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을 갓 넘긴 나이에 자신의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페이스북 지분 99%, 우리 돈으로 50조 원이 넘는 재산 기부를 약속한 마크 저커버그의 결정에 대해 일각에서는 '기부를 가장한 상속', 나아가 '경계해야 할 자선자본주의'라는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시사교양지로 유명한 <뉴요커> 최신호(12월 21일자)는 '저커버그에 대한 비판이 틀린 이유'라는 반론을 게재했다. 이 글은 저커버그의 행위가 '자선자본주의'가 아니라는 반박이 아니라, 오히려 저커버그 식의 자선자본주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반론의 출발점을 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다음은 이 글의 전문 번역(원문보기)이다.
선출되지 않은 억만장자들이 지대한 영향력 행사해도 되나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자신이 소유한 페이스북 지분 99%를 새로운 비영리 조직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하자 예상한 대로 긍정적인 보도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저커버그의 결정에 대해 탈세를 위한 꼼수, PR전략, 선행을 가장한 페이스북 이윤 극대화 방안, 심지어 '구세주 이미지의 산업복합체'라고 일축하기도 한다.
<21세기 자본론>을 쓴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저커버그의 행위가 기부라고 한다는 것은 아주 웃기는 얘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현재 가치로 450억 달러에 달하는 저커버그의 기부액은 부의 집중이 얼마나 심한지 보여준다. 또한 갓 태어난 딸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형식으로 발표된 그의 진지한 사명 선언문은 세상을 바꿀 능력에 대한 실리콘 밸리의 과장된 자신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다.
자선사업에 대한 반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존 D.록펠러가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세웠을 때, "자선과 과학이라는 새 이름을 붙인 옛 귀족계급의 지배"를 재천명한 것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저커버그의 결정은 이른바 자선자본주의의 득세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나왔다.
재단들은 사회정책에 대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민주적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다. 왜 선출되지 않은 억만장자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사명적 충동을 전세계에 행사할 자격까지 갖게 해야 하는가?
이상적인 세계라면, 거대한 재단들은 불필요한 조직들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이런 조직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민간영역과 정부 모두 종종 등한시하는 문제들을 포착하는 전문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영리조직들의 전통적인 임무는 경제학에서 공공재로 불리는 영역에 투자하는 것이다. 공공재는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심지어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재화나 서비스들을 말한다.
공중보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말라리아와 결핵(빌 게이츠 재단이 퇴치사업에 수십 억 달러를 투자한 질병들) 퇴치사업은 우리 모두에게 혜택을 준다. 그러나 공공재의 혜택은 누구나 누리기 때문에, 비용을 특정한 누구에게 부담시키기 어렵다.
기업들은 공공재에 대해 충분한 투자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투자로 얻을 대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공공재의 헤택이 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경우는 더욱 그런 경향이 짙다. 1975년부터 2004년 사이에 판매 승인된 1500종의 신약 중 불과 21종만이 열대병이나 결핵과 관련된 것이었다.
정부들은 공공재를 제공하는 역할을 더 잘할 수 있지만(국방이나 교육 등), 비밀 프로젝트들은 종종 공익에서 벗어나고, 정부는 전지구적 문제들을 다루는 데는 훨씬 더 비효율적이다.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가 썼듯, "전세계 시민들이 구속력 있는 집단적 결정들을 내릴 수 있는 메커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협력은 무임승차 문제로 취약해지기 쉽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대해 국제적인 합의를 이루는 문제가 얼마나 진통을 겪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말리리아 퇴치나 보편적인 인터넷 환경 구축(저커버그의 야심찬 계획 중 하나) 같은 프로젝트들도 수십 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는 투자가 필요하다. 정치인들은 몇 년마다 재선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전지구적 문제들은 일반 유권자들의 삶과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멀다. 미국 정부는 세계의 빈곤 퇴치를 위한 원조에 매년 미국인들이 사탕을 사먹는 데 쓰는 것보다 적은 돈을 쓴다.
기후변화처럼 분명히 미국이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전지구적 문제에 대해서조차 의회가 응분의 비용을 지출하도록 결의하게 만들기 어렵다.
반면에 자선사업은 시한이 길고 눈치를 봐야할 대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저커버그가 교육개혁을 위해서라면서 벌인 일처럼, 명분에 논란이 있는 사업에 대해서 투자가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전지구적인 공공재에 막대한 투자를 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런 사례를 보여주는 오랜 역사가 있다.
록펠러 재단은 황열 연구에 자금을 제공해 백신 생산이 가능해졌다. 게이츠재단은 지난 2000년에 설립된 이래 국제 보건 사업에 수십 억 달러를 제공했고, 이제는 WHO보다 더 많은 돈을 보건분야에 쓰고 있다.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 거두면 될까?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면 국제적인 사회 프로젝트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은 자금난에 빠질 것이 뻔하다. 지난 10여년 사이 미국은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 퇴치에 예산 지출을 급격히 늘렸다. 하지만 게이트 재단이 글로벌 공중보건 문제로 부각시킨 뒤의 일이다.
(미국의 경우) 공공재에 대한 모든 지출, 특히 외국원조는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할 때 그렇다. 물가상승을 반영한 미국 국립보건원 예산은 10년 전보다 적어졌다. 지난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예산 문제로 말라리아 퇴치 자금이 "위험 수위에 도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오히려 글로벌 프로젝트에 쓰이는 자선기금의 투자액은 증가추세다. 글로벌 필랜스로피 얼라이언스의 앤 피터슨 대표는 "그동안 미국의 자선사업 지출은 미국 내에서 거의 전부가 쓰여졌다. 하지만 자선사업 지출이 국제적인 차원으로 이뤄지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이런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소수의 억만장자들이 어떤 문제를 다루고, 어떤 문제는 다루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큰 영향력을 갖는다는 사실에 대해 개탄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영향력을 갖는 이유가 바로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돈을 그렇게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로서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번역: 이승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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