양국 정부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정도로 발표했어야 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이번 합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전 없이 일본이 요구하는 사안을 정부가 충실히 들어준 셈이 됐다. 따라서 피해자들이 이번 합의를 수용한다는 것은 피해자들이 요구했던 사과와 배상은 받지 못한 채, 한-일 양국 정부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꼴이 돼버렸다.
여기에 지금까지 드러났던 위안부의 역사를 소녀상과 함께 역사에서 지워버리겠다는 것에 동의하는 결과도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번 합의가 과연 24년 전보다 나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말할 자유'마저 빼앗아버린 이번 합의를 파기하는 것은 24년 전, 문제가 처음 제기됐던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후퇴'한 합의를 그나마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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