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은 지난 2일 박 교수에게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지난 4일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토론 제안을 환영한다면서도 토론 성사를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박이 토론의 목적이라면 "소송과 기소가 취하되도록 노력해 달라"라고 밝혔다. 그는 "그래야만 제가 재판에서 해방된 상태에서 더 밀도 있고 충실한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러분과 '같은' 지평에서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라고 요구했다.
또 박 교수는 "토론의 목적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논쟁이라면 저를 비판하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이들을 '제대로 비판해야 하지 않나"라며 "20년 이상 주장해왔던, (위안부 문제) 해결이 지연돼왔던 (일본 정부의) '법적책임'론이 어떻게 유효한지도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토론 제안자 중 한 명인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9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 및 간담회'에 참석해 소송과 기소문제에 대해 "저희가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조건은 충족시킬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관련해 김 교수는 "법적 책임 부분은 토론의 대상"이라며 "이미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제시된 부분인데, 이것이 토론을 개최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박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듯이 (소송의) 당사자로서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박 교수가 직접 토론에 참여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면서 "양측에서 각각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역사학자, 법학자가 각각 한 사람씩 참석하고 사회학이나 여성학 연구자가 참여해 양측에서 각각 세 사람씩 토론자를 내는 방식으로 가급적 빨리 토론 자리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유희남 피해자 "지식의 자유 있으면 함부로 말해도 되나"
한편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는 소송의 당사자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희남 씨와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명예를 훼손당했고, 이에 대해 소송을 진행했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며 기자회견 참석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유희남 피해자는 "기가 막힌다. 본인의 딸이, 어머니가, 할머니가 당했다면 (박유하 교수가) 그렇게 생각하겠나. 지식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함부로 말해도 되나?"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쓰라리고 분하고 원통하다. 법원은 왜 있는 거냐"라며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안신권 소장은 "할머니들은 재판 청구권도 없나"라며 "작가나 학자의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논하는 게 아니라 할머니들이 일본군의 매춘부가 아니고 동지가 아닌데 왜 그런 표현을 썼느냐는 부분을 문제 삼은 거고, 이것이 할머니들의 명예에 심각한 타격을 주니까 삭제하라고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3일 나눔의 집은 입장 발표를 통해 "이번 사안의 본질은 박유하가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하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의 여부"라고 주장했다.
나눔의 집은 "검찰은 박유하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한 것이 아니라 일반 명예훼손죄 중 허위사실 공표로 기소를 한 것"이라며 "박유하의 연구 결과에 대해 공소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박유하의 책 중에서 일부 표현이 할머니들이 겪은 경험을 왜곡했고, 이러한 행위가 할머니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유하, '제국'의 관점에서만 위안부 바라봐
지난 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들은 성명을 통해 검찰의 기소와 관련 "원칙적으로 연구자의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이번 검찰 기소가 <제국의 위안부>로 인해 심대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 이 시점에서 기소를 평가하는 데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외 학자와 활동가 380명이 공동으로 밝힌 입장에서 이들은 "우리가 더욱 우려하는 것은 이번 사태가 문제의 본질을 떠나 학문과 표현의 자유로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 국가기관의 관여 아래 벌어진 추악한 범죄행위이며, 그로 인해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픔을 견디고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게 인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드러난 이후 한국 정신대 문제 연구소에서 위안부 피해자로부터 증언을 직접 청취하고 정리했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양현아 교수는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제국의 틀에서 볼 뿐 식민지 틀에서 보지 않고 있다. 당시 조선의 여성이 처해있었던 식민지라는 구조를 삭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의 위안부가 단일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박 교수의 책이 이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이미 2000년도에 한국인 연구자들로부터 많이 나와 있던 부분이다. 박 교수의 연구도 이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를 확대 해석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양 교수는 "박 교수가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넘어서는 '트랜스 내셔널리즘'(특정 나라의 경계 안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이른바 '국민국가 패러다임'을 극복하려는 학풍) 세련된 입장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박 교수의 주장에는)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이 없는 트랜스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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